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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rey Sep 25. 2022

영화관이 이랬었지 (1)

코비드 전후의 영화관 경험에 관한 러브레터

2022년 여름에 작성하기 시작한 글입니다.


 

1.

나는 영화관을 무척 좋아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영화관에 드나들고 싶어요. 철마다 다른 장르의 영화 포스터가 극장에 걸린 모습이나 상영관에 사람들이 그득그득 들어찬 풍경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합니다. 전염병과 세상의 다른 여러 변화들로 인해 극장 풍경이 썩 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시간과 금전의 여유가 되면 극장에 갑니다. 영화관 가기는 언제까지나 내가 세상에 가장 편안하게 섞여 드는 방법일 거예요.


이번 여름에는 자주 극장에 갔습니다. 집에서 고요하게 음미하거나 친구들과 도란도란 대화하며 보는 영화도 재미있지만 나는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것이 영화에 대한 진지한 경의 표시 같고, 가장 온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이와 관련해 오늘은 영화관 경험에 대해 길게 쓰고자 합니다.


그저 내 생각이지만 사람이 어떤 영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영화 자체가 미치는 비중은 많아 봐야 6할쯤 될 것 같아요. 나머지 4할은 영화관 경험이고요. 이때 영화관 경험은 크게 관람 환경과 구성원과의 분위기 두 종류로 나뉩니다. 나열하자면 스크린의 크기와 밝기와 사운드, 좌석의 위치, 그날 상영관의 관객의 숫자와 연령대, 관객의 성향과 발화 시의 눈에 띄는 특징, 동행이 있다면 동행과의 관계, 기분 상태 정도가 영향을 미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영화를 예매했을 때는 그날의 영화관 경험이 가능한 베스트이기를 바라는 관성이 있습니다. 자연히 관객 A인 나는 쉬이 다른 관객 B, C, D, E, F…를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나에게 영화에 집착하기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의식적 강박에 가깝습니다. 검표 줄에 서서 같은 관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부터 떠올라요.


이 영화를 얼마나 좋아해 줄까? 혼자 오신 관객도 좀 있네. 상영 전인데 되게 집중하신다... 모범적인(?) 관객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은데..!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어르신이 오셨네! 이따 화면 밝기를 최대로 하고 전화를 받을 수도 있겠다. 광고 보면서 감독 얘기를 크게 하는 분도 계시군! 저분은 이따 영화를 볼 적에 적절한 범위 내에서 감정 표시를 할까? 별로 웃기지 않은 장면에서 하! 하고 너무 크게 웃거나 여자 친구에게 스피드웨건을 할까? 영화가 끝나자마자 비웃기를 좋아하는, 아---재미없네! 별로네! 하고 으스대는 사람만 아니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한때 검표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줄이 몰려 있던 풍경을 떠올립니다. 사람들은 팝콘과 음료를 야무지게 입에 넣으며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법을 잘 알았어요. 이제 검표 요원은 크게 줄어들거나 반쯤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쓱 눈치를 보고 알아서 자기 관을 찾아서 들어갑니다.


그러고 보니 원래는 티켓박스에도 매니저와 매표원이 있었는데 말이죠. 지금은 팝콘부스에 스텝들이 모여 있을 뿐입니다. 고등학생 때 성인영화를 보겠다고 검표 요원을 속이려고 애쓰던 시절이 있었는데. 굳건히 2인 1조로 상영관 앞을 지키던 검표 요원을 통과하려고 노력하던 것도 벌써 거의 10년 전 일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평소 가장 선호하는 자리인 D-E열 중앙에 앉아 괴상한 광고를 보고 있습니다.

내가 ‘쏟아지는 시야각’이라고 이름 붙인 이 자리는 고개를 약간 올려 시야에 꽉 차는 화면을 경험할 수 있는

위치예요. 그 쏟아지는 시야각 앞으로 여러 사람의 엉덩이가 클로즈업되어 지나갑니다. 허리에 붙은 지방을 골반 옆으로 보내준다고 주장하는 미용 시술을 홍보하는 영상이거든요. 청바지를 입은 모델의 뒤태에 신나는 음악을 흘려놓을 때쯤 나는 멍청해진 기분이 들어 인중이 절로 길어집니다. 가끔 나처럼 그 광고에 질색하는 마음을 유난스레 겉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나 슬쩍 살펴보지만, 아직까진 발견하지 못했어요. 우리끼리 얘기지만 그 광고 참 괴상하지 않았나요?


