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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Nov 08. 2021

기본에 충실했던 아빠표 잔소리

외출 길에 들리는 낯익은 잔소리


아이와 함께 외출하는 날이었다.

문 밖을 나서면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내 손을 놓지 않고 꼭 잡고 다니던 아이는 이제 어느덧 내 발걸음보다 두어 걸음을 먼저 가는 아이가 되었다.


그런데 앞서 가던 아이가 두툼한 외투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고 지하주차장 계단을 빠르게 내려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어, 저러면 안 되는데. 주머니에 손 넣고 걸으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자동 반사처럼 떠오른다. 물론 아이는 내 심각함과는 다르게 계단 끄트머리에 안전하게 도착하여 뒤늦게 내려오고 있는 나를 기다린다. 아이가 계단에서 엎어져서 코를 박고 피를 흘리며 앰뷸런스가 달려오는 영상은 그쯤에서  일시 정지된다.


 '하긴, 그건 우리 아빠표 잔소리였지.'

위기탈출 넘버원의 한 장면 같은 영상의 창을 머릿속에서 서둘러 닫아빠의 음성을 자동 재생하며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런 얘기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눈길 걸을 땐 주머니에서 손 빼고

비 오는 날은 우산을 높이

끈을 묶을 땐 다시 풀기 좋게

화장실은 너무 참았다 가지 않고


가루약 먹을 땐 먼저 물을 조금 먹고

큰 승합차와는 붙어서 가까이 걷지 않고

운전할 땐 라디오 듣지 말고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땐 꼭 옷소매에


배에 바람 들어가지 않도록 바지에 상의를 넣어서

아이 바지는 용변 급할 때 벗기기 좋게

바지의 고무줄은 배를 조이지 않게

김은 절대 맨입에 먹지 않게



네 맞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아빠표 잔소리입니다.




아빠는 과묵하신 편에 신중하고 조심성이 많은 성품이셨다. 지난 글에서도 썼듯 나와 오빠, 동생을 유난스레 키우시진 않았는데 유독 안전에 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앞서 나가셨다. 자식이 셋인 아빠에게 세상은 위험 천지였다.


눈이 오는 날 학교를 가려고 나서면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걸으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셨다. 미끄러져 넘어지게 되면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양손이 주머니 안에 있으면 그럴 수가 없어서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것.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으로 눈을 가리면 안 된다며 문 앞에서 시범을 보여 주셨다. 우산이 시야를 가리면 앞서 오는 사람과 부딪히거나 최악의 경우 차에 치일 수 있다는 것.


끈을 묶을 때면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여미되 다시 풀기 좋도록 가볍게 묶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묶기 편한 것만 생각하고 막 묶으면 급히 풀어야 할 때 곤란해진다는 것.


아무리 일이 급해도 화장실은 너무 참았다 가면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심지어 어쩔 수 없이 참았다 화장실을 가야 할 때 조심해야 할 것까지(?) 알려주셨다. (이제껏 어디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지금도 그 말씀이 맞는지 모른다.) 


주로 생존과 관련되었던 아빠의 말씀은 이후로도 잊히지 않고 그 상황이 닥칠 때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잠재의식 속 잠언처럼 떠올라 나를 지배한다. 끈을 묶는 일상적 행위 속에서도, 빙판이 된 길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시선의 저 끝에서도.


생애주기별 아빠표 잔소리


아빠의 애정 어린 잔소리 공세는 유년 시절이 끝이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 대학에 진학하고부터는 그 잔소리의 유형과 범위가 끝 모르게 확대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다니던 집 근처 내과의 약만 잘 듣던 내가 기숙사에서 감기로 혼자 앓고 있을 때 부모님은 병원에 사정을 말하고 약을 처방받아 내게 우편으로 보내주셨다. 거기엔 어김없이 아빠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가루약을 먹을 땐 사레들지 않도록 먼저 물을 조금 먹어라, 아빠다운 쪽지에 감기란 놈은 무서워 벌써 달아나고 있었다.


(아빠의 그 쪽지를 지갑에 보관하고 있었지만 소매치기의 손길에 지갑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아빠가 안 계신 딸도 아닌데 그 쪽지를 잃어버린 게 속상해 엉엉 울었었다.)


