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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말없이 말을 걸다

  


‘웨에에엑~ 꾸에에에에엑~~’

저녁 9시가 넘어 일체 소등한 조용한 거실에 울려 퍼지는 기이하고 섬뜩한 소리. 

오늘도 양기숙(가명) 어르신이 살려 달라고 외치는 단말마 같은 소리에 서둘러 901호실로 달려간다. 

연신 쿨럭이며 가슴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가래가 입안 가득 차오르는 것이 보이고, 숨이 넘어갈 듯 기침을 해대는 그녀는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마비된 사지를 비틀어 대고 있다. 날마다 하루에 몇 차례씩 반복되는 일상적인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늘 마음이 편치 않다.


그녀는 1등급 와상 환자다. 사지가 뻣뻣하게 굳어져 뜻대로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다. 콧줄을 꽂아 연명해 온 지 오래되었다는데, 신체 움직임이 없다 보니 무엇보다 배변이 원활하지 않다. 그래서 그녀 근처에 가면 늘 지린내가 진동한다. 기저귀를 제때 갈아도 양이 많아서 항상 침대 시트에 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기저귀를 교환할 때는 다른 어르신들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과 힘이 든다. 매번 옷을 갈아입히고 시트 일체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욕창이 생길 위험이 매우 높아서 2시간마다 체위 변경까지 해야 하므로 그녀에게 매달려 일을 하다 보면 한겨울에도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다.


그녀가 우리 요양원에 온 지 이제 3개월 남짓. 그녀는 밤낮으로 대여섯 차례 이상 석션을 받아야 하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점점 더 많이 차오르는 가래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그녀가 유일한 의사 표현 수단인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는 횟수도 나날이 늘어간다.

상처 입은 작은 새처럼 온몸을 웅크리고 있는 바짝 마른 몸, 언제나 주먹을 쥔 채로 경직되어 풀리지 않는 두 손, 찡그린 미간과 작은 얼굴에 새겨진 여리고 가느다란 눈썹, 석션받는 괴로움 때문에 눈물이 마를 날 없는 그녀의 속눈썹을 볼 때마다 ‘인간다운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천착하게 된다. 


늙고 병들어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 ‘인간답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과연 어떻게 늙고,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내 의지대로 끝까지 살 수 있을 것인가.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미지의 삶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은 그녀의 모습에 나를 대입해보는 상상조차 하기가 싫다. 


그녀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힘든 석션을 받고 나야 그나마 잠시라도 편한 잠을 잘 수 있는 그녀에게 ‘지금’, ‘이 순간’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날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기저귀를 갈다 보면 ‘여기가 아프다’, ‘이곳이 불편하다’라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간절한 눈빛을 읽는다. 시간마다 체위 변경을 하고, 기저귀를 갈고, 튜브에 영양식을 붓고, 간호사 부재 시에 대신 석션을 해주는 것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는 것을 아마도 그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밤을 무사히 넘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이따금 가슴을 토닥여 주면 그녀는 잠시나마 편한 눈빛으로 이렇게 대답해 주는 것 같다. 

‘나도 젊은 날 이런 삶을 생각한 적은 없어. 결코 내 뜻은 아니야.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는 거지. 늙고 병들었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사실은 별로 없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으니까. 하지만 알았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었을까.’라고.


밤 근무를 할 때마다 그녀의 방 앞에서 ‘오늘 밤은 별일 없이 넘어가야 할 텐데...’라고 늘 습관처럼 기원하게 된다. 특히 힘없이 잔뜩 웅크리고 잠든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통받지 않고 몇 시간만이라도 편히 꿈꾸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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