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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Jul 19. 2024

아마존 닷컴에 'carrier' 를 쳤더니,

구토를 유발하는 어법


지방에 가면 '로컬푸드' 간판이 가끔 눈에 띈다. 농협에서 직영하는 점포 안에 별도 매대를 운영하든지 관광객 왕래가 잦은 지점에 매장을 설치해서 지역의 농산물을 판촉하고 있다. 로컬푸드는 자기가 사는 고장에서 생산한 먹거리를 소비하자는 운동이다.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의 이동 거리를 최대한 단축시켜 환경 부담을 덜고 아울러 식품의 신선도와 안전성도 확보하자는 취지다.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정작 명칭이 '로컬'이 아니다. '지역 농산물',  '지역 특산품' 등 딱 들어맞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어를 갖다 붙였다. 강원도 어느 매장은 안내판까지 영어 일색이다. 수입 명품 파는 백화점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지역 농산물 소비 운동( 로컬푸드)을 1990년 대 영국에서 시작했다고 해서 주제어를 굳이 영어로 표현해야 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로컬 '푸드'라고 해봐야 영어 원어민에겐 통하지 않는 발음이다.



스프링 시즌의 릴랙스한 위크엔드, 블루톤이 가미된 쉬크하고 큐트한 원피스는 로맨스를 꿈꾸는 당신의 머스트 해브


의상 업체가 조사와 동사 두어 개 빼고 몽땅 영어로 엮어놓은 선전 문구인데 어순語順은 우리말이다.  티본스테이크를 가위로 자르고 마늘을 올려 쌈에 싸 먹는 식이다. 서양풍은 뭐든지 고급지다는 천박한 믿음이 창작한 구토 유발 어법이다.


계절같이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보편적 표현은 각 언어마다 고유한 어휘가 발달했다. 그 사용 빈도가 높아 변화를 저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서 외래어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지구의 자전축 기울기와 태양의 각도에 의해 결정되는 계절은 지역마다 고유한 기후적 특성을 품고 있어서 외국어로 대체될 경우 원래 개념이 손상될 수 있다. 노르웨이의 'SOMMER'는 낮 시간이 기나길고 햇빛이 강한 반면, 한국의 '여름'은 덥고 습하며 장마철이 포함된다.


어떤 모양의 옷을 두르고 다니든 이 땅의 여름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은 '여름'이지 '서머'가 아니다. 그리고 '여름'을 영자로 정확하게 표기할 수 없듯이, 'SUMMER'의 발음은 '서머''써머''썸머'도 아니다.


영어로 범벅을 한 광고문이 장사치들의 얄팍한 상술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런 저속한 수법이 먹혀들어가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외국에서 기원한 개념을 도입하면서 우리말 번역 없이 원어를 그대로 옮겨 쓰더니(예: 타운홀 미팅), 이제는 아예 '노랑', '닭', '여름' 같은 토속 어휘까지 영어식으로 바꿔대고 있다.  


국내에서도 좋은 곳에 가면 외국에 온 것 같다고들 한다. 우리에게는 외국의 문물이 좀 더 세련되고 앞서간다는 문화 사대 의식이 깊이 뿌리 박혀있다.  


그러다 보니 발전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존 방식을 개선할 때 관련된 용어도 덩달아서 영어로 바꿔 써야 한다는 슬픈 강박이 생겼다. 일종의 '새 술은 새 부대에' 인식인가.  '수트', '마트', '미팅' 따위가 그렇다. 심지어는 '피티(발표)' 같은 정체불명의 약어까지 광범위하게 통한다.  우리말에 대한 자존감 저하와 문화적 동질성 상실로 이어질 수 있는 안타까운 현상이다.



새로 지은 사옥에 어디 촌스럽게 한글이냐는 발상일까?




아마존 닷컴


글로벌화가 진행됨에 따라 언어 사용의 다양성과 변화가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이해하자는 의견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이나 단어 사용은 '국제적인 이해와 소통'을 촉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해외여행의 양적 질적 수준이 올라가면서 노상 끌고 다니던 '여행 가방'이 싱거워졌나 보다. 뭔가 세련된 영어로 바꿔타야겠다는 허영심에서 누가 '캐리어 carrier' (방송에서?)라고 해 본 걸 이 사람 저 사람 따라  쓰기 시작했으리라.


아마존 인터넷 쇼핑에서 'carrier'라고 치면 반려견 운반, 아이 포대기 같은 게 뜨고, '캐리어'라고 쳐야만 여행가방이 나온다. '캐리어'는 한국어로 귀화한 영어가 되었다. 귀화하는 과정에서 본질이 바뀌었다. '국제적인 오해와 불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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