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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또시 Sep 17. 2020

백만 번을 한다 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일

후지 마비 고양이 임보 도전기, 그 마지막 기록



#임보 18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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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들이 집을 비운 날, 달콤이에게 자유를 선사했다. 방을 벗어나는 경우는 딱 두 가지밖에 없었다. 가족들에게 얼굴을 까꿍할 때, 그리고 하루 30분가량 바깥 구경을 시킬 때. 그런데 오늘, 천편일률적인 이벤트에서 벗어나 거실 바닥을 맘껏 돌아다닐 기회를 준 것이다. 달콤이는 조용하지만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다. 기대보다 훨씬 빠르게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화분들 사이사이의 냄새를 맡다가 바닥과 소파 사이의 틈을 구경하다가 거실에 펼쳐져 있는 테이블 아래를 기어 다녔다. 그때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5분도 채 되지 않아 달콤이, 지렸다..!

 예상은 했지만 울타리가 없다 보니 쉬야를 뿜으며 빛의 속도로 도망 다닐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허둥지둥 달콤이를 숨숨집에 잠시 옮겨두고 신속하게 뒤처리를 시작했다. 다행히 수습은 빠르게 되었지만 달콤이가 쉬야만 뿜으란 법은 없었다. 당장 기저귀를 어디서 구해다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맘먹고 제공한 자유 시간을 5분 만에 뺏어갈 순 없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패드를 허리에 묶어주기로 했다. 다행히 패드 크기가 큰 덕에 콩알만 한 달콤일 감싸기에 충분했고, 아슬아슬하게나마 묶을 수도 있었다. (묶으려 할 때마다 달콤이가 흥분감을 주체하지 못해 이리저리 도망가버려 애 좀 썼다)

패드에 싸인(?) 달콤이. 불편해 보인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패드가 묶이긴 했지만 고정되진 않는 터라 몇 걸음 기어가고 나면 금세 흘러내려 버렸다.


궁딩이에 아슬아슬 걸쳐있는 패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달콤이도 깨나 불편했던지 패드가 깔린 상태에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홱 바꿔 패드를 등에 업고(?) 움직이는 것이었다..


뭔가 불편한 달콤. 반대 방향으로 향하느라 패드가 등에 걸쳐있다.


결국 패드고 뭐고 다 치워둔 채 맨몸의 달콤이에게 진정한 자유를 부여했다. 그리고 약 10분쯤 후, 달콤이는 다시 울타리로 돌아갔고 다행히 달콤이가 돌아다닌 자리에는 아주 약간의 쉬야 만이 남아있었다. #휴고마워




첫 탈출 성공! 울타리 옆에 있던 물품 상자에 빠져 버렸다


#임보 20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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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이 탈주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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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울타리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에서 시작했다. 밀려난 울타리 끄트머리에 몸을 욱여넣고 뒷다리로 영차영차 밀어 나갔겠지? 그런데 울타리를 빠져나가 캣타워에 도착해도 나가는 길이 공청기로 막혀있어 한계가 있다. 결국 실패.

몸이 좀 길어지고 나니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냈다. 기둥 스크래처 타고 넘어가기. 앞다리 힘으로 기둥을 파바박 타고 올라가 몸을 바깥쪽으로 돌리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유용하긴 하지만 기둥 옆에는 사료와 패드가 담긴 리빙박스가 있어서 박스를 탈출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가 생긴다. 그래서 이것도 포기.


들켜서 놀란 달콤.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지만 맘대로 되지 않아 난처해하는 중이다.


가장 최근에 시도하고 있는 방법이다. 숨숨집 타고 오르기. 무슨 등산하는 앤 줄 알았다. 발톱이 어느 정도 자라 날카로워지니 까끌한 재질인 숨숨집 뚜껑에 박히나 보다. 처음엔 그냥 긁는구나 싶더니 어느새 꼭대기에 올라가 날 바라보고 있다. 공청기 위로 기어나가려고 여러 번 시도하지만 껑충 뛰어넘을 수는 없어서 자꾸만 미끄러진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지 않고 무한 시도하는 중!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숨숨집 위에서 쳐다보는 중.. 쌍방 모두 당황했다;;


요건 따끈따끈한 에피소드인데, 숨숨집 위로 낑낑대며 올라간 달콤이를 지켜보고 있던 중.... 뭐가 바닥에 토로록 툭하고 떨어졌다. 우리 달콤이 힘을 너무 줬나? 끙아가 굴러 떨어졌다. 깜짝 놀라 내려놓으니 아주 건강한 맛동산을 막................... ㅎㅎ 달콤이 건강해 아주 맘에 들어 !


달콤이가 울타리 밖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이유가 아무래도 사람과 가까이 있고 싶어서인 것 같다. 요새 계속 침대에서 끼고 살아 그런지 울타리 안에만 있으면 유난히 삐약 댄다. 침대 위에 있는 나랑 눈만 마주쳐도 삐약삐약 화장실을 가도 삐약삐약.. 그래서 울타리 옆에 쪼그려 앉아 말 걸어주면 또 얌전히 듣고 있는다.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나 숨숨집을 침대에 올려주는 거! 주말엔 정말 몇 시간이고 따악 붙어있었다. 밥도 물도 안 마시고 쉬야 끙아도 안 하길래 중간에 잠깐 울타리로 옮겨놨더니 얼른 물도 마시고 밥도 먹고 끙아 쉬야도 다 해결해놓더니 또 삐약거렸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침대로 옮겨놓고 또 몇 시간을 같이 보냈다. 달콤아, 너 이렇게 떨어지기 싫어하면 어떡해 우리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3일도 안 남았단 말이야.


