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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Jun 09. 2024

친절해야 하는 이유

<50살이 되기 전에 한 50가지 일>

이름도 모를 남에게 친절을 베풀 기회는 하루에 몇 번이나 찾아올까? 나에게는 잘해야 한두 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인기척이 나면 문 열림 단추를 누르고 있거나, 무거운 짐을 나눠 들어주는 사소한 것들이.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해밀턴 박사는 친절하게 행동하면 그걸 주고, 받은 사람은 물론이고 목격한 자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고 했다. 또한 심혈 관계에서 활성 산소와 염증 수치를 낮춰서 심장병 발병 확률을 줄일 뿐만 아니라, 인체의 노화를 늦추기도 한단다. 이쯤 되면 친절은 마음을 가꾸는 데 필요한 비타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작년에 보름 일정으로 캐나다에 다녀왔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쾌적한 도시뿐만 아니라 사람들 몸에  듯한 친절도 인상 깊었다. 그들은 아침 운동하다 마주치 "헬로(hello, 안녕)"하며 먼저 인사했다. 운전자들은 사람이 도로를 건널 기미를 보이면 차를 멈춰 세웠다. 그러고 다 지나갈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당연히 사람이 우선이라지만, 낯설었다. 내겐,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광경이기 때문이다. 나는 운전자의 눈을 바라보며 손인사했다. 그러면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들에게는 일상일지도 모르지만, 타국에서 온 내게는 따뜻한 배려와 친절로 느껴졌다.


그 이후로 내 운전 습관은 많이 바뀌었다. 될 수 있으면, 상대방에게 양보하려고 한다. 신호 없는 횡단보도에서 건너려는 사람이 보이면 일단 멈춘다. 그들도 아직은 익숙지 않은 듯 잠시 멈칫거리도 한다. 그러면 손짓으로 지나가라는 신호를 준다.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여학생은 민망할 정도로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한다. 나이 든 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길을 건너던 중년 아주머니는, 고맙다는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단지 1분쯤을 할애했을 뿐인데, 나는 완벽한 이타적인 인간이 된다. 친절은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에게 더 큰 기쁨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도로에서는 차량뿐만 아니라 친절과 불친절도 교차한다. 앞에 가는 하얀색 렌터카가 계속 신경 쓰였다. 젊은 남자는 꽤 굵직한 금팔찌를 차고 있었다. 창밖으로 내민 손에는 담배가 끼어 있었다. 그는 한 모금 빨고 나면, 왼팔을 창에 대고 재를 털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눈은 그의 손가락을 주목했다. 한참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신호 대기 중인데, 한 남자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내기하자고 했다. 하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버리지 않는 다를 고르는 거는 무모한 도박이었다. 그는 예상과 달리 그냥 창을 올렸다. 우리는 "우와! 저런 사람도 있구나"라며, 감탄했다. 그 감정이 식기도 전, 차는 20m쯤 나아가더니, 창을 다시 내렸다. 그는 종이컵을 통째로 창밖에 던졌다. 거기에는 그가 모아 둔 꽁초와 양심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최근에는 자동차 블랙박스를 많이 달면서 남들 다 알게 쓰레기를 버리는 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청년은 신고하려면 해 보라는 듯 과감하고 박력 있게 꽁초를 도로로 튕겼다. 그에게 당장 필요한 건 관심이었다. 객기를 부르는 병에는 금융치료(돈으로 감정이나 마음을 치료한다는 뜻의 신조어)도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도 친절을 베풀기로 했다. 내 아까운 시간까지 허비해 가면서 말이다.


차를 산 지 3년 만에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불법 투기를 신고하는 앱을 깔고 회원 가입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화질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아내는 확실히 보인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오지랖 부리지 마라고 했을 아내도, 그런 사람은 과태료를 내야 정신 차린다고 했다.


며칠 후 시청에서 전화가 왔다. 직원은 영상이 너무 흐리다며, 혹시 원본을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것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사실 신고하면서도 여러 번 망설였다. 나중에는 안 돼도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올렸다. 아쉬운 건 내가 아니다. 그는 5만 원을 내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할 기회를 놓쳤다. 시간 문제지 언젠가는 그의 주머니에서 나갈 돈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시간이 흘러서 더 큰 손해를 볼지도 모를 일이다. 더 슬픈 건 어른이 되지 못하고, 성인에서 노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에게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는 의미인 '어른'이라는 호칭을 쓰는 건 단어의 남용이다.


차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남에게 불편을 끼치는 대표적인 불친절한 행동이다. 차량 충돌, 화재와 같은 2차 사고도 일으킬 수 있다. 다른 운전자 불쾌하게  하 것은 물론 환경에도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담배꽁초는 셀룰로우스 아세테이라는 플라스틱 필터로 만들어지는데, 쉽게 분해되지 않아 해양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유발한다. 남들 안 보이는 데나, 줍기 어려운 데 버리면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래서 올 때 잡아야 한다. 어른이 되려면 마음도 가꾸어야 한다. 우리가 친절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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