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산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autyisinpain Apr 14. 2019

얼마 전 친구가 직접 뜬 울 코스터를 선물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평소에 마시지도 않던 차를 끊임없이 우려 마시고 있다. 검은빛을 띤 주홍색이 감도는 레몬차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표면에 반사된 빛에 눈을 찡그린다. 응징이라도 하는 듯 쏘아진 빛을 따라 눈초리를 치켜세우다 파란 하늘에 안겨있는 반짝이는 해에 시선을 멈춘다. 


우리는 저 빛을 싫어했다. 파도에 몸을 적시고 나와 모래밭에 누워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려 할 때면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무차별적인 빛살이 들어와 우리를 방해했고, 네가 선물해준 꽃을 좀 더 오래 보려 벽에 거꾸로 매달아 놓으면 하루아침에 원래의 색이 어떤 빛깔이었는지 잊을 만큼의 괴상한 색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렇게 좋지 않던 빛과의 기억들을 나열하다 그 옆으로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에 시선을 옮긴다. 사과를 하려는 걸까, 내 앞에서 여태 반짝이던 해가 구름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정확히 너와 함께 바라보던 그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내 곧 주변의 초록빛을 띤 잎들은 올리브빛으로 물들고 건물 외벽도 주황빛으로 물들더니 결국 내 찻잔에 담긴 차가워진 차도 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빛과 함께한 너와의 추억들을 정리하다 어느새 길어진 그림자에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펜을 잡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록 물들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