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맺어진 인연
<현의 노래>를 기증받은 사연
토요일 새벽 여섯 시, 눈이 떠졌다. 머리는 지끈거렸고, 몸은 찌뿌둥했다. 전날, 아내와 마신 맥주 탓이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부터 꺼내서 마셨다. 창밖 하늘엔 비구름이 가득해서, 도시는 어둑했다. 등산하려던 맘을 접고, 운동복을 챙겼다. 텔레비전 서랍장에 올려 놓은, 책도 가방에 넣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지 2주 되었는데, 200쪽 남짓 읽었다. 문장이 좋긴 했지만, 머릿속에서 맴돌다 이야기로 연결되지 않고 먼지처럼 흩어져 버렸다. 나이 들면서 집중력과 이해력이 떨어져 책 읽는 게 더 힘들어졌다. 대출을 연장하려다, 손을 떼기로 했다. 남들에게 찬사를 받는 책이니, 나도 700쪽을 다 읽고 말겠다는 불편한 욕심을 덜어내고 싶었다.
바깥공기는 밤새 내린 비 때문에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도로는 한산했다. 헬스장도 마찬가지였다. 쾌 넓은 공간에 나밖에 없었다. 가볍게 몸을 풀고, 러닝머신을 달렸다. 습기 때문에 땀은 더 송골송골 맺혔다. 한 시간 넘게 힘을 썼더니, 옷이 축축해졌다. 기분 좋게 샤워장에 들어섰다. 따뜻한 물로 몸에서 배출된 노폐물을 흘려보냈다. 물을 차갑게 틀었다. 근육과 세포가 탱탱해진다. 온수와 냉수를 오가는 사이 몸에 쌓였던 피로는 대부분 쓸려 내려갔다.
이제 책을 반납할 차례다. 행정복지센터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차를 세웠다. 여덟 시 55분이다. 차에서 아홉 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소나기의 빗줄기가 잠시 굵어졌다. 10m가 안 되는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뛰었다. 도서관 문을 살포시 당겼다. 사서 선생님은 바닥을 밀대로 닦고 있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반납대에 올려놓고, 빌릴 책을 둘러봤다. 딱히, 맘에 드는 게 없다. 예전에 빌렸지만, 읽지 못했던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도서관을 나오려는데, 기증 도서가 모여진 책장에 눈길이 갔다. 사서 선생님은 맘에 드는 책이 있으면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더 집중해 책장을 살폈다. 먼저, 첫 번째 칸을 빠르게 훑었다. 세 번째 칸 중간쯤에서 시선이 멈추었고, 손은 김훈의 <현의 노래>를 집어 들고 있었다.
김훈의 책과는 우스운 인연이 있다. 그의 대표 소설로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을 꼽는다. 그래서 세 권을 묶어 팔기도 한다. 역사 소설이면서 전쟁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을 손에 쥔 계기가 색다르다. 3년 전 어느 날, 아파트 분리 수거장에 놓인 책 여러 권이 보였다. 유독 눈에 들어온 게,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이었다. 책을 살펴보고 있는데, 50대 중반 아저씨가 재미있으니까 읽어 보라고 했다. 나는 또 책을 주워왔냐는 아내의 핀잔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남한산성>은 인생 책으로 꼽을 만큼 빠져 들었다. 무엇보다 쉽게 읽혀서 좋았다. 문장은 때로는 날카로우면서 아름답기도 했다. 나는 <현의 노래>를 들고 도서관을 나섰다. 비디오 게임에서 얻기 힘든 마법 아이템을 얻은 것처럼, 미소가 피었고, 잠시 부자가 된 듯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책장을 펼쳤다. 두꺼운 표지를 넘기자 2009년 10월에 김훈의 쓴 사인과 책 기증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기증자의 이름은 한 번도 들어 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특별하지도 않았다. 여성인 것 분명했다. 기증자는 밑 부분에 연필로 '2009. 11. 7.(토) 일직 하면서 읽음'이라고 적어 놓았다. 글자체만으로도 꽤 정갈하고, 책을 많이 읽는 분일 것 같았다. 책은 15년이라는 세월만큼 누렇게 바랬지만, 그래서 보기 더 편했다. 오래된 종이에서 나는 특유의 쿰쿰한 냄새도 오히려 책 읽고 싶은 욕구를 돋웠다. 나는 열 장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 꿈을 꾸지는 않았지만, 꾼 듯했고, 30분 남짓이었지만, 반나절은 잔 듯했다.
