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12. 제주에서 멸종해가는 나무
우린 둘도 없는 사이였어
사실
난 그 아이를 사랑했어
너넨말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항상 이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지 않니?
난 그 아이를 위해서
항상 그 자리 그대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싱그러운 나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
어쩌다 이렇게 됐냐구?
시작은 사소했어
어느 날 그냥 더워서
‘덥다’ 했지
사소한 부탁 아니야?
근데 그냥 보기만 하는거야
우두커니... 우두커니...
쳐다만 보다가
휙 가버리더라구
그래서
어떻게 했냐구?
망가졌지 스스로
내 말을 안 들어주니까
나 좀 봐달라고
나 좀 신경써달라고
피골이 상접해서
멀거죽죽한 얼굴로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앙상한 몸뚱아리를 내비치면서
처절하게 발악했어
그런데 그냥 넌 멀거니 서있다가
한숨만 내쉬고 가버리더라
나 아픈데
이렇게 말라비틀어져가는데
나 대신 전해줄래?
이젠 더운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널 정말 사랑했어
# 이 시를 쓰게 된 이유
구상나무는 소나무과 식물인데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특산 나무이다.
11월 7일 ‘기후변화와 증인들’이라는 콘퍼런스에 참여한 적이 있다.
많은 강연자가 나와 기후변화로 인해서 생물과 삶과 질서가 어떻게 파괴되어가는지
생생한 목소리로 증언하였다.
그중 녹색연합 ‘서재철’이라고 하는 대표가 나와 한국의 멸종되어가는 나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구상나무는 추운 지방에서 자생하는데 지구 온난화로 점점 멸종해간다는 것이다.
이 속도는 매우 빠르고 조용히 진행되는데 그들은 우리처럼 말을 할 수도 없고 카카오톡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대신 전해주자는 거였다. 그들의 메시지를.
이 말이 정말 나의 가슴을 강하게 울렸다. 이 말을 듣자마자 누가 내 머리를 댕 하고 친 듯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맞아 그들은 더워도 덥다 할 수 있는 입이 없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도 없이 쓸쓸히 죽어가겠구나.’ 너무 미안했다. 이 시는 그 대표님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쓰게 되었다. 이제는 몇 남지 않는 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구상나무.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그러나 빠른 속도로 그들은 사라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