그러고는 나는 관이 좀 더 채워지기를 기다립니다. 여전히 내가 앉은 줄이 비어 있으면 옆자리에 어떤 일행이 올지 조금 신경 쓰지요. 뒷줄로 들어가는 일행을 보면 조금 긴장합니다. 특히 다인조가 무서워요. 그들은 평소보다 더 사교적인 톤이 되어 극장을 방문하기에 요란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내 뒤통수에 선명하게 꽂히는 사운드를 흘리고, 가끔씩 내 좌석에 거친 발차기로 4D 맛보기를 가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은은한 긴장감을 부여하죠. 그들은 같이 움직이기에 코로나 이후로는 드물게 등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극장 전성시대에는 그런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죠.



 당시 영화관 경험은 피크 시간대에 오면 으레 저점에서 시작하기 십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영화관에 많이 모였거든요. 달리 말하면 돈이 되는 곳이었다는 뜻이에요. 화장실 문짝마다 다이어트  광고가 붙고, 상영 20 전부터 요란한 광고가 도배되고, 어떤 관객들은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극장에 왔으므로 영화에 관심이 없다는 표시를 온몸으로 하기도 했어요. 영화관 경험에  영향을 끼치는 행동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죠. 나는 그런 징조를 상영 전에 읽어내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눈알을 굴리곤 했어요.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런 것들에 집착합니다. 상영관 안에서 그 경험이 관통하는 순간을 계속 의식하게 돼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기대하기를 멈추지 못하고 말이에요. 마치 첫인상이 형성되는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난 어떤 영화를 만났을 때 영화관에서의 체험이 앞으로 내 삶에 있어 그 영화의 평가에 무척 많이 개입한다고 믿거든요.


이상적인 관객들로 완성된 영화관 경험에서만 얻어갈 수 있는 충만함은 몹시 귀하고 행복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중독자처럼 계속 영화관에 가요. 우리가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강력한 감정은 군집과 일치를 이룰 때 더욱 힘이 세지고, 이 경험은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과 유대감과 동질감마저 느끼게 하는 무척 강렬한 감각입니다.

  

<반지의 제왕> 같은 장대한 판타지 영화를 보았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그 넓은 극장에 당신 혼자였다면 결코 같은 체험이 아니었을 겁니다. <라라 랜드>를 보았을 적에 느꼈던 가짜 향수와 애수는 마지막 엔딩 씬에 당신이 seb’s의 관객 중 한 명으로 자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고요.


그래서 영화 체험의 결이나 관람 분위기가 영화와 어울릴 때는 정말 행복합니다. 예컨대 주목받는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볼 때면 청소년과 중장년층이 한 관에 모인 모습이 나를 조금 기쁘게 합니다. 이런 영화라면 극장 내 가족적인 풍경도 싫지 않고 지극히 한국적인 분위기를 이룬 채 달뜬 분위기조차 썩 어울리잖아요. 또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를 보러 갔을 때는 비웃지 않고 진지하게 영화의 규칙을 눈감아줄 수 있는 협조적이고 놀이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많기를 바라고요.


이런 식으로 간혹 생기는 좋은 경험들이 영화관에 얽힌 기분 좋은 추억이 되고,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서 <내가 극장을 좋아하는 이유> 란을 한 줄씩 차지하게 됩니다.


영화관 경험을 하면서 우리는 같이 놀라고, 감동하고, 심지어 함께 울기도 합니다. 낯선 사람들이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잠시나마 하나가 됩니다. 영화관에서 만나는 타인은 이런 식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기에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고, 또 중요합니다.


위에 길게 나열한 대로, 나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영화관에 대한 은밀한 기쁨을 품고 꾸준히 극장에 다녔어요. 앞으로도 만 원짜리 티켓을 사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멋대로 짐작하고, 은근히 기뻐하며 계속하던 대로 영화를 보고 싶었지요. 하지만 2019년 겨울, 코비드가 찾아왔고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바꿔버린 그 전염병은 당연히 영화관 경험도 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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