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인사예절
등산로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이 '수고하십니다' 한다. 처음엔 겸연쩍었는데 이제는 내가 먼저 하기도 한다. 붐비는 산행 구간보다는 적당히 한산한 산길에서 마주치는 동료 등산객들 사이의 안부 인사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관습은 아닌데 누군가 시작해서 퍼진 것 같다.
우리가 서양에 처음 갔을 때 경험하는 색다른 관습 중 하나가 모르는 사람과 나누는 가벼운 인사다. 요즘 우리 등산로 인사와 비슷하게, 붐비는 도시의 거리가 아닌 동네나 사무실 복도에서 눈인사 정도 하면서 스친다.
우리 사회가 서양 문화를 꽤 수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낯선 사람과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폐쇄적 정서가 존재한다.
수년간 국내 여행하면서 상대방이 내게 먼저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건넨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경상남도 어느 동네 어구에서 감을 따던 이가 안녕하세요 하길래 반가웠는데 알고 보니 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는 청년이었다. 엘리베이터같이 폐쇄된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과 마주치면 갑자기 스마트폰을 검색하거나 눈을 내리깔고 어색한 시선을 처리하기 바쁘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웃으면서 인사하면 나 말고 누가 또 있나 해서 뒤를 돌아본다. 아니면 교회 전도나 오피스텔 홍보 따위 목적으로 의심하고 흠칫한다.
인사 예절은 문화에 속하고 문화는 공동체가 오랜 시간 공유하며 전통과 관습에 의해 형성된 독특한 생활 방식이다. 문화에는 우열이 없고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일찍부터 전쟁과 교역이 활발했던 서양인은 외부인과의 교류에 개방적이다. 서양에서 낯선 사람과 주고받는 인사는 상대방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알리고 상대방으로부터 답인사를 받아 안전을 확인하는 사회적 기능에서 시작되었다. 악수도 서로 손에 무기가 없음을 확인하는 절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편 한국을 포함한 동양에서는 외부인에 폐쇄적인 집단주의가 발달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의 폐쇄성은 '남'을 밀어내는 배타보다는 익숙한 '우리들'에 대한 안도감에서 비롯된다. 한국인들이 온갖 연줄로 이어진 복수의 모임에 소속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옹기종기 모인 '우리들'끼리는 적극적으로 돕는 반면 내가 속한 집단이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남에게 말 붙이는 것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는 인사를 통해 타인과의 맥락에서 자기의 위치를 확인했다. 양측의 나이와 신분을 기준으로 위아래 위치가 결정되면 아랫사람이 주도하고 윗사람이 받아주는 상향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인 인사의 일순 一巡이 완성된다. 인사성이 밝다고 하면 윗사람에게 민첩하게 인사를 챙기는 사람이란 얘기다. 인사를 솔선할 '아랫사람'을 결정하기가 모호한 모르는 사람과의 인사가 조심스러운 이유다.
우리나라는 유럽 가치 중심의 근대화 과정에서 문화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했고 지금도 진행 중인데 여기에 인사 예절이 포함된다. 문화적으로 태생이 다른 동 서양의 예절이 뒤섞인 우리 사회에서 아직 인사조차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고 일부는 기형적으로 변형되고 있다.
악수를 하는 동시에 상호 위상의 차이를 계산해서 허리 숙이는 각도를 정밀 조절하는 동서양 짬뽕 예절은 낭비적이다.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동료의 식사 완료 여부를 확인한다든지, 번역 소설처럼 '좋은 아침'을 외치는 사무실 풍경은 수평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중립적인 인사 언어가 궁색함이다.
낯선 개인들이 인사를 통해서 새로운 연대를 구축하는 '접촉'의 새로운 언어가 이 시대에 절실하다.
흥미롭게도 우리 동네를 거닐 때 종종 마주치는 서양 사람들은 대개 고개를 숙이고 눈길을 피한다. 그들이 한국 문화에 지나치게 동화된 건지, 아니면 '귀찮음'이라는 동서양을 막론한 보편적 감정이 한국의 문화 토양에서 자유롭게 발휘되는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