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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Jul 19. 2024

클래식을 볼 때는 숨바꼭질을 하자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술래가 목소리 높여 부른다. 우리는 우거진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긴다. 술래가 다가오면 나뭇잎이 흔들리지는 않을까 숨까지 참는다. 기침이라도 나오면 낭패다. 술래가 "나 이제 그만할래" 해도 다른 친구가 나올 때까지 움직이면 안 된다. 함정일 수도 있으니까. 이제 졌다는 걸 의미하는 "못 찾겠다, 꾀꼬리"가 울리면, 의기양양하게 나타나면 된다. 클래식 공연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존재를 남에게 드러내면 안 된다. 숨바꼭질 놀이처럼.


클래식 공연은 아는 만큼 들리고, 들리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재밌다. 클래식은 가요나 팝송과는 달리 가사가 없다. 음률로 이야기를 전한다. 귀로 듣는 것뿐 아니라 가슴으로도 느껴야 한다. 곡을 만든 배경과 의미를 알면, 더 깊 공감할 수 있다. 공연장이라면 지휘자와 연주자의 섬세한 손짓까지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들과 하나가 되면, 감동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클래식 전문가나 애호가는 아니다. 커피 마시거나, 책 읽을 때,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많은 걸 가끔 듣는 수준이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 오래전에 클래식 공연을 봤다. 그때도 같은 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였다.


공연 시간은 일곱 시 30분다. 공연장까지는 차로 5분 거리다. 일곱 시가 가까워지자, 조바심이 났다. 학교 다닐 때 공부는 못했어도 지각은 안 했다. 사회생활하면서도 시간 약속만큼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어려서부터 그게 예의라고 배웠다. 아내는 옷에 어울리는 귀걸이와 목걸이를 고르고, 옷매무새와 머리까지 세심하게 가다듬었다. 좀 서두르자고 하자,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재촉하지 말라 눈을 흘겼다. 결론은 아내가 옳았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공연 시작 20분 전이었다.


공연장 앞은 표를 받으려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뒤섞여 어수선했다.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살짝 들떠 보이기도 했다. 내가 사는 곳은 소도시여서 이런 공연을 접하기 힘들다. 예매를 서둘러서 연주자의 얼굴까지 잘 보이는 데로 자리를 잡았다. 아내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표를 받으면서 챙긴 공연 책자 살폈다. 출연자 소개와 연주곡 해설이 실렸다. 무대 뒤에서 관악기와 현악기 소리가 불규칙하게 퍼졌다. 연주자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빈자리는 조금씩 채워졌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도 여럿 보였다. 우리 앞자리에는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 둘, 그 옆에는 아이 학교의 교감 선생님 부부가 앉았다. 아이 엄마와 인사 나누는 걸 보니, 그들이 만난 건 우연인 듯했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둘이 볼 수 있겠어?"라고 물었다. 안경을 쓰고, 머리를 딴 아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어딘가에 있을 자리로 떠났다. 나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애들의 어른 시절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이와 손을 잡고 공연을 봤던 그날의 추억이 흐릿해지는 사이, 아이들은 훌쩍 커 버렸다. 다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연을 볼 기회가 오기는 할까!       


공연 시간이 됐지만, 몇몇 사람은 표와 의자 번호를 번갈아 보며 자리를 찾고 있었다. 서둘러야 할 때는 좋은 자리를 예매할 때뿐만이 아닌데 말이다. 공연장이 어수선해서인지, 원래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10분이 지나서야 교향악단이 무대를 채웠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면서 조명이 꺼지고, 조용해졌다. 지휘자는 지휘봉을 힘차게 휘저었다. 드디어, 연주가 시작됐다.


첫 번째 곡은, 베르디가 1855년 작곡한 '시칠리아섬의 저녁 기도'다. 섬의 아름다운 풍경과 종교적 분위기를 잘 표현한 곡이다. 연주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가 울었다. 오래 들리지는 않았다. 부모가 자리를 피한 듯했다. 마른기침 소리도 여러 군데서 간헐적으로 들렸다. 공연장의 공기가 탁하기는 했다. 공연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됐지만, 참을 만했다. 연주가 워낙 좋아서다. 지휘에 따라 현악기 연주자들이 힘 있고 일사불란하게 악기를 켜는 게 인상적이었다. 곡 설명을 읽어 가며 무대를 바라봤다. 흘러나오는 음에 베르디는 어떤 의미를 담았을지도 머릿속으로 그렸다. 오랜만에 클래식에 집중하며 사색했다.  


두 번째 곡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마장조'였다. 여러 악장으로 구성된 관현악곡이다. 초청 연주자인 오보이스트, 클라리네티스트, 바수니스트, 호르니스티와 협주했다. 관악기 고유의 소리를 집중해서 들었다. 잠시 연주를 쉴 때 짓는 표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책자에는 악장마다 특징이 실려 있었다. 중학교 때 배운 게 떠올랐다. 악장이 끝날 때는 박수를 보내면 안 된다는 거였다. 1악장이 끝날 무렵, 손뼉을 칠 것만 같았다. 음악이 절정에 이르렀다, 끝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뒤쪽에서 서너 명이 박수를 보냈다. 내가 친 것도 아닌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휘자는 박수를 멈추라는 손짓을 줬다. 이럴 때 어울리는 속담이 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애매하면, 기다리면 된다. 박수는 지휘자가 돌아서 인사할 때 보내도 전혀 늦지 않다. 악장 사이의 정적은 연주자가 다음 악장을 연주하려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중요한 순간이어서, 관객은 그들의 감정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2악장 연주를 진행될 무렵, 젊은 연인이 자리를 찾아 고개를 숙이고 관객들 사이로 움직였다. 그들의 자리는 공연이 가장 잘 보이는 서너 번째 줄의 중앙이었다. 대개 클래식이나, 뮤지컬 공연이 시작되면, 관중의 입장은 제한된다. 쉬는 시간이나, 곡이 끝날 때 들어올 수 있다. 공연 도중에 들어올 수 있는 용기가 대단했다. 그것도 관객들이 다 보이는 앞자리인데 말이다.  


