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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아리 May 07. 2023

내가 명료해지는 방법-모닝페이지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자꾸 말을 만들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의식의 흐름대로 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다.  '이걸 왜 써야 하지?" 불쑥 드는 생각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낸다. '그래  한 달만 써보자."

그렇게 아슬아슬 나의 모닝페이지는 시작됐다.


거기, 나를 세워둔 채

나는 늘 갈등을 피하며 살아왔다. 부탁 앞에 거절이라는 것을 몰랐으며, 불평불만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다.  늘 조용했고 더욱 숨죽여 남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무색무취로 만들어 갔다. 들어 올리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는  안의 물처럼 '나'라는 질량은 점점 작디 작아져 갔다.


살아가다 보면 오도 가도 못하고 발이 묶이는 순간들이 있다. '극복'이라는 걸 해야 할 순간들이다.  '극복'을 해야 한다는 건 두려움의 대상이 있다는 말이다, 두려움을 주는 것은 '누구'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상황일 수도 있다. 내면의 고독감일 수도 있고, 지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로 하여금 '갈등'을 피해 다니게 만든 두려움은 무엇일까?


내가 인지하고 있는 어린 시절 나의 첫 모습은 이불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숨죽여 우는 아이다.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기가 나의 과제인양 5살이 되었을까 싶은 나는 그렇게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법을 가장 먼저 배웠다.


아빠가 술을 마신 날이면 늘 집안은 시끄러웠다. 사람을 유달리 들들 볶는 주사는 고등학생이었던 언니를 향했고 그 와중에 온 가족이 한 덩어리가 되어 육탄전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터울 지는 남매들 사이에 막둥이로 태어난 내가 보기에 그 광경은 눈물만을 뚝뚝 흘릴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그 무엇도 없어 보였다. 맞고 있는 언니가 불쌍했고, 아빠와 오빠들은 무서웠다. 그 폭력이 혹여라도 나에게 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은 내 머리 위에 이불을 뒤집어쓰게 하였고, 가족들의 비명을 외면한 죄책감이 그 위에 한 겹 더 게를 더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질문이 필요하다.

큰아이가 상담치료를 다닐 때였다. 의사 선생님이 아이에게 질문했다. "과거로 돌아가 용서받고 싶은 사람이 있니?" 얼만간 고민을 하던 아이가 말을다.

  "6살 때 유치원 담임선생님이요.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나에게 왜 그런 심한 말을 했는지요."  

 충격이었다. 당시 아이는 10살이었고 4년이 지나오는 동안,  아이에게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얼마나 그 순간이 고통으로 남아있으면 4년의 시 지났음에도 아이의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일까?

당시 유치원 선생님을 찾아가는 일은 없었지만 아이는 그때의 기억 앞에 자신을 세우는 만으로도 큰 치유를 받은 듯했다.


사람은 누구나 들추기 싫은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잘 아문 상처라면 다시 덧날 일이 없겠지만 채 아물기도 전에 덮어버린 상처라면 다시 덧나는 순간이 꼭 찾아온다.

그때까지나는 나를 지난날의 상처 앞에 바로 세울 용기가 없었다. 자칫 생각이  떠오를 때면 그 생각을 뭉게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10살 내 아이가 자신의 아픔과 직면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스스로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저 밑바닥에서 생명을 잃지 않고 꿈틀대고 있는 나의 아픔이 아직 거기에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물어야 한다. 나의 마음이 어떤지 들여다봐야 한다. 상처를 그대로 방치한 결과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그러니 상처가 생겼던 과거로 걸어가 그때의 나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를 건네한다.



제대로 된 질문을 해야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있다.

과거 제 때에 풀지 못한 두려움의 숙제가 있다면, 겁나는 질문이 있다면 어떻게 풀어야 할까?

나를 들여다보고 위로를 건네야 하는데 어떻게 전달을 할까?

내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모닝 페이지'다.


새벽,

펜을 들고 노트를 펼치고 기다린다, 나의 의식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 적는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써 내려간다. 그렇게 매일을 거치다 보면, 어느 순간 내면의 아이를 만나 실컷 수다를 떨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모른다.

나에게 물어야 할 것들을 용기 내어 물어볼 수 있게 될지 모른다. 하루하루를 지나오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쌓여가며 나는 찾아가게 될 것이다. 물음표로만 남아있던 질문들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를 답할 수  있어야 내 아이의 질문에도 같이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내 답이 중요하다. 부모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능력 있는 서포터즈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하게 때문이다. 나를 인식하고 내 마음을 읽어 낼 수 있는 방법을 그래서 한 가지쯤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나는 새벽 글쓰기, 모닝 페이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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