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팝과 KCSI
K- 드라마, K-뷰티... K-는 글로벌 시대에 두각을 나타내는 대한민국의 문화를 쉽게 식별하고 기억하는 기호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우리 대중가요와 춤의 한 갈래를 영미권에서 K 팝으로 부르기 시작한 게 K 접두사의 원조가 아닌가 추측한다. 이보다 오래된 K 리그 축구도 있고, 찾아보니 KPGA (한국프로골프협회)는 설립연도가 1968 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만 K 리그와 KPGA에서 K는 K 팝처럼 한류의 세계적 인지도를 상징하는 브랜드와는 결이 다른, 국제기구의 한국판을 표시하는 기능에 국한한다고 볼 수 있다.
한류는 한국 연예 분야를 선두로 시작하여 글로벌 시대에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홍보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해외 시장에서 한국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으며 한국의 존재감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억압받아온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은 끊임없이 외래문화를 모방하며 만성적인 문화 사대에 빠져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오늘날 독창적인 한류(K-Wave)의 성공에 한국인조차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고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 무대를 누빌 수 있게 되었다.
이제 K- 현상은 단순히 한국 문화를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가 세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K-접두사 남용이 지나친 국수주의적 자만심 (=국뽕)으로 흐를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있지만 아직 이르다. 'K 국뽕'이 우리 한국인에게 뿌리 깊이 각인된 열등의식을 중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다 패망한 나치 독일과 우리 민족은 근본적으로 기질이 다르다. 한국인은 자기들끼리 싸우는 데는 이골이 났어도, 남의 나라 하고는 잘 안 ( 또는 못 ) 싸운다.
K- 의 남용보다는 K- 관용官用이 거슬린다.
범죄 현장에서 과학 수사대 요원들이 KCSI 로고가 선명한 모자를 쓰고 감식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 TV 시리즈 CSI 장면에 나오는 모자의 그것과 한 끗 차이다.
KFDA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 KNIH 국립 보건 연구원 따위도 미국의 유사 기관명 앞에 K 를 붙였다.
한국 공공기관이 외국 기관의 로고나 명칭을 차용(=패러디)해 가면서 그 부속 조직을 자처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유가 궁금하다.
임무가 비슷한 기관의 명칭을 영어로 옮기다 보니 우연히?
공무원들에게 미국 정부와 연결된 기관에서 일하는 듯한 우쭐함을 주기 위해서? (대기업의 하청업체 직원이 느끼는 자부심 같은 그런 거?)
'글로벌' 시대에 국제 유사 기관 간의 연대를 위해서?
국민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 차원에서?
아니면 그냥 겉멋?
'K- 정부기관'은 K-팝이나 K-드라마가 애써 창달하고 있는 한국인의 독창성과 자주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