한창 인신매매 사건이 흉흉하게 돌 땐 전화를 걸으셔서 큰 승합차와는 절대 붙어서 가까이 걷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여학생이 문 가까이로 붙어 걸으면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 문을 확 열어 납치한다는 것이다. 들을 땐 코웃음을 쳤지만 그 일은 친한 선배 언니에게 실제로 일어났다. 아빠에겐 왠지 그 일을 말씀드릴 수 없었다.




취직 후 대전 친정에서 살면서 운전을 하게 되었을 땐 그 잔소리가 절정에 이르러 아침저녁으로 나를 굴렸다. 운전할 때 절대로 라디오를 듣지 말라고 하실 땐 나도 조금 반항을 했다. 아빠, 사람들 운전하면서 다 라디오 듣잖아요, 아빠야 음악을 안 들으시니까 라디오를 안 들으시는 거구요, 라는 말에도 아빠는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여기엔 사람들에 대한 예의범절도 다수 포함되었다. 사람들한테 폐 끼치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되는데, 특히  버스에서 무방비로 재채기를 해대는 사람들을 너무 싫어하던 아빠는 내게도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땐 반드시 자기 옷소매에 해야 한다고 하셨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님 이상의 위생 관념을 갖고 계셨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아빠의 잔소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 손자에게 가뿐히 안착했다. 아이를 재울 땐 배에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바지에 상의를 넣어서 입혀 재우라 신다. 그놈의 바람은 왜 강가랑 산 위에서나 불지 아이 배에 불어서 우리 아빠를 힘들게 하는 거냐며 엄마와 함께 웃기도 했다. 아이가 걸음마를 하고 어린이집에 다니게 될 땐 용변이 급할 때 벗기기 좋도록 바지는 반드시 고무밴드로 된 옷만 입히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고무줄은 절대 아이의 배를 조이지 않도록 항상 한 주먹을 넣어 체크하라고 하셨다. 이유식이 끝나고 유아식으로 넘어갈 무렵에는 포크는 사용하지 말아라(포크는 아이에게 무조건 위험하단다), 사과를 통째로 쥐어주지 말아라(애들이 앞니로 사과를 깨물어서 그냥 식도로 넘어가는 질식 사고가 너무 많단다), 김은 절대 맨입에 먹지 않도록 해라(김이 입천장에 붙으면 큰일이 난단다. 근데 무슨 큰일이 나는 거지?) 정말 끊임이 없었다. 급기야 엄마가 그럼 당신이 와서 애 봐요 하는 말씀으로 목청을 높이시면 그제야 말을 줄이셨다.


남들은 잘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들


과연 남들도 이런 말을 들으면서 컸을까? 때론 그게 정말 궁금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빙판을 걸을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때문에 차마 주머니에 손을 넣지 못할까?

운전하다 집중이 필요할 땐 라디오와 음악부터 끌까?

다시 내 아이에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지 말라는 소리를 대물림할까?


확실한 건, 남들은 가르쳐준 적이 없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 비 오는 날 우산 쓰기에 대해 배운 적은 있지만 아이 바지를 체크하는 데 주먹 하나 정도가 필요하다는 건은 누구도 얘기해 준 적이 없다.




이제 내 나이도 마흔이 넘어가고 아빠는 일흔의 중반을 넘기셨다. 주말에 뵙고 온 아빠는 은머리가 성성하셨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보육에서 교육으로 넘어오면서 아빠는 이제 더 이상 내게 할 수 있는 잔소리가 없어졌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뭘 아냐, 하시며 입맛을 다시는 아빠에게는 사랑의 공세들이 여전히 가슴속에서 일렁이고 있음, 나는 잘 알고 있다. 전화를 끊으실 때면 꼭 한두 마디씩 덧붙이는 안부와 당부가 돌고 돌아 결국 그 시절 그 사랑의 표현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
날 추워지는데 마당에서 낙엽 쓴다고
찬바람 맞지 마세요.
독감접종은 예약하셨죠?
저번에 사다 놓은 해열제
아직 안 떨어졌죠?


내 아들에게, 다시 아빠에게,

이제 잔소리는 내 담당이 되었다.


친정집 마당의 가을. 채반에서 말라가는 구절초와 함께 가을 햇살이 가득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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