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답장을 목숨 걸고 기다려본 적 있나요?
두 번째 편지다.
첫 편지를 12월 11일에 보냈다고 되어있는데 두 번째 편지는 12월 23일에 썼으니 그 사이 어느 쯤엔가 엄마의 답장이 도착했나 보다. 왜냐면 이번 편지에는 답장에 대한 소회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아, 엄마의 답장은 편지책에 포함돼있지 않기 때문에 (아빤 왜 답장을 모아두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떤 문장을 써 보냈을지 추측할 수밖에 없다.
바로 내용부터 살펴보자.
1986년 12월 23일
불교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 중에 '인연'이라는 말이 있읍니다.
물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단어라 할 수 있지요.
제가 이 자리에서 떠들고 싶은 것은 단어 해설을 놓고 왈가왈부하자는 것은 아니고, 단지 나와 관계가 맺어지는 사람들 중에 댁의 경우는 어느 정도의 심도로서 나와 인연을 갖게 되겠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한 번 떠들어 보는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하다 보니까 소숫점 이하의 퍼센트를 놓고서도 왁자지껄한 요즘 세상, 대가리 나쁜 이 몸은 산수적 숫자를 볼라 쳐도 거부감에 온몸이 시끈거리니 인간관계를 산술적(혹은 이해타산) 개념으로 표현하는 혹자의 주장은 나로 하여금 원산폭격의 최첨단을 달리게 해 줍니다.
복잡한 얘기는 모두모두 각설하고 말입니다.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로 하죠.
씨의 화끈한 표현에 매력을 느낍니다.
운이 좋다는 말이 사실일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도 듭니다.
감정 표현이 워낙 무딘 이 몸인지라 뭐라 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마구 지껄여대는 나의 말들이 씨를 통해서는 질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는군요.
너무 성급한 판단일까요?
씨의 편지 잘 받아보았읍니다.
"오늘 답장이 안 오면 자살하고 말겠어" 하는 시국 선언을 해버린 터라 자그마한 두려움 속에 편지를 기다렸었읍니다. 다행히 답장은 와 주었고, 나의 주검을 보지 않게 된 김 상병의 눈빛은 안도의 한숨(?)으로 가득 차 있었읍니다.
이 친구 저 친구 불러 모으니까 한 열댓 명 될까,
씨의 편지를 쥐고 흔들면서 만세 삼창을 외치고, 터져 나오는 폭소 속에 자랑, 자랑, 또 자랑.
씨는 대단한 일이 아니었겠지만, 나에게는 목숨을 구해준 수호신 같은 것인지라 삼고초려하는 전우들에게 만은 내용의 일부를 공개......
이때만은 김 상병의 입가에 썩소(썩은 웃음)가 맴돌고......
어찌 됐든, 이런 시간만큼은 군발이에게 있어서 최고의 시간이 아닐는지.
씨 !
상황 묘사가 조금은 과장된 듯 하지만 직접 참관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 못 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답니다.
이것이 바로 군발이들의 멋이고, 낭만이고, 애환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군요.
아무튼 오늘은 태부(체부)의 날이었어요!!!
아직은 공개적으로 자신을 펴 보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나에 관한 단편적인 것 몇 가지를 더 소개드릴까 합니다.
내가 알기로 태부(체부)라는 애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모범생 축에 끼인다고 볼 수 있었읍니다.
잘하는 것도 없었지만, 못하는 것도 없었읍니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부모님, 선생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끝마쳤읍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몇 달간은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하는가 싶더니, 무언가에 빠지기 시작했읍니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독서도 하고, 투쟁도 하고, 시련을 겪기도 했읍니다.
학교 성적은 권총 투성이었고, 무언가와의 괴리감은 점점 넓어져가기만 했읍니다.
삶을 향한 계속적인 도전이었읍니다. 그러나 현실은 곧 현실이었읍니다.
영장은 태부라는 애를 군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끌어들였읍니다.
씨 !
지난번 편지에 '집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읍니다.
오늘은 '몰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씨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빨리 보내버리고 싶은 연말입니다.
즐겁게 지내십시오.
96.12.23
유태부
지난 편지에서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씨'는 00씨에서 이름을 내 멋대로 삭제한 게 아니라 정말 공란으로 남아있는 표현이다. 왜 굳이 이름을 빼고 불렀는지 추측해 보자면, 부끄러움? 어색함? 이름을 입에 올릴 정도의 친밀감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차리는 최소한의 예의? 정도였지 않을까 싶다.
그 시절에 통용되던 표현이었는지, 스물몇 살 태부의 센스(?)였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제쯤 이름을 언급하게 되는지, 그땐 그 둘의 사이가 얼마나 가까워졌을지에 집중하면서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것도 꽤나 쏠쏠한 재미이다.
사실 이 편지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이십 대 초중반 남성 여럿이 편지 한 통에 신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소릴 질러댔을지 상상됐던 대목이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피식- 웃음 짓게 만드는 바로 그 문단.
그 시절 태부는 매일매일 조마조마하며 답장을 기다리고, 편지라는 이름의 종잇장에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던 순수한(?) 젊은이였다는 게 아직도 잘 와닿진 않는다 ㅋㅋㅋ 편지를 머리 높이 흔들면서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등장했을 태부와 만세 삼창을 외쳤을 또래 군인들이라니...ㅋㅋㅋ 마치 영화 한 장면처럼 귓가에 고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앞전에도 말했듯 엄마는 답장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했다. 100통을 받으면 5~6통 보낼까 말까?
모인 편지의 양과 내용을 보면 흡사 태부의 일기장과 다름없긴 하다. 그러니 저 답장이 어찌나 귀했을지 어느 정도 상상은 된다. 일방적인 편지 배달꾼을 자청해서일까, 스스로를 '(우)체부'로 지칭하는 표현도 보인다.
이름과 유사한 발음을 찾아내 나름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다니.. 내 아빠 낭만 있는 젊은이였다.
아, 잊지 말아야 할 것!
편지 속 등장하는 김 상병은 엄마의 사촌 아저씨(?)로, 태부의 선임이자 이 둘을 이어준 장본인이다.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게 다리를 놔준 정도긴 하지만 결국 결혼까지 골인했으니 나쁘지 않은 수준의 오작교였다고 할 수 있겠다. 내 친척과 연애하는 군대 후임이라니... 군에서 태부는 꽤 괜찮은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다음엔 조금 더 친해진 둘을 마주하길 기다리며 오늘 편지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