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뒤퐁 모노 - 사라지지 않는다
2023년 4월 14일(금) BnJ의 제17회 독서모임.
밀려있는 책을 읽고자 바로 진행된 독서모임. 왠지 올 해는 12권을 채울 수 있을지도?
※ 본 글에는 일부 스포가 포함돼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J: 이번 책은 리스트에도 없었고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책이었는데 내 의견만으로 고른 책이잖아요. '빨리 읽히고 밝은 분위기였으면 좋겠다.'라는 의견만 가지고 고른 책이었는데, 읽으면서 내가 미션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B: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고른 책이지만 나는 문장도 좋았고, 표현도 좋았고, 내용도 괜찮았어. 생각보다 밝거나 가볍지 않았을 뿐이지.
J: 나는 좀 밝고 가벼운 책을 원했거든요. 근데 그런 책은 확실히 아니었어요. 나의 영혼이 본능적으로 우울한 것에 끌리는 게 있나 봐요. 나에게 우울한 것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B: 그래서 우울한 나랑 친해졌나?
J: 그런 건가? ㅎㅎㅎ
B: 근데 나는 너 만나고 이제 별로 안 우울해.
J: 내가 우울함을 흡수하는 게 있나 봐요. 고흐를 좋아하는 것도, 우울한 책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인 것 같아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기질이 좀 우울해. 뭐 여하튼 일단 이 책 번역을 되게 잘한 것 같아요.
B: 맞아. 문장이 좋더라. 애써 포장하려 하지 않으면서 세밀하게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고 느껴졌어.
J: 이 책이 세 가지 챕터로 나누어져 있잖아요. '맏이, 누이, 막내' 이렇게요. 책을 읽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마지막 챕터의 막내가 '부적응한 아이'의 이야기 일거라고 생각했거든요.
B: 맞아. 그래서 나도 막내 챕터 첫 부분을 읽을 때 조금 혼란스러웠어.
J: 나는 그게 작은 반전이자, 좋은 흐름의 구성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맏이 부분의 이야기가 너무 우울한 거예요. 이 책에 세명의 형제가 모두 같은 부모님 밑에 같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인데 성향이 모두 다르잖아요. 첫 번째 아이의 기질이 약간은 우울함에 가깝다고 느껴졌거든요. 좀 정적이고 슬픔을 안으로 많이 삭히고 말을 쉽게 내뱉지 않는 성향의 아이랄까? 그런 아이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시작돼서 그런지 초반 부분이 많이 우울했어요. 그리고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하고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들이 진행되는데 그게 되게 신기하더라고요.
B: 예를 들면 어떤 장면들이?
J: 나는 이 책을 정말 잘 썼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있었어요. 맏이가 '부적응한 아이'를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잘 보살피잖아요. 어느 날 맏이가 아이와 함께 과수원에 있었는데, 그날 알밤 도넛을 파는 트럭이 왔던 사건 기억나요? 맏이가 도넛을 먹지 말까? 아니면 아이를 업고 갔다 올까? 고민을 하다 가지고 있는 천을 아이에게 덮고 트럭으로 달려가서 도넛을 먹고 오는데, 아이가 천에 덮여있는 것을 보면서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이 있잖아요. 뭐랄까... 그 아이의 행동이 어찌 보면 굉장히 현실적이거든요? 그런데 맏이는 그러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과 그 아이가 돌아와서 천이 덮여있는 동생을 보며 죄책감을 느끼고 그 뒤로는 트럭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 됐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이 모든 것들이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행동처럼 보였다고 할까? 그리고 어린아이가 이런 행동과 감정들을 모두 이해하고 행동한다는 것도 가슴이 아팠어요.
B: 현실적면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는 거지?
J: 네. 동생을 위해서 어린아이의 모습을 포기하고 어른이 되어버렸던 맏이의 모습을 발견한 부분이었어요. 이렇게 아픈 형제가 있는 아이들은 금방 철이 든다고 하잖아요. 맏이 역시 일찍 철이 든 어린아이였는데, 그 장면에서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왔고 나중에 그걸 깨달았을 때 자책하는 모습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B: 처음에는 골목대장 같은 스타일의 아이였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막내를 돌아보게 되면서 골목대장처럼 아이들 사이에서 군림하던 에너지를 내려놓고 막내 옆에 있는 그러면서 막내의 속도에 맞춰서 변화했지. 부적응한 아이로 인해 가족들의 내적, 외적 부분이 많이 변화한 것 같아. 그리고 그 흔적이 오래도록 남아 이들 삶의 방향이 바뀌기까지 하니까.
