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21-22 페이지
'관아재고 觀我齋稿'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영석趙榮祏 (1686, 숙종 12~1761, 영조 37 )의 시詩·서序·기記·제발題跋 등을 수록한 시문집입니다. 책에는 18세기 한국의 시·서·화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저자 조영석은 물론 정선·이병연 등에 관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1984년에 필사본 2 책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영인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원문 이미지를 제공했습니다.
번역 습작입니다.
단호한 언변으로 논리를 옹호하고 반박하며 성인의 자취를 이었건만 [1],
사악한 무리가 삼공(三笻 [2]) 을 어지럽히네
도리(斯文)는 시련을 받고 몸은 마침내 곤궁에 빠졌으나,
동해의 나라에는 바르지 않은 길이 용납되지 않도다 [3]
만력萬暦 [4]의 세상에도 오랑캐 풍속(左袵: 오랑캐 옷차림)[5] 여전하고,
영릉[6]의 서리에도 [7] 높은 소나무 [8] 서 있네.
죽천竹泉 [9]의 붓 힘이 진실된 모습 [10] 전하니
유업을 물려받아 나약함을 일으켜 세우리라.
(원문 중 주석)
삼공 三笻 표현은 다른 자료에서 인용(出張) 된 것이며, 魏公에 관련된 고사임. 사본은 송시열의 제자 김진규가 필사한 것이다. [11]
其二
동남으로 유배 다닌 자취 몇 곳인가,
험로를 밟아도 마음은 철석같은 죽장(鐡心笻)[12]
무릉 계곡(武溪)의 도도한 물줄기는 [13] 학문의 근원을 전하고,
태산泰嶽의 우뚝한 바위는 [14] 엄숙한 기상을 드러낸다.
의문을 가르는 천년의 채옹蔡邕 [15], 백 길 높은 소나무처럼 나라의 대들보를 떠받쳤네.
용과 기린은 이미 떠나가고 여우들만 다투니 [16], 세상의 도는 가라앉아 나태함에 빠졌도다.
(원문 중 주석) 황산곡黃山谷 [17]이 죽장에 적기를, ' 부 옹涪翁 [18]이 낮잠 자니 푸른 용이 벽에 걸렸고, 부 옹이 험로를 밟아도 마음은 철석같다'[19] 하였다."
[1] 공자나 주자와 같은 성현의 학문적 전통 계승.
[2] 청렴함·강직함·도학적 3대 정신을 상징함으로 추정
[3] 조선 사회가 유학적 정통(正道)을 수호하기 위해 이단異端을 배척했음을 강조
[4] 명나라
[5] 문화적 타락을 비유
[6] 효종의 능
[7] 효종의 죽음과 북벌 좌절의 아픔을 은유
[8] 효종과 송시열의 굳건함 은유
[9] 송시열의 초상을 그린 김진규의 호. 김진규金鎭圭는 송시열의 제자.
[10] 송시열의 초상화, 우암년보尤庵年譜에 따르면, 송시열의 생시生時 초상화는 원래 한시각(韓時覺)·김진규(金鎭圭)·김창업(金昌業) 이 각각 그렸다는 3점이 있었다 /위키백과
[11] 魏公에 관련된 고사 추정, 출전 미 상 : 魏公之像,非徒形似也,而道德之傳也 : 위공의 초상은 단지 생김새를 그린 것이 아니라, 도덕의 계승이다.
[12] 철심鐵心 은 송시열의 불굴의 절개를 상징. 죽장(笻) 은 대나무 지팡이로, 유학자의 청렴함과 지조를 은유, 송나라 시인 황산곡의 시를 인용
[13] 무계武溪는 송시열의 학문적 계보(율곡 이이의 기호학파)를 은유하면서 학문의 근원이 널리 전파됨을 강조
[14] 송시열의 학문적 권위와 위엄을 비유
[15] 후한의 학자
[16] 기린麒麟: 전설 속의 동물. 용과 기린은 송시열 같은 위대한 인물, 여우는 소인배를 지칭. 그의 사후 조정의 혼란을 비판
[17] 송나라 시인인 황정견黃庭堅의 호
[18] 황산곡의 자
[19] 시 본문 履危惟有鐡心笻의 원전을 언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