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904호실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하며 사사건건 참견하는 김영미(가명) 어르신은 우리 요양원에서 ‘까탈 대마왕’으로 불린다.
40Kg도 채 안 나가는 작고 바짝 마른 몸에, 항상 얼굴을 위아래로 조금씩 끄덕이며 떠는 그녀는 언제나 예의 바르고 교양 있는 말투를 써서 품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래선지 우리 요양보호사들에게 약간의 도움만 받아도 그녀는 ‘고마워요’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을 특유의 억양으로 한 글자마다 또렷하게 그리고 천천히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워낙 체중이 가벼워서 ‘종이 인형’이라는 별명도 있었지만, 904호실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녀는 알고 보면 섬세한 독재자였다. 뜬금없이 새벽에 일어나 같은 방을 쓰는 어르신의 이동 변기를 당신과 좀 더 멀어지도록 옮기기도 하고, 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으면 여지없이 닫았으며, 한여름에도 두꺼운 이불을 덮고 춥다며 창문을 열지 못하게 했다. 또 당신이 잠이 오면 다른 어르신이 보든 말든 무조건 TV와 불을 끄려 했다.
그리고 누구든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당신 물건을 철저히 챙기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보호자들이 사 오는 간식도 옷장에 꼭꼭 숨겨둔 채 혼자만 몰래 하나씩 꺼내 먹는 깍쟁이였다. 감춰둔 과일은 결국 썩어서 우리들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이웃 어르신과 나누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눈이 밝아서 늘 다른 어르신들의 옷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떼어주고 다니느라 바빴다. 걸을 때 워커를 이용하지 않으면 양팔을 휘두르며 매우 불안정하게 움직여야 하면서도 한 번 눈에 띈 머리카락을 놓치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 대단한 결벽증이라도 있었을 것 같은 그녀의 행동을 보면 위태로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동할 때는 늘 당신의 워커를 이용하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겁이 많은 그녀도 금방 그 말을 잊어버리고 화장실에 갈 때 허우적거리며 뒤뚱거리기 일쑤였다. 낙상이라도 할까 봐 우리가 놀라서
“어르신! 워커 가지고 가셔야죠, 워커!”
하고 부르면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뜨고 뒤를 돌아보곤 했다. 그럴 때는 순간 휘청하면서도 워낙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용케 버티면서 넘어지진 않았다.
“아이고, 아버지!”
이럴 때 그녀는 습관처럼 아버지를 찾았다.
그러고는 이내 쑥스러운 듯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나는 이럴 때 꼭 ‘아버지’ 소리가 나오더라고. 보통은 엄마를 찾는데 말이지. 나는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그런지 우리 아버지를 찾게 돼. 아버지랑만 오래 같이 살아서 그런가 봐. 남들 보기엔 이상할 거야 그렇지?”
라며 묻지도 않는 말을 반복했다. 남들이 당신을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볼까 봐 몹시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그렇지 요양원에서 생활하면서 여간해서 우리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 그녀지만 식사 시간만큼은 예외였다.
그녀의 체격이 왜소한 데는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입이 짧아서였다. 그녀는 늘 반찬 투정을 하며 밥을 제대로 먹지 않으려 했다. 편식이 아주 심해서 좋아하는 것만 일부 소량으로 먹었다. 연하 작용이 원활하지 않아서 죽을 먹어야 함에도 밥을 먹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막상 밥을 주면 씹기 힘들어서 잘 삼키지 못하면서도 단순히 먹기 싫어서 트집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요양원에서의 식사 시간은 거의 전쟁터나 다름없다. 일손이 모자랄 때는 요양보호사 한 명이 두세 분의 어르신을 모아놓고 차례대로 돌아가며 밥을 떠먹여야 할 때도 있다. 밥숟가락을 잘 받아먹는 어르신도 있지만, 씹는 속도가 느리거나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입 밖으로 줄줄 흘리는 어르신도 많다. (자원봉사자들이 막연히 요양원에 와서 어르신들 식사하는 것을 도울 때 막상 이런 장면을 보면 비위가 상한다며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도 요양보호사들은 되도록 어르신 별로 정량을 다 드리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그들에게 세 끼 식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가벼운 그녀에게 식사는 더욱 중요하다. 보통 관리팀에서 지원을 나오는 날이면 누구 한 사람이 바짝 그녀 곁에 붙어 앉아 식사 수발을 했다.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기도 하고, 원하는 반찬을 따로 구해주기도 하며, 짜증을 부리는 그녀가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을 수 있도록 독려했다. 때로는 약 때문에 밥을 먹어야 한다며 귀여운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는 반 이상 밥그릇을 비우는 적이 거의 없었다. 어떨 때는 바쁜 틈에 식판을 밀어놓고 얼른 당신의 방으로 도망을 가기까지 했다. 그러고는 누워서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댔다.
사실 그녀는 오래전에 쓸개를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는데 그런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주 배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먹기 싫을 때 주로 쓰는 수법이기 때문에 신뢰가 안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뭐 하나라도 더 먹이려는 요양보호사들과 안 먹으려는 그녀와의 숨바꼭질 같은 싸움은 지금도 날마다 되풀이된다. 밥을 적게 먹어도 아직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그녀의 기력이 떨어지는 게 보이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