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요양원 8층 생활실에서 가장 젊은 최선녀(가명) 어르신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물론 이외에도 그녀는 적지 않은 질병에 시달린다. 평소에 말수가 거의 없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그녀는 남몰래 조용히 먹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숟가락질이 부자연스러워서 많이 흘리기는 하지만 식사할 때만큼은 정말 행복해한다.
평소에 요양보호사들을 귀찮게 하는 일이 거의 없는 그녀지만, 훤칠한 키와 당당한 체구로 침대를 꽉 채우고 있는 그녀의 기저귀 케어는 다른 어르신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그녀의 무거운 다리를 들거나 몸을 뒤집어야 하는 행동들을 혼자서 감당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물론 기저귀 케어는 2인 1조가 원칙이지만, 바쁜 일정들이 몰아칠 때 혼자서 나섰다가 나처럼 힘없는 애송이들은 포기하기가 일쑤다. 처음부터 자신이 없었던 나는 혼자서는 아예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바쁜 와중에 담당 요양보호사가 혼자서 그녀의 기저귀 케어를 하다가 허리 디스크가 파열되는 사고가 있었다. 단순히 운이 없었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노인이라도 그만큼 덩치 있는 어르신들의 케어가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고였다는 점에서 요양보호사들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사건이었다.
케어를 하는 사람도 케어를 받는 사람도 사고는 방심하는 한순간에 일어난다.
요양보호사들은 일정한 근육의 힘을 꾸준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써야 하기 때문에 잦은 부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들이 부상으로 병가를 내거나 퇴사하는 것은 비교적 흔한 일이다. 게다가 산재 적용을 받는 과정도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다.
이렇듯 그녀의 만만치 않은 무게 탓에 그녀의 방에서는 종종 해프닝이 벌어지곤 한다. 힘 있는 남자 직원이 귀한 곳이다 보니 목욕을 할 때도, 휠체어에 태울 때도 요양보호사들이 모두 달려들어 그녀를 옮기느라 애를 쓴다. 인지 능력이 남아 있는 그녀가 미안해하면서도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러면서도 수시로 이것저것 먹어대는 그녀를 보면 뜬금없이 울화가 치밀 때가 있다.
“아오, 우리는 나중에 요양원에 들어갈 때 살부터 빼고 갑시다. 뚱뚱하면 여러 가지로 요양보호사들한테 미움받을 거 아닙니까요?”
그녀에게 들리지 않게 우스갯소리를 해 대지만, 그저 의미 없는 농담만은 아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어르신을 들어 올려 휠체어에 태우거나 내려주는 일이 부담도 되거니와 언제든 다칠 가능성이 복병처럼 숨어 있는 탓이다.
염색을 해서 갑자기 젊어진 그녀를 보면 불현듯 ‘어르신’이 아니라 ‘언니’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녀는 노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평소에 어눌한 말투로 다소 더듬거리는 말만 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점잖은 교수님 같은 인상을 풍긴다. 하긴 요즘 나이 칠십이면 한참 정열적으로 활동할 때가 아니던가. 그런 그녀가 벌써 요양원에서 와상 환자로 있는 건 분명 어색하다. 그리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녀는 잘 운다. 거실에 나가고 싶은데 요양보호사들이 휠체어에 자주 안 태워준다고 울고, 지나가던 ‘폭군’ 강귀자(가명) 어르신에게 꼬집혀도 대항조차 못 해 억울해 울고, 드라마 보다가 애들 보고 싶다고 갑자기 울고, 먹고 싶은 두유를 마음대로 손에 잡을 수 없어서 운다. 안경 너머로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잘 울지만, 어깨를 토닥이며 달래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금세 해맑게 웃는다.
그녀는 우리들에게 고집 한 번 제대로 부리는 적이 없고, 마음 상하는 욕 한 번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착하다. 요양보호사들을 ‘언니’ 때로는 ‘아줌마’ 혹은 ‘선생님’으로 불러서 헛갈리게 하지만 원하는 것을 해 주면 항상 고맙다고 표현할 줄 안다.
그녀는 하루 한 번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 시간을 무척 좋아한다. 강사들의 얘기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만들기를 잘 못 해도 열심히 따라 하려고 애쓴다. 하루 종일 지루하게 누워서 생활해야 하는 그녀에게 그 시간만큼은 무엇보다 소중해 보인다.
그녀에게 가장 큰 적은 지루함이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무한한 지루함.
‘그것과의 싸움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가 아직은 젊은 그녀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