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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재고 觀我齋稿'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영석趙榮祏 (1686, 숙종 12~1761, 영조 37 )의 시詩·서序·기記·제발題跋 등을 수록한 시문집입니다. 책에는 18세기 한국의 시·서·화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저자 조영석은 물론 정선·이병연 등에 관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1984년에 필사본 2 책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영인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원문 이미지를 제공했습니다.
번역 습작입니다.
새벽 베개 (曉枕 효침)
하녀는 새벽밥을 지어놓고 솥을 씻는데,
병든 나는 잠에서 깨어 비로소 기운이 맑아진다.
컴컴해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방안에,
희붐한 새벽빛이 문 틈으로 스며든다.
따뜻한 이불속 아이는 코를 골고,
아침부터 이웃집 방아 소리가 소란하다.
시종에게 다시 날씨를 물으니,
오늘이 오산烏山에서 형[1]을 보내는 날이구나.
[1] 작자 조영석의 형 조영복이 선산으로 유배 가는 길 추측. 조영복은 1721년 신임사화 때 소론에 배척당하여 파직되고 선산에 유배되었다가 뒤에 영춘永春으로 이배 되었다.
국옹菊翁[1]이 송경휘宋景徽[2] 집에서 우암(송시열) 선생의 초상에 우러러 절하며 감회에 젖어 한 수의 시를 지었고, 그 율시를 탄옹灘翁 [3]과 나에게 보내어 화답시를 짓게 하였다.
이는 흔한 시 짓기가 아님에, 유학의 가르침을 되새길수록 기둥이 무너지는 아픔이 더욱 깊어졌다.
어찌 감히 시가 서툴다고 사양하겠는가. 이에 시 세 수를 지어 답하노라.
[1] 미상 인물. 국옹 최흥벽 : (l739~1812)으로 추정
[2] 경휘 : 송시열 증손인 송무원婺源의 호
[3] 미상인물
[4] 송시열은 조선 중기 서인(西人)의 정신적 지주로, 그의 죽음은 유학계의 중심 기둥 붕괴를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