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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제 Oct 12. 2020

파제 아카이브 인터뷰 - Clemente Min 편

Dear. Amigo

정통2 正統   

바른 계통 


nuevo   

새로운, 신…


@ 네이버 국어사전


Clemente Min(이하 끌레멘떼)을 만난 건 2016년쯤이었다.

스페인 현지에서 정통 플라멩코를 수학하여 현재는 스페인은 물론 한국과 동남아시아를 다니며 정통 플라멩코를 연주하는 기타리스트이다.

또한 Maestro로써 후학을 기르는데도 열중인 그를 보면 참 많은 것이 귀감이 된다.

끌레멘떼 민, 그를 만나보았다.



준성 -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매년 이맘때가 스페인에 가 계시는 시즌이잖아요. 물론 동남아도 자주 다니시고요.

코로나로 길이 막혀 곤란하실 것 같아 걱정이 되네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끌레멘떼 민 -

그쵸. 매년 두, 세 달 정도 스페인에 가죠.

플라멩코 무용하는 클래스에 가서 아꼼빠냐멘또 수업을 들어가서 반주로 돈을 벌고 했는데 그게 막힌 거죠.

태국엔 따블라오 형식은 아니지만 펍 방식으로 된 플라멩코 공연을 하는 곳이 많아서 공연하러, 대만에는 플라멩코 아티스트가 좀 있어서 워크샵을 하러 자주 갔지요.


코로나로 올해부턴 어렵다 보니 지금은 국내에 더 집중을 하고 있어요.

현재 부산과 군산, 정읍에서 레슨도 하고 있어요. 서울에서도 더 늘었구요.



준성 -

조금 전에 따블라오를 이야기하셨는데, 스페인 말고 따블라오 같은 문화가 있는 나라가 좀 있나요?


끌레멘떼 민 -

많죠. 생각보다 많아요.

따블라오라는 게 플라멩코 전용 극장이잖아요. 무용수가 바닥을 칠 수 있게 잘 되어있고.

2009년 정도에 잠실에도 있었어요. 제가 창립멤버로 있었어요. 대기업 자본도 들어가서 잘 만들었지만 시기상조였고 없어졌어요. 이후에 일본의 자본이 들어오면서 스페인 음식으로 홍보가 많이 되었죠.



준성 -

일본이요?


끌레멘떼 민 -

일본은 플라멩코가 엄청 활성화되어있거든요. 따블라오도 많고 거리마다 스페인 음식점도 아주 많아요.



준성 -

유럽이나 미국 쪽은 어떤가요?


끌레멘떼 민 -

네덜란드 쪽도 엄청 많아요. 너무 사랑해요. 미국도 내륙에는 없지만 플로리다, LA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역사 이래에 뮤지션도 많고 공연도 굉장히 많이 해요.

안토니오 레이도 자주 가죠. 물론 플라멩코 페스티벌도 정말 많아요.

International guitar salon도 거기에 있고, 기타 연주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요.

마이애미나 플로리다도 스페인 사람이 많아서 옛날부터 플라멩코를 많이 했었죠.

그리고 뉴욕도 많은 뮤지션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플라멩코로 유명하고 실제로 플라멩코 역사에서도 뉴욕은 중요한 장소중 하나예요.



준성 -

전에 역사에 대해 강의하실 때 1920~1930년대에 플라멩코가 많은 핍박을 받고 다른 나라로 갔다 했잖아요.

그 시점에 플라멩코의 수출이 된 거라 볼 수 있을까요?


끌레멘떼 민 -

수출이라기 보단 도피죠ㅎㅎ



준성 -

그러게요, 수출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도피 었겠네요.

흔히들 스페니쉬 기타라고 하는 게 사실은 플라멩코스럽다기 보단 라틴스럽다고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었거든요. 근데 왜 스페니쉬라는 명칭을 쓰게 되는 건지 궁금했어요.


하지만 방금 이야기 한 뮤지션들의 도피 과정에서 생겨난 계보 같은 걸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끌레멘떼 민 -

그거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라틴, 플라멩코, 클래식을 분리하지 않는 게 좋아요.

스페니쉬 기타가 Guitarra española인데,
원류는 신대륙을 발견하면서부터에요. 스페인, 특히 안달루시아 사람들이 아프리카 노예를 데리고 가면서 그들의 음악과도 섞였고 그러다 토착민들의 음악까지 섞이면서 변형이 된거구요.


