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reell Sep 30. 2023

잘가요. 내 소중한 9월.

새댁의 결혼 후 첫 명절을 보낸 소감


어쩌다보니 벌써 9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글을 적지 못한 시간들 동안 작고 큰 이야기들이 있었으며,

순차적으로 적기엔 긴 공백이 있었던 것 같아서

생각나는 것부터 적어보려고 한다.




우선 지난 주에는 2박 3일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음식을 잘못 먹었는지 남편은 괜찮았지만

나는 구토에 배탈이 이어져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무척 괴로워했었다.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여행은 나의 배 컨디션으로 좌우됐다.


우리는 제주도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다시 한 번 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주 화,수,목 3일 동안은

큰 시장에서 전부치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앞치마와 베레모 목장갑에 니트릴 장갑까지 끼면서 일했지만

전을 만들자마자 팔리는 속도였기 때문에 코끝까지

밀가루나 계란물, 기름이 튈 만큼 정신없이 일했던 것 같다.


4월 퇴사 후에 일하면서 다쳤던 발목이 욱씬 욱씬 올라올 때가 있기도 해서

남편의 배려로 일을 쉬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많았기도 해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지하철로 일곱 정거장 정도 가면 되는 곳에

공고가 올라와서 지원했고, 그동안 명절과 제사에 엄마를 오래 도와드린

데이터가 있으니 믿고 출근을 했다. 


밀가루 묻히기, 계란물 묻히기, 굽는 판에 전 올리기,

전 뒤집기, 큰 타공판에 기름종이 몇 겹 깔기, 타공판에 모인 전은

식히는 곳에 걸어주기, 손님 응대하기, 그람 당 담고 포장하기 등

멀티 중에서도 극한의 멀티였다. 그래도 정신을 집중하여 실수는 하지 않았다.


이전에 작가, 기자 일을 하다가 코로나 이후에

도시락 집에서 1년 가까이 멀티 포지션으로 일해봤던 것이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물론 이번 알바가 훨씬 더 난이도가 높고 정신이 없었다.


이틀은 오전 8시까지 마지막 날은 오전 6시까지 갔고,

10시간씩 근무를 했다. 너무 바빴던 탓에 사흘동안 쉬는 시간을 합쳐보면

1시간이 채 안되지만, 전과 기름에 조리한 음식이라면 충분히 질렸다.




마지막날 계좌이체로 받은 단기알바 후 받은 두툼한 급여는

남편의 명절 보너스와 적절히 보태서 대식구 속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고생한 엄마에게 살포시 용돈으로 드렸다. 정말 더 못 드린 게 미안할 정도였다.


시댁에 갈 때 한우에 과일에 바리바리 챙겨준 엄마의 정성에는

아주 조금도 못 미치는 금액과 마음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성의표시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댁은 우리집과 다르게 식구가 많지 않고, 제사나 명절을 따로 지내지 않으며

친척들과의 왕래도 없어서 훨씬 편하긴 했지만 휑하기도 했다.


지방에서 일하는 도련님은 명절을 맞아 집에 와 있어서 두 달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낯을 가리지 않고, 대화를 잘 이어주는 도련님 덕에 지난 여름휴가에 이어 고마운 마음이었다.

아직도 너무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으며, 자리가 편치 않은 것은 계속 바뀔 수 있는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시부모님은 쭈꾸미볶음과 피자가 나오는 맛집을 찾아서 모시고 갔는데,

하필 너무 매운 탓에 두 분이 땀을 흘리는 진풍경이 연출됐고 나 역시 민망한 상황이 이어졌다.

매운 것을 잘 못 드시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매콤달콤정도라는 의견에 믿고 갔는데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신기하게 시부모님과 있는데 자꾸 우리 부모님이 떠오르는 시간이 많았다.

결혼을 하고나서 느끼는 감정들은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고

심지어 초월하거나 반성하는 류의 생각들로 채워지는 것 같다.




이번 명절에는 샌드위치 휴일 덕에 남편이 오래 휴식을 취하게 된 것 같다.

오늘은 세탁기 청소와 냉장고 청소를 했고, 남편이 좋아하는 감자계란샌드위치의 속을

만들어놨으며, 남은 오트밀과 크랜베리, 아몬드, 해바라기씨와 코코아닙스, 재료들을 넣고

그래놀라도 구워서 식혀 놓았다. 


남편은 청소를 시키려고 데려온 느낌이 든다며 미안해했다. 

뭐 물론 진정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의 열정이 녹아든 모습을 보고 얘기했을 거라 생각한다.




아까 아침에는 어제 친정가서 가져온 집채만한 배로 만든 주스를 마셨고,

점심에는 엄마가 집에 갈 때 챙겨준 나물로 비빔밥을 해먹었는데 

덕분에 든든한 끼니를 해결하게 된 것에 고마운 하루였다. 

식탁에 이것저것 무심코 무언가를 차려놓고보니 엄마가 것이 8할이상이었다.


남편이 자주 결혼을 잘한 것 같고, 장모님의 배려가 느껴져서 감사하다고 말해서 

더 고마웠다. 물론 툴툴대고 마음같이 표현하기 어렵고 표현이 잘 안되는 것이 

나의 고질병이자 문제지만, 보름 뒤면 엄마 생일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마음을

한 번 잘 표현해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9월의 마지막 날, 10월의 첫 날은 남편과 조용히 보낸 후에

그 다음 날에는 연애할 때 다녀왔던 춘천으로 바람을 쐬고 올까 한다.


환기 겸 선선한 바람을 느끼고 싶어서 창문을 열어 놓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어느 덧 짧은 가을이 찾아왔음에, 찬 바람이 좋아서, 아주 조금의 미소를 띄게 되는 것 같다.


좀 더 나다운 삶을 살고, 사랑하는 가족을 잘 챙겨야 겠다고 느끼는

그런 명절이었던 것 같다.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서 풍요로운 한가위와 휴일을 보내시길 바라고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시간들을 지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 생각을 나중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