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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Jun 11. 2024

어느 택배 기사의 위선

저녁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며 아파트 입구를 향해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턱, 턱, 툭'하는 둔탁한 소리가 사위를 울렸다. 무언가 무거운 어떤 것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이곳에서 자주 보게 되는 한 물류센터의 택배 차량. 둔탁한 소리의 정체였다.


기사는 이제 막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는지 차량 뒷문을 열고 올라가 배송할 물건들을 살피면서 그것들을 바닥에 신나게 내던지고 있었다. 소리만 요란했을 뿐 아니라 바닥에 던져진 상자들은 물건끼리 부딪히는 반동으로 인해 바닥에 어여쁘게 안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멀리서나마 세상에,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찌된 일인지 그에게는 흔한 손수레하나 없었다. 손수레가 있었다면 그 위에 얹기 위해서라도 차곡차곡 쌓을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를텐데.


기사는 조금 늦게야 어떤 존재가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차린 듯했다. 매우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나와 스치듯 눈이 마주쳤고 그제야 상자 떨어뜨리는 속도와 강도를 낮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 겸연쩍어 보이기도 했다. 애써 무심히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으나 꼿꼿이 서서 물건을 던지던 아까의 자세와 달리 허리와 무릎을 조금씩 굽히고 물건을 두 손으로 바닥에 조심스레 '착지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 조금 더 당혹스러웠다.


다만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에, 그 소리의 정체에 본능적으로 시선이 갔고 역시 반사적으로 다소 거칠어 보이는 그의 방식에 놀라움과 안타까움의 감탄사가 나왔을 뿐 나의 시선에는 전달하고자 했던 어떠한 의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내 날것의 시선에 작업 방식을 바꾸었다. 그것이 당혹스러웠고 나는 시선을 거둔 채 빠르게 트럭 옆을 지나쳤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듯.


때론 무해한 시선도 그 자체로 언어 그 이상의 메시지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소중한 내 물건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이 달가울 사람은 없다. 그에게 좀 더 신중하고 정중한 태도로 물건을 다루어달라는 직업의식을 요구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아무런 변화 없이 처음과 똑같이 패기 넘치게 물건을 내던지길 반복했다면, 나의 감정은 간사하게도 불쾌감으로 변했을까? 그렇다면 이 글의 제목은 그 여자의 위선, 이 되어야겠다. 하지만 그것도 모르겠다. 그저 나의 시선 하나가 잘못 전달한 그 무엇이 괜히 맘에 걸렸다. 시선 하나에 태도를 급전환한 그를 보며, 과거 어느 시점에는 나같은 시선 하나가 그를 집요하게 괴롭혔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 본다. 어느새 내 머릿속엔 문득 굴려지는 택배상자만큼이나 고단했을 그의 지난 서사가 펼쳐진다. 그리고 어쩌면 그 모습에서 내가 본 것은 그 남자가 아니라  오늘도 지독한 민원에 시달린  아니었을까.


그냥 그도 나도 쉬고 싶다. 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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