두 번째 곡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20분 주어졌다. 앞자리 아이들에게 아이의 엄마는 공연이 재밌는지 물었다. 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한 시간 가까이 흐트러짐 없이 꽤 집중해서 듣긴 했다. 2부 공연이 시작됐다. 지휘자는 공연이 재미있는지 물었다. 관객들은 큰소리로 호응했다. 그러면서 이번 정말 연습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는 세 번째 곡인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 '영웅'을 소개했다. 이 곡은 나폴레옹에 찬사를 보내려고 '보나파르트(보나파르트 나폴레옹)'라고 곡명을 붙였으나, 스스로 황제에 오른 나폴레옹에 실망하여 그 이름을 지우고 '영웅 교향곡'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60대로 보이는 중년 남자는 스마트폰을 꺼내 찰칵 소리까지 내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아마 그는 지휘자가 설명하고 있어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휘자의 해설도 엄연한 공연의 일부다. 나는 지휘자의 말만 집중해서 듣고 싶었다. 4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의 연주 시간은 40분이 넘었다. 아이들은 2악장이 끝날 무렵부터 몸을 비비 꼬며, 잡담을 했다. 견디는 데 한계가 온 듯했다. 한 아이는 학교에서 만든 균형 잠자리를 가방에서 꺼내 옆 친구에게 자랑하며 손가락 끝에 놓았다, 머리카락에 두었다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는 잠자리가 날고 있었다. 혹시나 우리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우리를 아이의 부모라고 착각하지는 않을지 신경도 쓰였다. 교감 선생님 사모님은 남편의 옆구리를 찔렀다. 남편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모님은 아이를 툭 치며 힘이 잔뜩 들어간 손가락 하나를 입에 가져다 댔다. 아이들의 행동은 잠시 주춤했지만, 잠자리는 아이 손에서 계속 날고 있었다. 나는 공연에 집중하는 대신 아이 부모에게 해 줄 말을 떠올렸다. '아이가 공연을 보느라 힘들어했어요.', '아이가 아직 공연을 보기에는 벅찬가 봐요.' 결국 입밖에 꺼내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클래식 공연을 듣는 것보다, 공연 매너를 배우는 게 우선이 아닐까 싶었다. 3악장이 끝날 무렵에는 가장 앞줄에 앉은 남자아이가 스마트폰을 꺼내 게임을 했다. 엄마가 보면 말리겠지 했지만, 보고도 그냥 두었다. 그 엄마의 얼굴을 보고 나니,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싶었다. 모두 어른들의 헛된 욕심 때문이지. 아이들에게 지적 허영심만 가르치는 것은 아닐까. 나머지 시간은 그냥 즐기자고 마음먹으니 클래식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온전히 집중할 수는 없었다.


'관크'라는 신조어가 있다. 관객 크리티컬(critical)의 약자로 다른 사람의 공연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나 사람을 뜻한다. 30명이 넘는 교향악단은 공연을 선 보이려 여러 달 연습했고, 혼신의 힘을 다해 두 시간 넘게 공연했다. 그들의 가장 큰 바람은 관객이 자신의 공연을 보고, 클래식의 재미를 느끼고 감동을 받는 것일 것이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은 공연이 끝나고 힘찬 박수로 그들의 공연에 찬사를 보냈다. 클래식 공연이 성공하려면 연주자의 실력뿐만 아니라 관객의 매너가 중요하다. 많은 관객은 그들의 공연만 집중해서 듣고, 보고, 느끼려고 한다. 그들이 열심히 연주하는 동안, 내가 공연장에 있다는 걸 남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게 관객의 의무다. 클래식 공연을 볼 때도 숨바꼭질을 하자.



공연 에필로그(숨바꼭질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조언)

1. 아기가 안고 공연장에 온 부모님: 아기는 클래식을 싫어해요.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랍니다.

2. 마른기침을 하신 분: 물을 마시거나 사탕을 빨면 기침을 줄일 수 있답니다.

3. 악장 연주 중에 박수를 치신 분: 잘 모르면 기다렸다가 같이 치면 돼요. 그래야 창피하지 않아요.

4. 공연 중에 들어와 자리를 찾으신 분: 공연 10분 전에는 자리에 앉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늦었다면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쉬는 시간에 들어오는 게 좋아요.

5. 공연 중에 사진을 찍으시는 분: 공연 중에 사진을 찍는 건 허락된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 공연 사진 SNS에 올리는 거나 남에게 보여주면, 나 '관크'라고 자랑하는 거예요.

6. 아이들을 데려오신 부모님: 클래식 공연을 보기 전에 관람 예절을 알려 주면 어떨까요. 더 고상해질 것

   같은데. 아이들 옆에 앉아 공연 매너를 알려 주세요.

7. 클래식 공연을 보려는 분들: 가시기 전에 공연 매너를 알고 가면, 공연을 즐길 수 있어요.(유튜브로 5분만 보면 완벽한 관람객이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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