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사는데 필요한 웬만한 글들은 이미 쓰였다.
내가 썼든 다른 누군가가 썼든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식 교육이든 미디어든 혹은 집단에 내재된 문화의 영향이든,
우리 주변에는 적당한 글과 적당한 아이디어, 적당한 개념과 규칙들이 산재해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미 그것들을 읽고 어느 수준 이상의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다.
이 영역은 우리가 서로에게서 공통점을 찾고 확인하고 안주하도록 기능한다.
일반적으로 공교육과 대중문화가 지향하고 결국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지점들이다.
반면, 이 영역을 벗어난 영역은
개인과 개인을 구별하는 특성, 개성을 만드는 지점들이다.
이는 우리가 서로에게 차이를 느끼게 만들고 때로는 긴장하게 만들지만,
개별 개체만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지점이다.
예술과 개인 각자의 시간, 고민의 감각들이 만들어내는 영역이다.
전자의 목표가 중간값을 끌어올리는 데에 있다면,
후자는 이 분포도의 분산값을 크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삶에서 이 둘은 뒤엉킨다.
평균값과 공동체의 규칙을 습득하는 과정에 전자가 활약하고,
각자의 매력과 색깔을 입히는 데에 후자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후자는 점점 힘을 잃어간다.
철이든 우리는 자연의 이치라는 거대한 힘에 굴복이라도 하듯
개체의 개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집단적 공통점으로 수렴되는 양상으로 DNA가 진화되었다.
그 덕에 자꾸만 예술과 각자의 시간, 서정적 고민과 감성들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이미 확보한 기득권과 같은 감각들이 우리를 보수적으로 만든다.
일상을 사는데 필요한 글들은 충분히 많은 까닭에
새로운 이야기를 쓰지 않는 태도가 몸에 밴다
무향의 관성은 생각보다 짙어서
조그만 냄새에도 경계 반응을 보인다.
좋은 향기를 가진
참신한 글들이 잘 쓰이지 않는 까닭이다.
때로는 지루하리만큼 소소하거나 잔잔하고
때로는 강한 향신료처럼 인상적이다.
부담스럽다
잔향에 이르기 전
창문이 닫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