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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dan한 B Dec 29. 2023

이토록 사적인 독서모임이라니_Ep.20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 - 도로시 길먼

2023년 6월 12일(월) BnJ의 제20회 독서모임.

앞만 보고 달려오니 벌써 20번째다.

'20'이라는 숫자를 보니 왠지 우리의 모임도 조금은 성숙해진 느낌이다.





※ 본 글에는 일부 스포가 포함돼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B: 책에 묘사되어 있는 그대로 할머니를 표지에 그려놨어.


J: 맞아요. 이 할머니 너무 귀여워. 그런데 이 책 표지 때문에 잘 안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니는 그런 생각 안 했어요? 난 표지를 너무 못 만들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책도 그렇고 뒤에 나온 시리즈의 표지들도 굉장히 청소년 도서처럼 만들었더라고요.


B: 할머니를 정말 잘 묘사했지만 유치해 보일 수도.


J: 네. 이 책이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된 게 우리 집에 책이 있어서였잖아요. 사실 오래전에 선물 받은 책인데, 표지가 너무 유치해 보여서 안 읽고 있었던 거거든요.


B: 하지만, 편집자나 디자이너는 분명 이 귀여운 할머니를 표현하고 싶었을 것 같아. 나도 책을 읽고 나니 이 할머니가 다시 보이고 반갑더라고.


J: 그랬겠죠? 그런데 사전 정보 없이 서점에서 끌리는 대로 책을 고르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안 살 것 같아요. 언니는 살 것 같아요? 서점의 수많은 서적 중에 이 책이 보였어! 그럼 언니 손이 가서, 구매까지 갈 것 같아요?


B: 그렇지. 선뜻 손이 가진 않았을 것 같아. 뭐 어쨌든, 껍데기는 그러할지언정 내용은 재밌었잖아.


J: 그건 그렇죠. 책 어땠어요?


B: 우선 굉장히 빨리 읽혀서 좋았어.


J: 우리 이렇게 빨리 읽히는 책, 되게 오랜만 아니에요?


B: 맞아. 오랜만이지. 게다가 결론이 너무 뻔한데 그래서 좋았어. 예상할 수 있는 해피엔딩이라서! 


J: 맞아. 


B: 마음 졸이고 그런 게 없더라고. '이지 스릴러'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지. 평소에 스릴러를 즐겨보는 편이 아님에도, 이지 스릴러 정도면 나도 괜찮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어.


J: 이게 되게 뻔한 스토리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감 있게 읽히는 것 같아요. 결론을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재미있었다.


B: 과정이 흥미롭지? 책을 읽을 때, 맨 뒤로 넘겨서 결론부터 보고 앞으로 다시 와서 보는 사람이 있고, 절대 결론을 보지 않고 순서대로 보는 사람이 있잖아. 근데 이 책은 어느 쪽이어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아.


J: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도 쉽고 재밌게 읽었는데, 그 책 보다 더 편하게 읽은 책이었어요.


B: 만약 폴리팩스 부인이 실존 인물이라면, 헨드릭 흐룬 할아버지를 소개해주고 싶은 그런 그런 마음이 들었어. 할머니가 한 번씩 이렇게 모험을 다녀와서 그 모험담을 헨드릭 흐룬에게 들려주면 그 할아버지가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더라고. 오히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그분 인생이 너무 스펙터클 해서 할머니의 모험담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 같은데, 헨드릭 흐룬 할아버지의 그 위트와 상상력이 딱 결합되면 두 분이 굉장히 잘 맞을 것 같아.


J: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최근에 읽었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비교하면서 읽게 됐는데, 어쨌든 두 권 모두 탐험 소설이잖아요. '100세 노인'은 너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험담이라면, 이 할머니는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유쾌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오히려 할머니가 이 상황을 너무 유연하게 빠져나가거나 대담하게 행동했다면 재미가 반감 됐을 텐데, 소심하고 어설프게 행동했기 때문에 나오는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재미있었어요.


B: 맞아 이 책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비교하자면, 할아버지는 IQ로 상황을 헤쳐나간다면, 이 책의 할머니는 EQ로 헤쳐나가는 사람인 것 같아. 약간 매력으로 승부하는? 입담과 현란한 마사지 스킬로 간수들을 정복하잖아.


J: 맞아. 이 할머니 너무 귀여워. 우리가 읽었던 노인들 중에 제일 귀여운 사람인 것 같아요.


B: 헨드릭 흐룬 할아버지 소개해주고 싶다. 기회가 있기를..

폴리팩스 시리즈의 표지들
폴리팩스 부인 원서 시리즈의 표지들

J: 표지나 여러 가지로... 이것보다 조금 무게감을 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이 표지가 주는 임팩트 때문에 너무 가벼운 소설같이 느껴져요.


