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이사를 했습니다. 새롭게 둥지를 튼 곳도 같은 동네이지만 동선이 달라지니 익숙한 풍경이 새롭습니다. 각도가 조금 달라졌을 뿐인데 동네 도서관도 슈퍼도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한동안 걸어 다니느라 세워져 있던 자전거가 다시 등장했어요. 지하철도 조금 더 멀어졌고 시장도 자주 이용할 생각이거든요. 오래되어 색 바래고 군데군데 녹이 슬었지만 아직 탈만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갔어요. 장을 본 물건을 자전거 앞 철재 바구니에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가다 차도를 건너려 횡단보도 앞에 섰습니다. 10년 동안 다닌 길목이에요. 횡단보도 건너편에는 오래된 아파트와 상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수년 동안 횡단보를 건너 우측으로 다녔는데 이제 직진으로 가야 하는구나.'
시선은 자연스레 우뚝 서 있는 아파트 위로 향했어요. 벽에 새겨진 동수 1714 숫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어, 저 아파트 1714동이었네."
무시로 지나다니던 길이라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었어요. 사는 곳이 바뀌니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동네 공원으로 아침 산책을 나갑니다. 새소리, 차소리, 세상이 만들어내는 작지만 수런거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느껴집니다.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며 웃는 엄마의 모습, 교복을 입고 핸드폰을 코에 박고 지나가는 중고등학생도 보입니다. 저들이 집 밖을 나오기 전 보이지 않는 시간을 상상합니다.
이사를 예정하고 가장 아쉬운 건 아침마다 걷던 아파트 둘레길 산책로였어요. 다양한 나무가 많아 예쁘고 조용한 코스였거든요. 10년 누렸으니 새로운 곳을 찾아봐야죠. 공원에 도착해 매의 눈으로 주변을 탐색합니다. 자세히 보니 공원은 중간 길 사이로 두 코스로 나뉘어 있어요. 먼저 왼쪽 공원 길로 들어섭니다. 다부지게 서 있는 소나무들이 은은한 향기를 자아냅니다. 가장자리 쪽으로 나무 데크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어요. 신기하게 흙길도 있고 나무로 오르막 구름사다리도 만들어놨어요. 동네 공원에서 볼 수 없는 고급 코스를 발견해서 신이 나요. 두 바퀴를 걷고 왼쪽 공원으로 이동하니 트랙이 보여요. 350미터 트랙이에요. 운동기구도 있고 트랙도 있는 적당한 동네 공원 풍경이에요. 두세 바퀴 걸으니 딱 좋아요. 두 공원을 다 걷고 만보기 앱을 보니 3 천보가 훌쩍 넘었어요.
'신봤다~~ 아침 산책으로 딱이다!'
마음에 쏙 든 공원을 발견해 신이 나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출발합니다. 자전거에 네다섯 살 되어 보이는 딸을 태우고 자전거를 끌고 가는 아빠가 보입니다. 딸아이는 옆에 선 아빠의 팔을 작은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신나게 조잘거립니다. 사랑스러운 부녀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지요. 오래 살았던 곳과 이별하면서 아쉬움이 가득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멋진 곳이 이렇게 많습니다.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았던 곳을 재발견하게 되니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듭니다.
문득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재밌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일상에서 세 잎 클로버 찾기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하루에 감사한 일 세 가지 찾기, 연락 안 했던 친구 한 명한테 전화하기. 안 갔던 길로 가보기 등 일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거예요. 소소한 일상이 눈물 나게 소중한 찰나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벅차올라 눈물이 나올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