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젊음, 채소, 가을, 낭만, 향수, 사랑, 이별, 마중, 소나기, 고독, 침묵,
또 사랑,
찰나이지만, 물드는 것들,
버린 적 없이 기억되는 것들,
영원한 찰나일 것들,
11월이 좋다. 내가 태어난 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을과 겨울 사이 그 어스름한 공기가 하마터면 빠져 죽을 뻔했던 불행으로부터 나를 깨운다. 안온하게 주저앉은 이를 깨우는 것은 차디찬 이성이다. 심지어 뱀도 11월의 뱀이 위험하다 하지 않은가. 결핍과 겨울을 준비하는 자세가 나를 깨어있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행복이나 사랑과 같은 보석들이 11월을 비켜가는 것은 아니다. 추위에 얼어붙을 몸을 우린 서로를 부둥켜안고 버틴다. 그것은 완전히 얼어붙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더는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업실 창 밖으로 낙엽이 날린다. 내가 아팠던 만큼 가을에게 머물러주길 부탁했기 때문인지, 이제야 낙엽이 갈 길을 찾는다. 떨어지는 것이 잎뿐만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내가 나의 고통에만 잠겨있는 사이, 왜 살아야 하는지 또다시 망각한 사이, 사랑하는 이와 또 사랑했어야 하는 이를 잃었다. 시퍼렇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내가 없이는 세상이 없다지만, 나는 왜 또 알지 못하였는지. 병과 자살은 흔적을 선명하게 남기기 마련인데, 나는 왜 나의 손가락, 나의 발가락 따위의 아픔에만 집중했는지. 충분히 슬퍼할 용기조차 없으면서, 떨어져 버린 후에야 그 밝힘을, 그 생명을 나의 힘 삼으려 하는지.
11월을 넘기기 어려운 것은 사랑마저 죽어버렸기 때문인 걸까. 겨우 한 해를 살아내면서, 채 11을 넘기지 못한 걸까 하고 애꿎은 달력을 찢는다.
내가 사랑하는 가을은 거두는 계절일지 언정 열매맺는 계절이 아님이 확실하다. 선명했던 자국들이 흐려지고, 등이 굽을 때, 그렇게 마냥 휘어지고 싶을 때, 그 생각을 거둘 힘이 생긴다. 낙엽을 밟지 않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밟지 않을 것이다, 밟히지 않을 것이고.
겨울을 밝힐 것이다. 뒤로 걷는 걸음을 멈추고, 앞으로 걸을 것이다. 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면서, 아무도 보지 않는 떨어진 생명들이 아닌, 영원한 찰나였던 삶이었음을 기억하면서.
내가 나의 아이들과 얼마나 많은 11월을 함께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으나, 그저 떨어짐으로 기억되진 않을 것이다. 할 수 있을 때까지 걷고, 충분히 사랑했다 싶을 만큼 함께일 것이다. 찰나였던 영원의 삶들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