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autyisinpain Mar 22. 2019

Stand Proud

Midsumma festival


푹푹 찌는 여름이었다. 그곳의 여름은 이곳과 다르게 건조하지만 그날만큼은 정말 푹푹 찌는 날씨였다고 기억한다. 앞으로 일주일간 후덥지근하다는 소식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집안에만 박혀있을 내가 아니었다. 살다 보니 역마살이 든 나는 친하게 지냈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Midsumma Carnival

생각보다 일찍 만나게 된 둘은 지체 없이 Alexandra garden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뜨겁다 못해 불타올랐다. Midsumma festival.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페스티벌 중에 가장 이름값 하는 페스티벌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대로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모두가 함께 어울리며, 정신없이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한창 그곳에서 즐기고 있을 때 잠시 현기증을 느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가 아니라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열정에 데어서 느낀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그곳의 사람들은 전부 대단했다.   

관객들이 Alexandra Garden 에서 Midsumma Carnival을 즐기고 있다.


여느 페스티벌과 비슷하게 이 곳에도 수많은 푸드트럭과 메인, 서브 스테이지 그리고 이벤트 부스들이 늘어서 있었다. 작은 차이점이 있다면 이벤트 부스들은 다른 페스티벌처럼 페스티벌 협찬 기업이나 브랜드가 아닌,  LGBTQ와 관련된 협회나 단체들의 것이었다. 그들은 여러 부스들을 이용해 LGBTQ 굿즈와 관련 도서를 팔았고 서명운동을 열었다. 또, 많은 시청각 자료들을 사용해 작은 전시 그리고 간단한 강연을 열어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에 열중했다. 대부분의 부스는 그곳에 있던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모두가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는 듯 보였다.


이 페스티벌이 LGBTQ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개선하고, 다양한 성별과 성별에 대한 경험을 서로 공유하며 살아가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열리는 만큼, 그와 관련된 팻말과 선전물도 많이 보였다. 현장에서 봤던 수많은 문구 중에 아직까지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지는 문장을 소개한다.

STAND PROUD

Stand proud. 우리말로 직역해도, 나의 방식대로 의역해도 이 문장 자체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기엔 역부족하다. 이 문장을 외치고 다닌 그들 한 명 한 명마다 꽉꽉 채워진 그 자신감과 뿌듯함이 여전히 그리고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내가 멜버른에서 11개월 남짓 살면서 느낀 것들 중 하나는, 이 곳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그들의 다양성을 중시하고 차이를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부 그렇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우리는 그들의 다양성을 '중시'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Midsumma Carnival에 모인 대부분은 LGBTQ가 아닌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Victoria 주에서 가장 큰 LGBTQ 페스티벌인 만큼 대부분의 LGBTQ가 모였겠지만, 그 수많은 관객을 이루는 모든 사람들이 LGBTQ일리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각기 다른 문장을 외쳤지만 모두 한 마음 한 뜻이었다는 것에 의심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Alexandra Garden 에서 Midsumma Carnival을 즐기고 있다.


위의 오른쪽 사진을 설명하려 한다. 저 때의 나는 더위를 피해 나무 밑으로 피신해있었다. 도로에 앉아서 관객들 구경을 하고 있는데, 눈을 씻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내 앞에 펼쳐졌다. 사진으로 볼 수 있듯이,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를 데리고 페스티벌에 방문한 것이다. 더 놀랐던 것은 그 수가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서울 퀴어문화축제를 가져와 생각해보자. 안타깝게도 포털 사이트에서 관련 기사를 찾아 공감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을 살펴보면 '자녀교육에 좋지 않으니, 숨어서 진행하라'는 의견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반면 카니발에서 만난 부모들의 표정은 기대감에 젖어있고 행복해 보였으며 자유로웠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You can stand proud."


Pride March

Midsumma Carnival에서 깨닫고 느낀 것이 워낙 많아야지, 나는 Midsumma Festival의 다음 이벤트인 Pride March에서 관객이 아닌 자원봉사자로서 그 현장을 느끼고 싶었다. 가슴팍에 무지개가 그려진 배지를 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실질적으로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Melbourne International Art Festival에서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만난 Volunteer coordinator에게 메일을 보냈다. "혹시 이번 Midsumma festival도 하고 계시면 제가 그곳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나요?"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Of course! we'd love to!"