스페니쉬 기타 안에는 클래식, 플라멩코, 라틴기타가 들어가 있는 거예요. 분석하려 하지 마시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좋아요. 라틴도 스페니쉬 기타고 플라멩코도, 클래식 기타의 일정 부분은 스페니쉬 기타예요.

물론 바흐를 연주한다고 스페니쉬라고 할 수 없지만 판당고나 말라게냐 등, 스페인의 민속음악들, 스페인 무곡들은 공유가 되잖아요.



준성 -

하긴, 초기 클래식 기타 앨범을 보면 플라멩코 곡도 많죠.


끌레멘떼 민 -

클래식 기타도 처음부터 바흐를 쳤던 건 아니죠.

클래식 기타가 스페인의 민속 악기다 보니 그들의 곡을 연주했을 테고 민속 음악이 플라멩코다 보니 당연히 플라멩코가 연주가 되었구요. 클래식 기타를 처음 배울 때도 대부분의 곡들이 스페인 곡이에요.

그 곡들이 스페인의 민속 음악이고 민속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가 플라멩코 기타죠.

사실은 클래식 기타의 역사는 길지 않거든요. 마찬가지로 플라멩코 기타도 길지는 않죠.

민속 악기로 연주를 했었죠. 정확히는 Guitarra española죠.

세고비아의 옛 미국 공연의 포스터를 보면 스페니쉬 기타 마스터라고 홍보를 해요.  Guitarra Classica라는 표현은 처음엔 쓰지 않았어요.


이건 의견이 분분한 내용인데, 당시 클래식 기타리스트 분들이 플라멩코로부터 먼저 멀어지려고 했다고 해요.

그 시초가 안드레스 세고비아였고요, '우리는 플라멩코 기타리스트와는 달라' 라면서 먼저 구분을 지었고 그 구분을 지금의 우리는 가지고 있는 거죠.


세고비아는 스페인의 음악에서 클래시컬, 플라멩코 등의 여러 음악이 스페니쉬 기타의 범주 안에 있었는데 이 안에서 클래시컬 기타라는 범주를 끄집어낸 장본인이에요. 클래시컬 기타의 정통성을 만든 본인인 거죠.

이전에는 구분이 없다 보니 세고비아의 스승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고, 세고비아가 사용한 기타도 플라멩코 기타예요. 사실 그때는 플라멩코 기타라는 구분이 없었지만 플라멩코에 더 가까운 음악을 했었던 거죠 처음엔.

그래서 마드리드로 올라가고 연주자로서 위치가 올라갔을 땐, 본인이 원하는 기타리스트로서 품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겠죠. 그래서 분리하는 작업을 걸친 거고요. 몇십 년 동안.


실제로 플라멩코 음악가들도 대학을 많이 나왔어요. 거리의 음악가라고 하지만 그건 미국이나 영국에서 시와 소설 혹은 연극, 오페라 등에 '플라멩코는 거리의 집시들의 음악이고 애처롭고 슬픈 음악'이라고 등장을 하면서 이미지 메이킹이 돼버렸죠. 그래서 플라멩코가 거리의 음악이라고 알려졌지만 전혀 아니에요.

이런 부분이 오도된 거죠. 근데 당시 스페인이 그런 부분을 잡을 여력이 없었던 게 내전과 2차 대전에서 패전국이 되다 보니 자기 나라 문화를 알리는 것 자체를 하지 못했죠. 당시 플라멩코 관련 자료들은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훨씬 더 많이 쓰였어요. 스페인에는 자료가 거의 없는 이유가 그들은 당시 그런 걸 돌볼 시간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이제야 본인들의 대중문화예술 역사의 공부를 새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어요.



준성 -

제가 다양한 악기를 다루고 있잖아요. 이게 민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생각해요.

다양한 악기에 대한 욕심은 오래전부터 많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거든요.

근데 형이랑 스페인에 다녀오면서 악기 여행이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배웠던 것 같아요.

파제의 전통악기 드림을 이뤄줄 수 있던 게 다 선생님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끌레멘떼 민 -

각 악기의 의미와 역할을 이해를 하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어 카눈은 아랍음악 오케스트라에서 음정의 기준이 돼요. 