B: '북로드'(폴리팩스 부인 시리즈를 출판한 출판사)가 재밌는 국외서적을 잘 골라서 국내에 출간하는데, 계속 히트가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 마케팅이나 디자인에서 한계를 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J: 나도 북로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전에 출판된 책을 쭉 봤는데, 꽤 흥행한 책들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지나 이런 게 썩 구미를 당기게 하지 않는 것 같아요. 


B: 요즘은 뭐든 디자인이 굉장히 중요하잖아. 이 책의 디자인도 귀엽긴 하지만, 사실 지극히 편집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거지, 디자이너나 사용자의 시선에서 바라보지 않은 결과인 것 같아. 근데 나는 이것도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의 시그너처 같은 느낌으로 가져가려고 한 것도 있지 않았을까 싶긴 했어. 뒤에 나온 시리즈의 표지도 이런 느낌이라고 한다면...


J: 이게 미국에서 출판됐을 당시에(1966)  나왔던 추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캐릭터화된 것들이 좀 많았잖아요. (물론 셜록이나 뤼팽은 이것보다 1세대 전이긴 했지만) 아마 이 책도 이 주인공을 캐릭터화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B: 나는 그렇다면 작명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이름도 입에 잘 붙고 글자수도 짧은, 셜록/뤼팽 같은 이름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폴리팩스'는 길고, 입에 잘 안 붙어.


J: 보니깐 35년 동안 이 시리즈만 총 14권의 책을 냈네요? 그리고 한국에는 4권까지만 번역이 됐고.


B: 도로시 길먼이 원래는 아동 동화를 쓰던 작가래. 말년에 시골로 내려가서 그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장르를 한 번 시도해 보자 해서 쓰기 시작한 게 이 책이라고 하더라고. 이 책으로 본인의 제대로 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 거지. 그래서 본인의 모습이 캐릭터에 많이 투영되어 있다고 하더라.


J: 이거 영화화했어도 되게 재밌었겠다 싶었는데, 보니까 이미 미국에서 영화로 두 편이나 나온 것 같더라고요. 


B: 오~~ 보고 싶다.


J: 그리고 이 할머니 생각보다 젊은 거 알죠?


B: 응. 남편도 일찍 사별하고...


J: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게 안에 나오는 인물들이 복잡하지 않았어 좋았어요. 등장인물이 많지 않으니까 캐릭터 하나하나가 입체적이고 그래서 더 쉽게 이미지를 그려가면서 읽을 수 있겠더라고요. 


B: 이 책이 술술 읽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스토리가 술술 풀려서인 것 같기도 해. 스토리가 계속 정체돼 있으면 아무리 책장이 넘어가도 흥미도도 떨어지고 읽는 속도도 떨어지게 되잖아. 그런데 이 책은 이야기 전개도 술술, 그러니까 책도 술술, 문장이 어려운 것도 없고 등장인물이 복잡하지도 않고. 그리고 주인공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로 행운이 계속 찾아오잖아. 아무도 괴롭지 않고, 괴로워도 적당히 괴롭고, 금방 행복을 찾는? 그런 면에서 해피엔드를 지향하는 내 스타일의 책이었어.


J: 응. 맞아 어둠이 없어요. 이때의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이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B: 약간 스파이 활동을 실제로 하고 그랬을 시절? 그럼 이제 여기 더 몰입해서 읽었겠지? 혹시 할머니가 실존인물이 아닐까? 하면서~


왼) 로절린 러셀 주연의 1971년 작품 / 오) 앤젤라 랜즈베리 주연의 1999년 작품

J: 그런데 이 책 왜 흥행하지 못했지?


B: 그러게 충분히 흥행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나는 오히려 뤼팽보다 재밌었어.


J: 나도요. 너무 쉬워서 그런가?


B: 이게 뤼팽이나 셜록보다 비교적 우리랑 가깝기 때문은 아닐까? 셜록은 새로운 환경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고, 뤼팽은 어쭙잖게 상상할 수 있는 그냥 그런 시기라 재밌는 거고, 폴리팩스는 밀접하게 가깝게 있는 시기라는 느낌이 있어서? 너무 끼워 맞추기인가.


J: 그래도 1966년부터 썼으니까 나름 옛날이잖아요. 60년 전이니깐. 옛날에 나왔던 영화나 소설을 지금 보면, 그 사이에 너무 많은 작품이 나와서 좀 뻔하다고 느껴지지만 그때는 굉장히 센세이션 했겠구나 하는 작품들이 있었거든요. 영화 세븐도 그렇고, 셜록도 그렇고, 영화 식스센스도 지금은 뻔하다 느껴지지만 그때는 얼마나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난 이 책도 이 시절에는 엄청 파격적인 이야기였을 것 같아요. 할머니가 스파이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 자체가 이 시대에는 좀 상상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 않았을까...