 

침대에 같이 앉아 있는 중. 가까이서 원하는 모습을 바로 찍을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장점이..!




슬슬 얼굴이 변해가는 중이다, 많이 컸다.


#임보 24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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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달콤이와 함께 하는 마지막 날. 단기 임보였기에 보내야 할 날이 빨리 오리란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달콤이를 기록하는 마지막 임보 일기는 그간 변화한 달콤이의 이모저모에 대해 남겨보려 한다.


다리가 길어져서인지 제법 안정적인 식빵을 굽게 되었다.


1) 달콤이가 많이 자랐다. 처음 마주한 날에는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고 마르고 축축하게 젖은 모습이었다. 머리 끝부터 꼬리가 시작되는 지점까지 딱 한 뼘. 500g 남짓 나가던 작은 생명체는 귀에 진드기 약을 잔뜩 바른 채로 소리 없이 사람을 바라보곤 했다.

지금은 몸길이가 무려 두 배가 됐다. 한 달이 안 되는 시간 동안 한 뼘이나 더 자랐다. 전에는 한 손으로 들기에도 약해 보여 조심스러웠다면 지금은 잠깐 들어 옮길 때도 꽤나 묵직하게 느껴진다. 1.5kg도 더 되는 것 같다. 약에 절어 축축했던 털도 모두 뽀송하게 말랐다. 그 덕에 얼굴도 덜 처량해 보이고 한결 동글동글해 보인다. 인상이 한결 좋아졌다.


2) 달콤이가 맛동산만 생산하는 고앵이로 등극했다. 오는 집에 데리고 온 첫 주는 내내 묽은 끙아와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설사까진 아니었지만 어쨌든 달콤이가 지나간 길을 따라 생기는 갈색 선은 날 잠 못 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달콤이의 장이 진정되었나 보다. 이제는 건사료를 급여하면 살짝 건조하다 싶은 맛동산을 생산하고 습식을 급여하면 촉촉하고 건강한 맛동산을 생산한다. 이제 어디에 보내 놔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안 보이지만 뒷다리를 버둥대고 있는 중이다.


3) 달콤이 다리에 힘이 생겼다. 특히 앞다리. 처음에는 스크래처 기둥의 1/4 높이 정도만 올라가는 아이였다. 그런데 (몸길이가 길어진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요즘은 기둥을 타고 울타리를 넘어간다. 그뿐이 아니다. 쿠션을 깔아줘야 올라가던 스크래쳐도 잘 넘어 다니고 이제는 숨숨집까지 점령했다. 달콤이는 척추 골절로 인해 뒷다리가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다. 하지만 아직 감각이 남아있고, 그루밍도 꼼꼼히 챙겨한다. 그런 뒷다리에 요새는 부쩍이나 관심을 가진다. 관심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앉아 뒷다리가 달달 떨리는 모습을 보고 있기도 하고, 제 맘대로 꺾여 움직이는 뒷다리를 툭툭 치기도 한다. 가끔 고양이들이 제 꼬리를 잡으려고 꽤 열심히 노력하는 경우가 있는데 비슷한 경우인가 싶기도 하다.


4) 달콤이 활력이 넘친다. 전에는 노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더 길었고, 거의 소리 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말도 잘 걸고 아주 쉴 새 없이 돌아댕긴다. 공을 굴리며 놀다가 낚싯대로 장난도 치다가 숨숨집도 타고 오르다가 탈주 시도도 했다가 아주 정신이 없다. 며칠 전만 해도 숨숨집째 침대에 올려두고 함께 시간을 보냈었는데, 어제오늘은 그것마저 놀 시간을 빼앗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주 활발하게 움직여댄다. (침대에 올려두고 잠시 패드를 갈아주는 사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쉬야를 했다고 한다ㅎㅎㅎ 덕분에 비 오는 날 빨래했다.) 아, 그리고 사진 찍기가 좀 힘들어졌다. 가만히 포즈를 취해주지 않는다. 덕분에 영상을 찍어야 해서 용량을 아주 많이 먹는다.


가만히 안 있는다. 덕분에 사진은 흔들흔들 ㅠㅠ




임보를 종료하는 마음은 해본 사람만이 알리라 생각한다. 한 두 번 보내본 것도 아닌데 이렇게 힘들 건 뭔지..

달콤이는 앞으로도 아주 건강하게 잘 자랄 예정이다. 비록 내 손으로 성묘때까지 키워내진 못하겠지만 짧은 기간 달콤이와 함께하며 어느 아이보다 정도 많이 들고 소중한 추억을 쌓았다. 사진첩 용량을 한가득 차지하고 있는 만큼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예정이다. 달콤이가 좋은 입양처를 만나 무럭무럭 자라서 성묘가 될 때까지, 가능하면 그 이후에도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래오래 지켜보려 한다.


고마웠어, 달콤아.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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