각 악기와 음악에 대해 공부를 하고 접근을 한다면 더 멋진 음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준성 -

20대 초에 파코 데 루씨아의 리오 안초를 처음 들었는데,

너무 황홀했던 기억이 나네요.

나중에 그게 플라멩코라는 장르라는 걸 알게 되었죠.

민선생님은 플라멩코에 빠지게 된 곡이 있나요?


끌레멘떼 민 -

저도 빠코 데 루시아죠. 왜냐하면 우리가 로컬 한 음악가를 알 수가 없잖아요.

우리도 시타르를 떠올리면 라비샹카 말고는 떠올리는 인물이 거의 없잖아요?

항상 월드뮤직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런 Virtuoso가 있어요. 탱고에는 피아졸라가 있죠.

그처럼 파코 데 루씨아가 가지는 의미가 커요. 플라멩코 음악을 세계적인 영역으로 가지고 나갔으니깐요.


저는 오래전에 재즈를 공부하러 독일에 갔었는데 그때 칙 코리아 밴드로 연주한 씨리압을 처음 들었어요.

당시에 말도 안 되는 전개에 이게 뭘까 생각을 많이 하던 중 원곡이 파코 데 루씨아라는 걸 알게 되었고 정통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때부터 하나씩 파고 들어가게 되었어요.


준성 -

예전에 메탈도 하지 않으셨나요?

재즈도 하시구요.


끌레멘떼 민 -

제가 처음 앨범 낸 건 락밴드였어요. 다른 예명도 있었죠. 그때부터 하드락부터 블랙메탈까지 했었죠.

20대 초반부터 활동을 하고 기타를 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해왔죠. 당시 음악 하는 분들의 삶이 쉽지 않았고 그걸 어렸을 때부터 많이 봐왔어요. 너무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고 또 직접 하며 음악을 업으로 하는 게 쉽지 않았죠. 그래서 제가 플라멩코를 시작했을 때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활동 방향성에 많은 고민을 하였죠. 그렇기에 해외 활동을 많이 했죠. 


물론 저도 2012년에 한국 들어왔을 때 앨범부터 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정말 중요하다 생각한 건, 힘들게 앨범을 내는 것보다는 플라멩코 문화에 본인의 시간과 돈을 투자할 사람이 늘어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플라멩코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배우는 사람도 있어야 하구요. 또한 플라멩코로 돈을 버는 사람이 생겨야 지속 가능성이 있어요. 


이건 연주와는 다른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왜냐하면 월드뮤직은 동료가 없거나 혹은 음악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만큼 힘 빠지는 일이 없거든요. 재즈나 락과는 다른 이야기겠죠, 한국 시장에서 음악이 쉽지 않다만 그래도 주류니까요.

그래서 2012년부터 플라멩코 음악을 직접 하고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해왔던 거예요.



준성 -

이건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하는 말인데요,

우리 주변엔 뮤지션들이 많잖아요,

근데 저는 정말 좋은 기타리스트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무조건 선생님 이야기를 해요.
그의 연주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철학을 배워야 한다고.

그리고 이미 뛰어난 기타리스트인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볼 때마다 실력이 늘어있어요.

본인의 연주에 대해 객관화가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기에 그게 가능한 거겠죠.


국카스텐의 하현우씨, 혹은 박효신, 김범수 등의 기라성 같은 뮤지션을 볼 때도

저들은 이미 대가인데 또 그새 늘었구나, 그리고 더 늘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성장하시는 모습이 플라멩코를 수학하는 후배로써 참 멋있고 제가 스승을 잘 뒀다 생각해요.

이렇게 하기 위한 원동력 혹은 음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있으신가요?


끌레멘떼 민 -

정말 고마운 이야기네요.

사실 이건 너무 방대한 질문이라 플라멩코에 한정지어서 이야기할게요.


플라멩코의 경우엔 아직 같이 할 뮤지션이 거의 없어요. 물론 락 음악도 신중현 선생님이 처음 가져왔을 때 호불호가 굉장했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플라멩코라는 장르도 장, 단이 굉장하잖아요. 연주도 너무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고.

기타 전공을 하신 분이더라도 플라멩코 연주가 힘들고, 생각만큼 안되고, 앞길이 넓지 않다는 점에 힘들어하셔요. 하지만 가요는 힘들어도 하는 만큼 인정을 받잖아요. 플라멩코는 그게 아니니 당연 힘들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플라멩코를 하는 이유는, 계속해서 성장하기 때문이에요.