J: 맏이는 좀 내면으로 침잠하는 스타일의 아이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냥 마냥 밝고 외향적인 아이만은 아닌 것 같은 느낌.
B: 나는 맏이가 사유할 줄 아는 아이라고 여겨졌어. 생각이 깊고 쉽게 말을 떠벌리지 않고 않고 약간 그런 스타일이라서 그렇게 느낀 것 같아. 이 책에 만약에 부모의 챕터가 있었다면 그 챕터야말로 감정적으로 진짜 고달프고 힘들었을 것 같아. 근데 맏이와 누이와 막내 입장에서 서술돼서 오히려 좀 예상보다 덜 괴로웠고 생각보다 더 따뜻한 이야기로 읽혔어.
J: 이런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 영화나 소설을 보면 대부분 부모의 시각으로 써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물론 형제, 자매들도 나오긴 하지만) 근데 오로지 형제들의 시각으로만 써졌다는 것이 좋았어요.
B: 맞아.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들도 다루잖아. 이야기의 배경이 프랑스라서 더 그렇겠지만 어떤 행정적인 절차가 얼마나 느리고 복잡한지, 그 안에 어떤 사각지대가 존재하는지.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기 때문에 수녀들이 이제 운영하는 센터도 찾아서 갈 수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덕분에 이 문제에 관한 사회적 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J: 부모들이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부모가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라 이렇게 스스로 치유하면서 성장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B: 부모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뭘 보고 생각한 거야?
J: 누이가 엄마와 함께 심리 상담을 받는 장면이었는데, 거기서 심리상담사가 엄마에게 몰아붙이듯이 질문을 하잖아요. 그때 엄마의 움츠려든 모습을 보고 오히려 딸이 속으로 분노해요. 그리고 상담이 끝나고 나오면서 심리상담사의 굽에서 말발굽 같은 소리가 나니깐 딸이 '심리 상담 한 번 받아보세요'라고 말하면서 나오거든요. 그리고 엄마랑 차에 와서 깔깔 꺼리면서 웃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장면에서 엄마와 깊게 교감하고 있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 같았고 이 장면뿐만 아니라 자식과 부모가 서로 이해하고 깊게 교감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또 그런 부모였으니 아이들이 이렇게 따뜻하고 밝고 현명하게 큰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B: 나는 부모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좋은 어른들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왜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하잖아. 아이가 태어났을 때 축복해 주러 온 사람들, 나무를 벨 때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 아이들을 찾는 것, 시간과 경험이 켜켜이 쌓인 돌담의 시선으로 얘기하는 것들 모두에서 아이를 위한 어른의 세심함이 보였달까. 사람 간의 유대관계가 켜켜이 쌓인 돌처럼 잘 응집된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거기서 정서적으로 안정된 어른으로 성장하고 이들이 다시 또 그와 비슷하게 다음 아이들을 잘 키워냈겠구나는 생각을 했어. 누이가 할머니를 통해서 안정감을 얻는 것도 어떻게 보면 어른과 아이, 그리고 공동체 사이에 긍정적인 유대감이 잘 융화돼 있어서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싶어. 한편으로는 그런 유대감이 있는 공동체가 부럽기까지 하더라고.
J: 맞아요. 이런 가정에서 큰 아이들은 되게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B: 그래서 누이도 결국 애를 셋이나 낳았잖아.
J: 문장 하나하나가 되게 시적인 문장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소설이지만 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더라고요. 마지막 한 줄에 꼭 반전을 넣는 식의 문장 구조도 평범하지 않게 느껴졌어요. 작가가 글을 정말 잘 쓰는 것 같아요.
B: 응. 문장이 좋은 책이었어.
J: 이 아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 세벤 산맥이잖아요.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져서 책이 되게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B: 책의 표지처럼. 책을 다 읽고 나니까, 표지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더라.
J: 이 책처럼 한 사건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는 책들이 좀 많잖아요.
B: 맞아. 그런데 좀 달랐어.
J: 맞아요. 그리고 인상 깊었던 것이, 독자는 맏이와 누이 얘기를 읽으면서 '부적응한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잖아요. 그런데 마지막 막내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막내는 그 아이를 모르잖아요. 그 아이를 만나본 적이 없으니깐. 막내가 궁금해하는 아이를 나는 알고 있고, 그 상태로 아이를 모르는 막내의 글을 읽고 있는 것도 신선한 구조였어요. 그래서 막내가 아이의 흔적을 찾아가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봤을 때, 나도 뿌듯하고 마음도 따뜻해지더라고요.
