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철학자가 됩니다(15)
당신은 죽음과 몇 번이나 마주해 봤는가? 이 문장을 읽는 동안 굶주림과 질병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한 아이가 죽었다.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멀고 가난한 나라의 아이가, 저런, 또 한 명 죽었다. 이 글을 다 읽는 동안 10명 이상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안타까운 죽음이 너무나도 빈번하게 벌어지는 현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내가 마주한 첫 번째 죽음
선배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역. 열차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무의식중에 고개를 드니 나를 향해 낯선 남자가 힘껏 점프를 하고 있었다. 서서히 멈추기 시작하던 열차에 부딪친 남자는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사건 이후에 나의 어머니께서는 ‘글 쓰는데 도움이 되는, 참 좋은 경험했구나’라고 하셨다. 대단히 무서운 분이다.)
내가 마주한 두 번째 죽음
큰아버지는 베트남 전쟁 참전 이후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셨다. 썩어가는 다리를 발목, 무릎, 허벅지까지 세 차례나 절단 수술을 받으며 힘겹게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중환자실에서 열 명 남짓의 친족들이 임종을 지켰다. 산소호흡기를 떼자 눈을 한 번 크게 뜨시고, 눈물 한 방울을 흘리시더니 생을 마치셨다. 화장(火葬)을 했고, 어렸을 적 크게만 보이던 큰아버지는 아주 작은 단지 속에 수많은 조각으로 나뉘어 땅에 묻히셨다. 마치 살아온 시간을 잘게 분쇄해 놓은 것 같았다.
내가 마주한 세 번째 죽음
재작년까지 신앙생활을 하던 교회의 청년담당 목사님에게는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 있었다. 목사님 형과 우연한 계기로 친해졌고, 연락도 하고, 몇 번은 그 분이 일하시는 곳에 놀러가기도 했다. 믿음의 가정에서 형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을 보름 쯤 앞두고, 갑작스레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혼인신고를 한 상태였고, 중국에 살던 아내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슬픔보다는 화를 참지 못한 눈물이었던 것 같다. 고백컨대 하나님을, 아주 많이 원망했었다.
죽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개인의 정체성과 지위, 권력을 잃게 되는 상징적 죽음과 육체의 생명을 잃게 되는 실재적 죽음. 나는 한 때 실재적 죽음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깨달았다. 나는 상징적 죽음을 더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상징적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나의 지위가 사라지고, 나의 정체성이 부정당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는, 참 이상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징적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힘은 예술에서 나온다. 예술은 나의 정체성이 온전히 살아있는 '안전지대'다. 왜냐고? 예술로 인해 우리는 '내가 느끼는 것은 나만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