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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숨 May 24. 2023

당신의 X가 선물을 보냈습니다

이유 없는 선물에 담긴 진심의 묵직함


카톡!



퇴근 후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몸을 데리고 의자 위에 툭 걸쳐진 담요처럼 누워있었다. 갑자기 알람 소리가 들린다. 전 직장 동료인 그녀에게서 온 연락이다. 진짜로? 갑자기?


내 생각이 나서, 새 직장에서는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연락을 했단다. ‘생각해 보니 너는 휴가를 다녀올 때마다 뭐든 챙겨줬는데 나는 준 게 없는 것 같아서, 날이 추워지니 선물도 보낼 겸 연락한다’라며 귀여운 고양이 발바닥 모양의 전기 손난로를 선물로 보내줬다.



핑크색 젤리가 프린팅 돼있어 집사인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손난로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의 연락과 선물에 벙찐 나는 받은 메시지를 몇 번이고 더 읽었다. 읽을수록 기분이 좋아져서이기도 했다. 전 직장에 있을 때 그녀와 사적으로는 많이 친해지지 못했는데, 이젠회사에 없는 나를 떠올려준 것 자체가 무척이나 고마웠으니까.




회사에서 우리는 거의 비슷한 업무를 했고 하나의 작은 유닛처럼 묶여 일했기에 나는 그녀의 업무 성향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집요하고 꼼꼼하며, 남들은 시큰둥해도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기 의견을 꿋꿋하게 피력하는 단단함도 지니고 있었다. 그동안 ‘나도 한 꼼꼼함 하지!’ 떵떵대며 살아왔는데 그녀를 본 뒤로는 그간의 내 꼼꼼함은 조금 둔탁한 ‘곰곰함’이라 해야 맞겠다 싶었다. 또, 내가 곤란한 상황에 있을 때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면 흔쾌히 응해주었고 같이 일할 때면 내가 놓치는 디테일을 잡아주었기에 참으로 든든한 동료였다.


업무적으로 배울 점이 많았고, 도움도 많이 받아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퇴사할 때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 전한 게 참 잘한 일이다 싶었다. 역시 마음은 기회가 있을 때 표현하는 게 좋고, 이왕이면 상대방도 느끼도록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할수록 좋구나. 오랜만의 연락이 어색해 망설이다 결국 표현을 포기하고 마는 나 같은 사람에겐 타이밍을 놓치면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잡는 게 더 어려우니까.




새로운 곳에서 잘 지내고 있냐는 그녀의 물음에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적응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재밌게 지내고 있다. 매일매일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너무 지쳐서 아무 말도 하기 싫고 누워만 있고 싶은 날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재밌다.


새로운 환경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부대끼고 때론 부딪히며 나와 상대의 모양을 더듬더듬 살펴가며 알아가는 게 재밌다. 서로의 다른 모양을 보며 ‘오, 그거 조금 멋진데?’ 하며 영감을 얻고 ‘내 것도 생각보다 멋진데?’ 라며 자존감을 올려보기도 하고. 함께 일 한다는 건 알게 모르게 각자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조각하는 경험이다. 그러니 지금의 내가 있는 데는 그동안 함께 해 온 동료들의 지분도 크지 않을까 생각하면 참 고맙다.


회사는 내게 제2의 학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던 어리숙한 사회초년생에게 세상의 냉혹함도 알려줬지만 조직에 어울릴 수 있는 사람으로 재사회화시켜 주며 지금도 계속 나에 대해 새로운 걸 배우게 해 주니 말이다. 때가 되면 학교를 졸업하듯 회사도 졸업하는 게 목표인데 언젠가 그날이 온다면 애정하는 동료들에게 또 고마움을 전해야겠다 다짐한다. 네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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