나는 책을 집어 들고, 커피숍을 찾았다. 여기도 빈 탁자가 더 많았다. 음악까지 더 차분하게 만들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을 집중해서 읽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기증자가 어떤 분일지 궁금했다. 책은 밑줄 하나 없이 깔끔했다. 재미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는 첫 장의 단어에 있었다. '일직'이다. 커피가 한 모금쯤 남았을 때쯤 스마트폰에 그분의 이름 석 자를 쳤다.
그분을 알고 싶었던 건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예를 들자면, 우연히 듣게 된 강연이 맘에 들어, 강사의 이력을 찾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먼저 떠오른 직업은 선생님이었다. 검색 사이트에 내가 사는 목포와 기증자의 이름을 쳤다. 없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일직을 서는 건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나 있었던 일일까! 그러면 공무원일 것도 같았다. 지역을 조금 넓혀서 전라남도로 검색해 보니 딱 한 명이 있었다. 물론 그분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분은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운 지자체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페이스북도 했다. 교회에서 남편과 같이 찍은 사진에서 그분은 포근하게 웃고 있었다. 인상이 이렇게 선할 수도 있나 싶었다. 첫 장에 남겨 있던 메모의 글자체와 김훈 작가가 썼던 이름,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는 마음마저 모든 게 그분이 맞다는 걸 증명하는 듯했다. 그분은 페이스북 친구가 700명이었다. 내 친구는 500명쯤 된다. '세상의 빛과 소금!!, 청렴은 필수!!'라는 자기 소개 글을 보고 어떤 삶을 추구하는지 짐작할 수도 있었다. 그분은 페이스북을, 업무를 알리는 데 주로 쓰는 것 같았다. 나는 그분에게 페이스북 친구를 신청했다. 그분은 아마 나를 친구 한 명 늘리려는 중년 공무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다음 날, 우리는 친구가 됐다. 그분에게 온라인으로는 기증한 책을 읽었다고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게는 무척 재밌는 일일 수도 있지만, 그분에게는 무례하고 기분 나쁜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그때 "<현의 노래> 잘 읽었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분이 "저 그런 책 사지도, 읽지도 않았는데요."라고 한다면, 씩 웃으면 되는 일이다..
7월의 장마가 한창이던 셋째 주 주말, <현의 노래>를 끼며 보냈다.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먹먹했다. 가야와 신라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읽으며, 우리나라 현재를 보는 것 같았다. 우륵은 민중의 삶을 챙기기보다는 늙어 죽는 왕의 후생을 보살피려 산 사람을 같이 묻는 가야의 순장 제도를 보며, 그 슬픔을 가야금 소리로 담아낸 것 같았다. 그는 가야금을 지키려, 신라로 넘어간 우륵은 이사부에게 "주인 있는 나라에서 주인 없는 소리를 펴게 해 주시오."라는 말로 죽음을 면한다. 신라도 민중을 살피기보다는 왕족의 힘을 늘리려고 죽고 죽이는 전쟁에만 몰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책은 우륵이 가을에 죽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현의 노래>를 읽는 내내 구슬픈 가야금 소리를 떠올렸다. 그 책은 이제 사무실 내 책장에 꽂혔다. 그 책을 보면, 그분이 아른거린다. 책으로 맺어진 참 소중한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