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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Nov 07. 2023

직업의 귀천


직업의 귀천    


나는, 면 소재지에 있는 중학교 다녔다. 동창생은 100명쯤 됐다. 친구들의 부모님은 대개 농사를 지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서 통하는 게 많았다. 20대 초반에는 친구의 읍내 자취방에 모여 살았다. 군대 갈 준비를 하거나, 막 제대해서 일자리를 찾던 중이었다. 열 명쯤은 됐던 것 같다. 좁은 방에서, 술도 마시고, 고스톱도 쳤다. 모은 돈으로는 짜장면이나 커피를 시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걱정 없이 살던 시절이었다. 젊음의 즐거움은 영원히 누릴 수 없었다. 2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우리는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는 아쉬움을 달래려고 계 모임을 만들었다. 열다섯 명이 시작했는데, 지금은 열세 명이 남았다. 정기 모임은 명절에 시골에서 한다. 작년 설부터는 집사람도 같이 보기로 했다. 나는 조금 늦게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이미 친구들은 몇 잔씩은 마신 것 같았다. 군인인 철수가 나를 반갑게 맞았다. 나랑 외모와 성격이 닮아서 가장 잘 어울렸다. 50살 가까이 됐지만 군인보다는 웨이터가 더 잘 어울린다. 말투나 행동도 그렇다.

     

철수는 간호사인 아내를 두고 혼자 나왔다. 피곤해서 쉰다고 했다. 철수는 내 비밀을 많이 안다. 물론 나도 그렇다. 철수가 집사람을 데리고 나왔으면 덜 불안했을 것 같다. 철수는 술을 마시더니 말이 많아졌다. 다행히 몇 차례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흥이 올랐는지 중학교 성적 이야기를 꺼냈다. 결론은 내가 자기보다 공부를 못했다는 거였다. 철수의 말에 기분이 상하거나 불쾌하진 않았다. 등수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밝히자면 나는 80등, 철수는 75등쯤 했던 것 같다.

     

철수의 말을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오래 사귀어서 그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철수는 내가 공무원이 되고, 사무관으로 승진했을 때 가장 기뻐해 준 친구다. 그의 농담도 내가 잘 풀려서 좋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을 거라 여겼다. 지금도 가끔 안부 전화를 하면 꼭 '황 사무관'이라고 부른다. 명절이면 잊지 않고 면세 맥주 한 상자를 챙겨 준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영수네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 부부와 철수가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수는 내게 기분 나쁘게 듣지 마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정읍에 사는 친한 형이 ㅂ해양경찰서에 근무한다고 했다. 영수는 자기 친구도 00경찰에서 근무한다며 아는지 물었다고 했다. 그는 사내 웹 전화번호부를 검색해서 내 이름을 찾아냈다. 그는 내가 근무하는 부서가 00경찰청 중에서도 힘이 없는 '00'라고 말했다고 한다. 듣고 있는데,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했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순간 할 말이 떠오르지도 않았고, 대꾸를 해도 우스웠을 것 같다.    

 

그냥 같은 직원이라고 하면 되지, 굳이 그렇게 했을까? 경찰직이 다수인 우리 직장에서, 소수인 일반직은 이런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청장과 지방 관서의 지휘관도 모두 경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은 그들이 못지않게 중요하고 의미 있다. 어쩌면 그는 나보다 계급이 낮아서 자존심이 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말 한마디는 그의 인격을 낮추는 꼴이 됐다. 나중에 그를 직장에서 만난다면, 동네 형님보다는 인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먼저 인식할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 친구들은 모두 대부분 다른 일을 한다. 공무원, 군인, 농부, 회사원으로 근무하거나, 사업이나 식당을 운영한다. 다들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의 직업을 존중한다. 그래야 자신도 대접받는다는 걸 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직업의 높낮이를 나누려면 자신이 남의 직업을 평가할 만한 깜냥을 갖췄는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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