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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록 Oct 07. 2024

추락

문성은 오늘도 잠을 놓치고 말았다. 피로가 부족한 탓인지, 오후에 들이킨 카페인 때문인지 수면 충족 조건을 못 채운 듯했다. 고요한 방황이 시작되었다. 새벽 두 시 반, 문성의 오갈 곳 없는 정신이 의지할 것이라곤 스마트폰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귀결이 인스타그램을 켜 화면을 쓸어내리는 일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별로 궁금하지 않은 '팔로잉' 사람들의 피드를 타고 내려가며, 문성의 눈은 스마트폰 속, 바닥없는 밑으로 성의 없이 추락했다.


실수하고 말았다. 반쯤 벗은 여자의 사진이 문성의 손에 두 번 터치 되어 버린 것이었다. 붉은 하트가 크게 떠 올랐고, 그는 빛의 속도로 하트를 없앴다. 분명, 문성이 아닌 그의 엄지손가락의 실수였다. 지인이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사진 속 여자는 전 여자친구 은주의 절친, 희수였다.

’K_Munseong83님이 회원님의 게시물을 좋아합니다‘

문성은 이 알림이 희수에게 뜨지 않았길 바랐다. 혹시라도 알림이 갔다면 어쩌지, 은주에게 자신을 마치 엉큼한 사람이라는, 여자 비키니 사진이나 훔쳐보는 사람으로 폭로할 것만 같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문성은

 '오늘 잠은 다 잤다'라고 생각했다.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문성에게, ‘아무렴 어때. 그런 것들은 옛 인연일 뿐이야’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에 안정이 찾아온 건 30분이나 지난 후였다. 은주도, 그녀의 절친 희수도 어차피 안 보게 될 사이인데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며, 문성은 외면하듯 다시 피드를 타고 내려갔다.

민제의 게시물이 보였다. 만날 때마다 자신의 여자 친구를 흉보는 민제는 ‘밀월여행’이란 제목의, 바다에서 애정 행각을 벌이는 모습의 사진을 피드에 올렸다. 문성은 ‘이렇게 좋을 거면서 왜 그동안 찡찡거렸니?’라는 짓궂은 댓글을 달려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마음에도 없는 하트를 누르고 피드 아래로 더 내려갔다.

‘오늘도 우리 여봉봉과 행복한 시간’이라는 제목의, 레스토랑에서 아내와 함께 와인잔을 부딪히는 상준의 릴스를 보았다. 누가 결혼을 한다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리겠다던 상준은, 인스타그램에서만큼은 어느새 결혼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그래, 마음 잡고 열심히 사는 친구에게 응원 댓글이나 달아주자, 하며 문성은 ‘화.이.팅’ 세 글자를 입력했다.

평소에 “안돼! 나 다이어트해야 해!”라며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여사친 민정의 음식 사진을 보며 문성은 생각했다.

‘그동안 피드에 올린 음식만 먹지 않더라도 다이어트는 저절로 되겠네’

문성은 이 문장 그대로 댓글을 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보복이 두려워 포기하기로 했다.

마침내 문성은 정신이 나른해지며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새벽 네 시였다. 스마트폰을 닫으려는 차에, 어딘가 익숙한 느낌의 게시물이 보였다. 아니, 사진 속 장소가 익숙했다. 은주와 자주 걷던, 그녀 동네의 거리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문성은 이 거리를 인스타그램에서 다시 볼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게시물의 주인공은 낯선 ID였고, ID 옆에 ‘팔로우’ 버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알고리즘으로 친구 추천이 뜬 모양이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문성은 ID를 타고 그 사람의 피드로 들어갔다.

‘네, 맞습니다 저희!’라는 게시물 속에서 은주가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녀의 어깨에는 남자의 손이 걸쳐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선글라스를 강제로 씌운 것처럼, 문성의 눈앞은 아득한 어둠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올 것이 온 것뿐이었는데, 문성은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 무엇도 인정하기 싫었다. 오늘의 잠 따위는 없었다.

아득히 깜깜했던 시야가 점차 정상적으로 돌아오자, 문성은 하트를 잘 못 눌렀던, 반쯤 벗은 희수의 사진으로 순식간에 피드를 스크롤했다. 그리고 하트를 눌렀다. 문성은, 자신의 이런 행위에 대해 본인조차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그는 바닥없는 밑으로 하염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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