B: 이 책에 쓰였던 조금 앞 시대에는 스파이가 진짜로 활동을 하고, 그런 기사들이 신문지상에 나오고, 우리도 간첩 기사들을 신문이나 뉴스로 접하던 그런 시대였으니까, 스파이 활동에 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아. 이 할머니처럼. 그래서 그게 반영이 돼서 그 시기에 더 좀 재밌게 읽히지 않았을까? 생각했지.


J: 나름 미국에서는 흥행한 것 같아요. 작가도 추리 소설 쪽에서 인정을 받았고, 책도 흥행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서 흥행하지 못한 것이... 내가 아쉬울 건 아니지만 아쉽다. 재미있잖아요. 재미로 보자면 이만한 책을 사실 못 봤거든요. 물론 내가 재밌는 책을 읽지 않는 병에 결렸기 때문에...ㅎㅎㅎ 접한 적이 없어서 그런 것 일수도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보다 이 책이 더 재미있었어요. 100세 노인은 좀 더 이야기가 촘촘하고 방대한 스토리로 흘러가기 때문에 조금 다를 수 있지만...


B: 근데 그건 단권 짜리고, 이건 연재물이라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싶어.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뒤로 가면 갈수록 문학에서 이야기 구성이 더 치밀해진다고 느끼거든. 속도감 있는 시대에 살면서, 나노 단위의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고 촘촘한 사건과 인간관계 속에 살고 있어서. 문학은 그런 시대의 소산이기 때문에 더 복잡해진다고 생각해. 그래서 후대에 나온 책이 더 촘촘하게 느껴질 수밖에 업지 않았을까?


J: 그래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더 재밌었어요. 


B: 응 나도 재밌었어. 그리고 쉬웠어. 생각을 덜 해도 되잖아. 


J: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정말 많은 사건을 한 책에 넣은 단편집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하나의 큰 사건을 좀 여유로운 흐름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B: 오~ 맞아. 근데 크게 보면, 그 할아버지도 한 사건인데?! 탈출한 거 하나!


J: 그렇긴 하지만, 그 할아버지 책 안에가 엄청 다양한 스토리가 들어가 있잖아요.


B: 그렇지. 사건은 하나지만 할아버지의 인생을 다 쪼개서 보여주니까.


J: 그래서 이게 더 쉽고 재밌었죠.


B: 이 책을 잘 골랐구나. 역시 나의 안목은 죽지 않았구나...


J: 언니가 책 그만 사라고 해서 집에 있지만 읽지 않았던 이 책을 고르게 된 거잖아요.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이 책을 읽고 독서욕이 끌어 올라서, 그 뒤로 책을 진짜 많이 읽었어요. 한 다섯 권 읽었나?


B: 나는 오랜만에 책을 읽어야 된다는 강박이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어. 항상 중간에 네가 '언니 얼마나 읽었어요?' 물어볼 때마다 '얼마나 읽었지? 만나기로 한 날까지 다 읽을 수 있나?' 이렇게 약간 숙제처럼 '읽기'에  시달렸었거든. 근데 이거는 술술 읽히니까 그런 강박이나 불안이 없었어.


J: 나도요. 이거 너무 재밌는 거야. 그래서 뒤에 스토리가 궁금하니까 걸어가면서도 읽고 막 그랬어요. 내가 노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노인이 나오는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노인이 나오는 책은 언제 어떤 타이밍에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잖아요. 마치 그게 블랙 코미디 같기도 하고... 그리고 확실히 노인들만이 할 수 있는 행동과 생각이 있어요. 난 그게 되게 재밌더라고요.


B: 맞아. 또, 노인들은 어쩐지 감정이 격정적으로 치닫거나 이러지 않는 인물로 묘사되더라고. 그런 것도 참 좋아.


J: 인생을 다 경험해 봤기 때문에 어떤 사건 앞에서도 덤덤할 수 있는 담력이 있는 게 아닐까요.


B: 그럴지도 모르지. 깔깔거리면서 웃는 것도 좋지만, 그냥 씩 웃을 뿐인 것들. 그런 것들이 재밌었어.



B&J의 지극히 사적인 평점

B: 문장력 2.5점 + 구성력 2.5점 + 오락성 3점 + 보너스 1점 = 총 9

J: 문장력 2.3점 + 구성력 2.7점 + 오락성 2.9점 + 보너스 1점  = 총 8.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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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영화 '스파이' : 우당탕탕 스파이 체험기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모험 이야기.

* 이 글은 J의 브런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aboutj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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