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기댈 것 없다.
잘 풀리지 않는 과제를 이리저리 고민하고 다른 방법들을 떠올려 보는 것처럼,
잘 써지지 않는 글에 필요한 것은 어떤 대단한 변화나 액션이 아니다.
어떤 특별한 방법이나 이벤트 없이는 나아가기 힘들다고,
또는 몸을 억지로 비틀어 조금 나아가더도 결국엔 완결 짓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고착화시키고,
서랍을 굳게 걸어 잠글 뿐이다.
필요한 것은,
애초에 글이라는 것이 이 정도의 고통 없이 써지지 않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첫 번째,
언제라도 다가올 정적과 멈춤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그다음이다.
글의 시작과 끝도 모두 우리의 마음에 달렸다.
타협하고 싶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직 여유가 있을 때, 우리는 얼마든 멈추거나 결정을 유보할 수 있다.
그러나 끝낼 수 없는 글은 없다.
수정되지 못하는 글도 없다.
수많은 '최최최종' 버전들을 거치며 얻은 깨달은 것은 완성된 보고서란 없다는 것이다.
완성된 글이란 것은 없다.
그저 결론이 지어진 하나의 버전이 있을 뿐이다.
언제든 수정될 수 있고, 수정 가능한 하나의 버전에 대한 의견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서랍 속에 멈춰있는 수많은 완성되지 않은 글들에 대한 작가로서의 미온적 입장은 수정되어야 할지 모른다. 이를 통해 ‘발행’과 ‘폐기‘ 그 사이 애매한 경계선에서 이도저도 아닌 운명으로 방치되고 있는 글들을 향한 시선이 달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멋지게 시작했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러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어떤 글들에 대하여,
운명 같은 결말을 찾지 못해 멈춰버린 미완의 작품으로 처박아 두기보다는,
어설프게나마 서랍 밖 빛을 보는 편이 더 나을 수 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완과 불완이 가지는 그 자체로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이상은 현실을 움직이지만,
또한 멈추게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