내가 죽을 때까지 올라갈 산이 있고 올라갈수록 밑에서 보이지 않은 여러 풍경이 보여요.

저도 연주 자니깐 제 부족한 부분을 왜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속적인 노력이 나를 채워주고 또한 스페인 가서 연주자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을 보면서 배우고 채우죠. 그러면서 성장 해나 가요.

물론 잘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아요. 하지만 저도 노력하는 만큼 성장해가며 자존감도 실력도 올라가요.


제가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로 이거예요.

재능이 있는 사람은 만 명에 한 명 있고 걸출한 뮤지션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거든요.

근데 명인 반열에 오른 분들은 정말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성장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고요.

더 이상 성장할 곳이 없고 바라볼 산이 없다면 얼마나 힘들어요. 오를 정점이 없는데.

그렇기에 음악을 하려면 음악이 재미있어야 하고 Short term과 Long term의 본인의 목표를 끊임없이 만들어야 해요.

그래야 평생 음악을 할 수 있어요. 계속 안 보이는 정점을 만들어놓고 꾸준히 하는 거죠.

그 목표가 테크닉이던, 혹은 돈이 될 수도 있겠죠. 그것이 뭐가 되었던 목표를 설정하고 성장을 하는 것이 음악을 재미있게 하는 요소예요.


그게 제가 바라보는 음악의 관점이에요.



준성 -

주변에 많은 뮤지션들이 다들 느끼고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내가 음악을 왜 하고 있나 하는 생각들.

그렇기에 형의 이 답변은 굉장히 중요하고 소중한 답이네요.


끌레멘떼 민 -

많은 유학을 다녀오시는 분들도 느끼는 지점이에요.

명문에서 유학을 하였더라도 한국에서 돈을 벌거나 하게 되는 건 한정적이죠.

생각의 전환도 조금은 필요할 것 같아요. 내가 돈을 버는 수단은 따로 있지만 나의 음악은 내 안에 있고 그걸 꾸준히 하면 되는 거예요.


저도 플라멩코를 하며 돈으로 힘들어도 보았고 길을 잃고 1년간 공백을 가졌던 시기도 있어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제가 성장한다는 매력이 너무 큰 거예요.



준성 -

이런 이야기 할 때마다 정말 많이 배웁니다.


앨범 관련 인터뷰인데 이제야 앨범 이야기를 하네요.

원래는 한국에서 플라멩코는 '무'의 세계였는데 그렇기에 형의 정통을 걸으면서 보이는 외로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이 곡에서 느껴지는 외로움도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작곡한 거예요.


끌레멘떼 민 -

근데 저는 사실 외롭지 않아요~. 아직까지 너무 재미있고 배울게 너무 많아요. 할게 너무 많으니깐 정말 바빠요(웃음)



준성 -

저도 주변에서 저에게 '너무 많이 하고 바쁘다' 라는데 '나의 플라멩코 싸부를 이야기하면 비할 수도 없다, 그분은 정말 열심히 하기에 나는 명함도 못 내민다', 라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정말 즐겁게 다양한 음악을 하고 있구나 싶은ㅎㅎ


끌레멘떼 민 -

음악은 평생 배워도 배울게 많고 또 평생 배운다는 게 재미있잖아요. 또한 그게 우리의 음악에 영향을 끼치잖아요. 너무 재미있고 그 현상들이 너무 멋있지 않나요?

이런저런 실험이 너무 재미있어요. 우리가 만드는 데이터들이 우리 인생에 도움도 되고. 데이터베이스가 쌓아지죠. 그렇게 만든 데이터들이 결국 하나로 모여요. 그러다 다시 또 벌어졌다가 다시 또 모이고. 

이런 것들이 너무 재미있고 연주에서도 느껴지고요. 이 즐거움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즐겁고 재미있어요.



준성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올해 나올 앨범과 형의 곡 기대해주셔요!




인터뷰를 정리하며 몇 번이나 울컥하였다.

좋은 음악가가 곁에 있다는 점은 정말 든든한 일이다.


그는 나의 생각만큼 외롭지 않았고 또한 희망차게 음악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플라멩코에 관심을 가지길 희망하고 또한 끌레멘떼 민이 걷는 길을 응원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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