나는 아침 10시부터 저녁까지 진행됐던 Pride March에서 Midsumma Festival 관련 설문조사를 받아내는 업무를 맡았다.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여유롭고 해야 할 일이 적어서 그곳에서의 나는 관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 많은 사람들의 설문을 받지 못했냐는 질문에는 '그곳의 사람들이 행진을 준비하느라 많이 바빠 보여서 선뜻 태블릿 PC를 내밀지 못했다'라고 변명을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이 Pride March에서 행진하고 있다.


50여 개 가 넘는 단체와 협회가 Fitzroy street을 따라 Catani Garden까지 행진을 했다. 대규모의 행진임에 따라 관람하는 관객도 많아 인파가 넘쳤다. 정부에서 나온 시 소속 의원들, 호주 항공사, 디즈니 사 등 우리가 익히 들어봤을 법 한 기업들도 참여를 해서 반가웠다. 그들은 창피함을 무릅쓰고 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정체성을 가진, 이 소속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고 행복하기 위해 행진에 참여한 듯했다. 행진은 마치 퍼레이드 같았다. 관현악단, 댄서, 싱어들도 참여해 행진 도중 공연을 펼쳤고 방송사에서 온 취재진들과 MC들의 인터뷰까지 더해져 딱딱하고 비장한 행진이 아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완성됐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벤트는 경찰과 소방관들의 경례였다. 우리나라의 서울 퀴어문화축제 현장을 떠올려보자. 참가자들과 기독교 단체의 대립, 그 사이에서 충돌을 저지하는 경찰들의 상황이 눈앞에 그려질 것이다. 하지만 Pride March에서의 경찰들은 행진의 종착지에서 LGBTQ를 포함한 모든 관객들 앞에서 경례를 하고 해산했다. 경례를 통해 시민 모두의 안위를 지켜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존경을 표한 것이었다.

Hi, I'm Sam.
Pride March 봉사자와 Sam (오른쪽).

Pride March에서 사귄 친구 하나가 있다. 이름은 Sam. 당찬 여성이다. 그 친구를 떠올리면 먼저 나에게 건넨 인사말, "Hi, I'm Sam."과 함께 여유로웠던 표정이 생각난다. 누구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처음으로 건네는 인사말이지만, 그 흔한 첫인사가 기억에 남는 걸 보니 그 친구가 퍽 인상 깊었나 보다. 나이도 같고 관심사도 비슷해 이야기보따리를 끊임없이 풀고 있는데, 불쑥 그 친구가 나에게 한국인이냐 물었다. 어떻게 알았냐 되물으니 부모님이 한국인이라 했다. 그 친구는 한국에서 태어난 지 두 해만에 호주로 이민을 왔다. 우리나라 말이 서툴지만 된장찌개에 김치를 먹는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운 좋게 같은 포지션에서 일하게 된 우리는 같이 설문을 받으러 다니고 무대에서 춤을 추고 끼니도 함께 하면서 더 가까워졌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 친구가 내 앞으로 고민을 툭 던졌다. 자신이 여자 친구와 함께 동거 중인데 부모님에게 말을 못 하겠단다. 나는 친구의 고민을 듣자마자 말문이 턱 막혔다. 듣고 있는 내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LGBTQ 페스티벌에 자녀를 데려가는 나라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말을 못 꺼내겠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있고 확신이 있던 친구지만 그 고민을 말할 때만큼은 자신 없고 불행해 보였다. 마음이 정말 아팠다. 나는 친구로서 그 고민을 해결할 만한 조언을 주고 싶었지만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우울한 생각에 잠긴 나를 앞으로, 그 친구는 지금처럼 계속 노력하면 언젠가 부모님께 말할 날이 오지 않겠냐고 그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지만 친구의 얼굴엔 여전히 걱정이 자리했다. 어리석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그 친구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나에게 네가 Sam이라고 했던 것처럼, 너는 Sam이다.


이번 Midsumma Festival 2018은 500명이 넘는 예술가들과 함께 100여 곳의 장소에서 170여 개 남짓한 이벤트를 제작해 28만 명이 넘는 관객들에게 세대와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이야기와 경험을 어떻게 공유하는지 몸소 가르쳤다.

Midsumma Carnival의 메인 스테이지(왼쪽) 그리고 Pride March에서 봉사 중인 본인과 참가자(오른쪽).

Midsumma Carnival, Pride March를 포함한 170여 개의 창작물은 각각 저마다 다른 장르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했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가 지금껏 외치고 있는 것은 하나다.

Stand Proud. Be bright, be queer and keep being amazing.

매거진의 이전글 MIAF 두 배로 즐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