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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eneinnain Nov 23. 2020

모래 사나이를 읽고 나서

Die Zweiheit을 찾아서


어린 시절 파란 괴물 푸르 둥개라는 동화를 테이프로 접하고 나서 침대 밑에 혹시나 숨어있을 수도 있는 푸르 둥개라는 동물이 무서워 뜬 눈으로 잠이 들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림으로 된 책을 직접적으로 읽고 나니, 나의 상상력이 제한되기 시작했고 내 눈 안에 그 괴물을 확인하고 나서부터 자극적 공포는 사라졌다. 또한 이런 푸르 둥개 괴물에 대한 트라우마는 어린 시절 아버지 품에 안겨서 엘리베이터 거울에 머리를 박았던 기억과 이것저것 겹쳐서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을 보면 분명 부정적 혹은 공포스러운 기억인 것임에 확신한다. 이 작은 나의 트라우마와 모래 사나이를 비교하기 시작했을 때 나타나엘이 느꼈던 코펠리우스에 대한 공포를 가늠할 수 있었다. 코펠리우스가 올라오는 계단에서의 발걸음 소리 혹은 그가 지니고 있던 형체를 표현하는 색채나 단어들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감은 이 작품 안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다른 모든 사상이나 문화 따위의 것들에 집중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트라우마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트라우마라는 것이 한 개인의 삶에 전반적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보다 객관적으로 모래 사나이에 숨겨진 여러 요소들을 해석하면서 읽기 전에는, 이러한 트라우마를 갖고 자신의 일생 동안 고생 아닌 고생을 하는 나타나엘로부터 연민과 동정을 느낄 수 있었다.



방향을 잃지 않고 잘 따라간 것은,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 상(이미지)이었다. 작품 속에 많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과 장소를 심어놓았는데 이를 찾는 것은 초반에 경이롭다가도 후반에는 짜인 프레임을 내가 파악하거나 발견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은 섬뜩함이 들 정도로 경이로웠다. 흔히 눈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데 작품에서 주목하는 눈의 역할은 이성적 분별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타나엘에게 일어나는 모든 착각과 착시는 점점 그가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나타나엘에게 모래 사나이는 유모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로 인해 악몽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풍부해지는 상상력이나 이러한 상상력을 자극시킨다는 점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이중성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시각을 강화시키는 망원경 그리고 눈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중단시키는 모래 사나이 이 두 가지의 요소가 대립되는 것을 큰 틀로 보자면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 나타나엘도 포함하여 모두가 다 이중성 (die Zweiheit)를 갖는다.


화자는 독자로 하여금 환상의 공간에 들어오게 하고 나서 이야기를 전달한다. 때문에 전지적 작가 시점도 아닌, 주인공 시점도 아닌 부분적으로 개입하고 편지를 나열하는 특이한 서사구조는 처음에 잘 적응이 안 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거대한 형태의 서사구조를 위해 노력했음을 알았을 때 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치밀하게 계산된 단어와 색채 그리고 인물들의 이중성을 통해서 작품이 순수한 문학작품이 아닌 어떠한 과학자의 실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러한 실험을 답안지 없이 시험을 보는, 답을 맞혀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또한 그의 의도를 지금의 우리가 카메라 옵스큐라와 같은 형태로 분석한 것인지, 호프만이 이를 의도하고 작품을 썼는지도 궁금하다.


결국에는 호프만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이루라고 하는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올림피아를 통해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직면하게 되는 나타나엘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스 일화가 떠올랐다. 올림피아, 즉 망원경을 통해 바라본 올림피아는 결국 나타나엘에게 나르시스의 연못과 같은 존재라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나타나엘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매체였던 올림피아의 파괴로 나타나엘의 내면세계는 무너져 내리고 만다. 이러한 자신의 감정에 치우친 생각만을 하다 결국 파국에 이르는 나타나엘의 죽음에서 느껴지는 많은 것들을 통해서 다시 한번 호프만이 독자에게 감정적인 사고와 이성적 사고를 갈등하고 고민하는 경험을 통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음을 유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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