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륙했다면 반드시 내려야 한다
여전히 비행하는 것이 즐겁고, 설렌다. 이토록 비행을 좋아할 수 있는 이유는 '몰입의 순간'을 느낄 수 있어서다. 비행하는 동안에는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매 순간마다 초집중(Razor focus) 해야 한다. 그때만큼은 온갖 잡생각들이 사라지면서 그 순간에만 몰두하게 된다. 이런 몰입의 순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비행이 유일한 것 같다.
어느덧 비행시간 600시간을 쌓았다. 대부분의 비행은 예상대로 흘러가지만, 가끔씩 가슴이 철렁거리는 생사고비를 맞는 순간들도 온다. 물론, 탑건에 나오는 매브릭이 겪는 정도는 아니지만…
비행 교관으로서 다양한 비행 경험을 하고, 이러한 경험적 데이터를 쌓는 것은 정말 큰 공부이자, 특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학생 때 비행할 때의 태도보다 훨씬 더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매번 비행기에 오른다.
“하수들은 학위를 받을 때까지는 열심히 공부하다가 받는 순간부터 논다. 반면 고수들은 학위를 받은 이후에 더욱 노력한다. 박사라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박사학위를 이제 진짜 공부를 시작하라는 자격증 정도로 생각한다.” - [일생에 한 번은 고수를 만나라] - 한근태 지음
요즘 비행을 하면서 너무나 당연 것인데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을 발견했다. "비행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비행기가 크루즈* 하는 시점은 덜 중요하게 여겨도 되는 것인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에만 집중하고, 목적지까지 가는 그 중간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건 정말 큰 함정이다. 그 이유는 비행기가 안전하게 내리기까지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했던 날씨; 비, 눈, 아이싱(Icing), 갑작스러운 비행기 고장; 엔진 고장, 비행기 부품 화재, 전기선 고장, 교통 관제사와 소통 문제, 몸 컨디션 상태 악화 등등.
완벽한 이륙을 했더라도 이러한 변수들을 크루즈 시점에서 잘 대처하지 못한다면 안전한 착륙을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파일럿이 지상에서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의 과정을 얼마만큼 준비를 했는지에 따라 그 비행이 안전하게 끝날지 아니면 산으로 가게 될지 80%가 결정된다.
이것을 우리 인생에 한번 대입해보자.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할 때 힘찬 다짐을 하고, 목표한 바가 이루어졌을 때의 모습을 기쁘게 기대한다. 그리고 대부분 우리들은 그 중간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수많은 시행착오들과 변수들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상치 못했던 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버티지 못하면 결국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비행으로 치면, 원했던 목적지에 안전하게 착륙을 못하게 되는 것처럼.
그러니 새로운 도전을 하기 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화려하고 창대한 목표, 그 목표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맞이한다면, 잘 대처하고 꿋꿋이 버텨내어 끝내는 목표를 성취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크루즈(Cruise) 시점: 비행기가 원했던 고도에 도달하여, 그 고도를 유지하면서 비행하는 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