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이 인스타그램에 나팔꽃을 올렸다. 나팔꽃은 맨드라미, 채송화 등과 함께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친근한 꽃이다. 이른 아침 활짝 피어나 반겨주는 상큼한 보랏빛 꽃잎... 영어 이름도 ' Morning Glory' 다.
기상나팔처럼 아침마다 우렁차게 새로운 희망을 전해주는 도시의 나팔꽃이 농촌에서는 겉모습은 그대로지만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농부들에게 나팔꽃은 그야말로 '진상' 잡초 중의 하나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무시무시한 덩굴성 특징이다. 빠르게 뻗어 나가는 덩굴들이 주변 작물을 타고 올라가 햇빛을 가리고 생육을 방해한다. 더욱이 한 줄기가 아니라 여러 줄기가 서로 얽혀 자라기 때문에 제거하기가 어렵다.
고구마 밭에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엉켜있는 나팔꽃 덩굴을 고구마 줄기를 다치지 않고 정리하는데 애먹었다. 하지만 씨앗도 많고 발아율도 높아서 매년 같은 밭에 계속 퍼져나간다고 한다. '진상' 소리 들을 만하다.
나팔꽃이 옥수수 등의 줄기를 감고 올라가서 햇빛을 차단하거나 쓰러뜨릴 뿐 아니라 땅속에서도 수분과 양분을 놓고 경쟁하는 통에 고구마, 콩 같은 농작물이 종종 피해자가 된다.
능소화도 비슷한 경우다. 화려한 꽃을 자랑하는 능소화는 옛날 양반집 마당에서나 볼 수 있어 '양반 꽃'이라 불릴 만큼 고급스럽다. 하지만 이 튼튼하고 빠르게 자라는 덩굴식물은 성장하면서 무거워져 다른 작물을 압도하고 건물 벽에 붙어 10 미터까지 자라 통제하기 어려운 골칫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나팔꽃이 언제 어디에 피느냐에 따라 축복이 되기도, 재앙이 되기도 하듯 세상 만물의 가치는 맥락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갑작스러운 비는 가뭄에 시달리던 농부에게는 선물이지만, 고추를 널어 말리던 다른 농부에게는 불청객이다. 스마트폰은 소통의 도구인 동시에 개인을 화면 속에 고립시키는 벽이 될 수 있다.
우리 각자도, 우리 주변의 모든 존재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환경에서는 방해가 되거나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솔직한 성격이 때로는 신뢰를 주지만 어느 순간엔 상처를 주고, 조용한 사람이 안정감을 주지만 어떤 다른 자리에서는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다.
절대적인 선악이나 성패를 섣불리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관점을 겸허하게 살펴보고 인정하는 여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