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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yisinpain Nov 25. 2020

매니큐어 바르기

별안간 한바탕 소나기가 내릴 것 같이 공기는 물에 젖어 무거워진 솜처럼 축축하다. 하늘은 탁하고 사람들 입으로부터 무차별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무미건조한 담배연기 같은 구름이 뒤편에서 묵묵히 작열하고 있는 해를 집어삼켰다. 여전히 덥다. 하루하루 천연덕스럽게 뒤바뀌는 날씨는 내 기분을 좌우한다. 오늘의 날씨는 곧 내 몸을 독차지해 조종했다. 나도 모르게 내 책장 서랍을 무의식적으로 열고 닥치는 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애인이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파우치가 눈에 밟혔다. 애인과 나의 두 쌍의 눈에 담고 싶은 풍경이 수놓아진 파우치였다. 그것을 들어 보이자 지퍼 끝 고리에 달려있는 긴 가죽 끈 두 개가 을씨년스럽게 휘적휘적거리는 모양새를 나는 참을 수 없었다. 곧바로 옆에 있던 가위를 꺼내 들어 쉽게 잘리지도 않는 소가죽을 철근 자르듯 칼질하기 시작했다. 비릿한 냄새가 손 끝에서 퍼졌다. 그것을 코에 가까이 갖다 대자 도축 따위가 업인 사람의 슬픈 얼굴에서 날 것 같은 악취가 코에 모여있는 혈관을 저미기 시작했고 나는 곧바로 헛구역질을 했다. 동생은 내 방 바로 옆에 난 부엌에서 뭔지 모를 고기를 굽고 있었고 나는 그 동물을 맨손으로 찢어 죽인 그 죄악을 리더기에 읽힌 듯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내려 보이는 두 손이 더러웠다. 물로 씻고 비누로 씻어도 더러웠다. 핑 돌게 하는 화장품 냄새가 가득한 크림을 처발라도 냄새가 났다. 나는 책상에 널브러져 있던 매니큐어를 닥치는 대로 바르기 시작했다. 씻겨지지 않는 더러움을 감추기라도 해야 했다. 첨예한 붓털이 내 피 묻은 손 끝을 갈겼다. 내일 누군가를 만나면 예쁘다고 칭찬받을 그 손끝을 하염없이 덧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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