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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쌤 Mar 23. 2022

머리카락 자르는 날

가끔은 철학자가 됩니다(9)

군에 다녀온 이후 나는 줄곧 혼자 살았다.

남에게 내 이삿짐을 맡겨본 적도 없고, 거의 모든 일을 남에게 맡겨본 적이 없다. 

남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피해가 될까봐,

그 사람이 귀찮아할까봐,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내 일이니까, 하는 생각이 컸다. 

 

그런 의미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날은 항상 특별하다.

내 일을, 내 몸을 완전히 맡기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은 스스로 자를 수 없으니까.

미용실에 들어서면 나는 거의 아기같은 존재가 된다.

내 머리카락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디자이너의 말에 온전히 따르는  것뿐이다.

어디서도 벗지 않던 안경을 벗은 채 있어야 한다.

일어서라면 일어서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구부려한다면 그렇게 한다.

그런 시간을 거의 한 시간 넘게 보내니 미용실에 있는 시간은 낯선 시간이고, 아이로 돌아간 시간 같다.

벌써 3년이 넘게 온 곳이지만 안경을 벗은 채 있다보니 사실 미용실이 어떻게 생겼고,

나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거나 서브해주는 사람들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모른다.

어쩌면 길거리에서 스쳐지나가도 몰라볼 것만 같다. 


나에게는 특별한 날일지 모르지만 헤어 디자이너는 그렇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 미용실을 찾는 나에게는 특별한 하루이고, 특별한 시간이지만 그들에게는 수많은 고객 중에 하나일 테니까.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사람이 얼마나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가는 지 알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주 약간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나 역시 그렇게 사람을 대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일상일 뿐인,

누군가는 더 나은 서비스를 원하지만 나는 그저 고객이 좋아할 수준으로만 내 역할을 하는.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되길 바란다.

아무 댓가를 치르지 않아도 주는 것을 서비스라 하기도 한다.

남을 돕거나 시중을 드는 것도 서비스이다.

나는 어떤 서비스를 받고 싶은 걸까.

사람들은 어떤 서비스를 받으려고 하는 걸까. 어떤 서비스가 더욱 기분이 좋은 걸까. 


나는 기본적으로 받는 걸 잘 못한다.

주는 건 잘할 수 있는데 받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

그러다보니 돈을 주고 서비스를 받는 일, 그러니까 남이 나를 돕거나 시중을 드는 것을 즐기지 못할 때가 많다.

이것도 해달라고 하고, 저것도 해달라고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길 주저한다.

남을 시켜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익숙치 않아서도 그렇지만 돈을 주고 나를 돕게 만드는 게 어쩐지 낭비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서비스에 이 정도의 값어치는 도대체 어떻게 매겨지는 걸까.

노동력을 돈으로 산다는 건 정말이지 가능한 일인가.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 노동력을 돈으로 산다는 것, 사람을 사서 쓴다는 것.

지금은 모두들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지만 생각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상품이 거래되는 건 당연하지만 사람이 거래되는 건, 

그러니까 사람의 노동이 거래되는 건 아무래도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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