B: 나는 새로운 막내가 이 집에 들어옴으로써 치유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어. 만약에 그 막내가 없이 '부적응한 아이'가 죽고 이야기가 끝이 났다면,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어둠에 잠식되고 말았을 거야. 그런데 새로운 막내가 생김으로써 막내가 형과 손깍지를 끼고, 형의 어깨에 기대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과정이 마치 이 가족을 위한 치유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J: 나도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쓰려고 문장을 생각하다가 흔적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거든요. 그것이 슬픈 상처든, 행복한 기억이든, 사람이 남긴 흔적은 맏이와 누이는 경험했던 흔적이고, 막내는 경험해보지 못한 흔적인데 어떤 방식으로든 흔적은 사라지지가 않았잖아요. 심지어 그 아이를 만나본 적이 없는 막내에게까지 남을 정도로. 그래서 누군가 남긴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기록해 놨는데, 생각해 보니깐 이 책 제목이 '사라지지 않는다'인 거예요. 책의 제목을 그냥 무심코 넘겼는데 그게 바로 이 제목이었던 거죠. 그때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B: 나도 비슷한 맥락에서, 책 제목을 그렇게 정했을 거라고 생각했어.
J: 언니 이거 뒤에 옮긴이의 말 안 읽었죠?
B: 응. 안 읽었어.
J: 옮긴이의 말에 설명이 되어있는데, 이 책의 원제가 '적응'이래요. 표지에 필기채로도 위에 적혀있는데, 프랑스어 제목은 '적응'이라고 하더라고요. 국문으로 번역하면서 '사라지지 않는다'로 제목을 바꾼 건데, 나는 원제도 좋고 번역으로 바꾼 제목도 좋은 것 같아요.
B: 그래서 도입부에 "부적응한 아이가 태어났다"라고 말한 거구나. 나는 그 문장이 문법상(?) 어색하게 느껴져서, 이게 무슨 소린지 한참 생각했거든. 어쨌든 어색한 문장으로 시작해서 슬프고, 무겁고, 어두운 내용이 담긴 책이라고 여겨서 내용과 표지가 상반되는 책이라고 판단했었어. <<바깥은 여름>>처럼. 그런데 다 읽고 나니, 표지처럼 밝고 따뜻한 책이더라.
J: 맞아. 이 책의 제목과 표지가 모두 출판사 '필름'이 새롭게 만든 건데, 잘 바꾼 것 같아요.
J: 한 사람이 남긴 흔적이 정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아이의 흔적이 막내의 성장에도 엄청난 큰 영향을 끼친 거잖아요.
B: "오렌지가 보이니?" 하고 물어보는 엄마의 표정에서 막내가 많은 것을 느끼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부적응한 아이'에게 습관적으로 말을 거는 것처럼 말이지.
J: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서 화자가 '돌'이기 때문에 모든 인물이 이름을 갖지 않는다고 나오거든요. 그 시선도 되게 색다른 발견이었어요. '맏이', '누이', '아이', '막내' 이렇게 불러지잖아요.
B: 그렇네. 이름이 없네? 근데 화자가 돌이어도 이름은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J: 그럴 수 있죠. 그런데 '그 장소에서 살아간 무수한 사람들을 수백 수천 년 동안 보아온 돌에게 이름 따위가 뭐가 중요한가.'라고 하더라고요. 오랫동안 존재했던 그 자연에게 한낱 인간들의 이름이 뭐가 중요하겠냐는 거죠. 이것도 참 좋은 발상이죠?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내가 정말 공감했던 옮긴이의 말이 두 권이 있는데, <<장미의 이름>>과 <<사라지지 않는다>>예요. 이 책도 옮긴이의 말까지 읽어봄 직해요.
B: 나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아무튼 책 잘 골랐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J: 감사합니다.
B: 문장력 2.9점 + 구성력 2.7점 + 오락성 2.5점 + 보너스 1점 = 총 9.1점
J: 문장력 2.9점 + 구성력 3점 + 오락성 2.7점 + 보너스 1점 = 총 9.6점
B: 김예원 -이상하지도 아프지도 않은 아이 : 사라지지 않는다에서 첫 번째 막내의 실체는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아이의 세상 적응기를 아이의 시선에서 볼 수 있는 책. 맏이-누이-막내로 이어지는 시선의 연장선이나 실체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교해 볼만한 책
J: 영화 '아무도 모른다' : 사랑받은 아이들과 대조되는 버림받는 아이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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