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생존기_02
한국에서 하키 경기를 직관하는 건, 캐나다에서 태권도를 직관하는 것만큼이나 드문 경험이다. 나 역시 40년 가까이 한국에 살면서 단 한 번도 하키를 직관하지 못했고 영화 <인 사이드 아웃>에서 주인공이 땀을 흘리며 얼음 위를 가르는 것을 보아도 그것이 어떤 스포츠인지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이 어딘가. 아이스하키의 나라 캐나다이다. 캐나다 아이스하키의 역사는 1870년대 영국인들이 밴디에서 아이스하키로 발전시킨 것에서 시작됐다. 몬트리올의 맥길대 학생의 주도하에 강 위에서 경기를 하며 초기 규칙을 만들었고, 1879년 최초로 몬트리올에서 최초의 실내 하키 경기가 열리기 시작했다. 점차 현대화된(이때 여러 규칙들을 개정됐다고 한다) 아이스하키가 유럽에 소개되면서 1908년 파리에서 국제 아이스하키 연맹이 만들어졌고, 1924년 제1회 동계올림픽에서는 아이스하키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캐나다 사람에게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물으면, 주저 없이 하키를 1순위로 꼽는다. 또한 북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하키 리그 중 하나인 내셔널 하키 리그(NHL)에는 다수의 캐나다 하키팀이 속해 있고, 국제 아이스하키 연맹(IIHF)에서도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하키 강국이다. 한 마디로 하키는 캐나다 인들의 즐거움이자 자부심인 셈이다. 우리에게 태권도가 그렇듯. 우리의 국민 스포츠 중 하나인 태권도의 역사를 간략하게 비교하면 태권도는 고대에 기원을 두고 있고, 일제 강점기를 거쳐 여러 무예기술이 융합돼 1955년 태권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기념비적이었던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시범 종목을 거쳐 1994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이르러서야 정식 종목으로 첫 경기를 치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캐나다인들의 하키 사랑은 전쟁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다. ‘전쟁통에도 새 생명은 태어난다 ‘고 했던가. 캐나다 육군은 전쟁통에도 하키에 대한 사랑을 발휘했는데, 6.25 한국전쟁 당시 한국에 파병온 캐나다 육군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꽁꽁 언 임진강 위에서 아이스하키를 즐기며 향수를 달래고 전쟁의 피로를 해소했는데, 급기야 1952년 3월 11일, R22ER(Royal 22(e) Regiment), PPCLL(Prince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 RCR(Royal Canadian Regiment) 세 부대가 토너먼트 경기를 열었다. 이 날의 경기는 우승자를 가리기보단, 전쟁 중에도 인간다움을 잃지 안 하던 모든 병사들의 이 서로를 함께 기억하자는 의미로 이뤄졌기에 모두가 승자이자 의미인 그런 시간이었다. 이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2013년,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기념하며 이때 참전했던 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한국과 캐나다의 우정과 전우애를 되새기기 위해 주캐나다 한국대사관이 캐나다 육군과 함께 시작한 것이 있다. 바로 ‘임진하키클래식’이다. 전투 장소를 기념해 ‘임진’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이후 코로나로 인한 축소와 중단이 있었으나 2022년 ’ 7th anniversary of the Battke of Imjin River’라는 이름으로 재개됐고, 2023년에 이어 2025년 10월 4일 오타와 Bell Sensplex에서 열렸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의 스포츠를 경험하고자 이곳에 방문했다. Bell Sensplex는 3개의 아이스링크장과 1개의 인조잔디 실내구장으로 구성돼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코스, 여자아이들을 위한 코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었고, 굿즈샵도 있었다. 난생처음 방문한 아이스하키장은 생각보다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를 띠었다. 한쪽 끝엔 태극기와 캐나다국기가 걸려있었고, 관객석 맞은편엔 아니운서들이 앉아. 경기 중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의 행사는 총 2부로 이뤄졌는데, 1부 ‘프렌들리 경기’에서는 각국 무관단으로 구성된 Lameduck 팀과 캐나다 의원 하키팀이 경기했고, 이어진 2부 ‘레전더리 경기’에서는 1952년 결승에 올랐던 PPCLI와 22 연대가 재현 경기를 펼쳤다. 프로 하키 선수들은 아니었지만, 하키 입문자에겐 꽤나 흥미로운 경기였다고 자부한다. 비록 1부에 참여한 이들은 얼음 위에서 중심 잡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선수도 있었으나 친선경기답게 서로 골키퍼를 바꾸기도 하고, 퍽을 향한 어깨싸움이나 경쟁보단 서로의 안전과 즐거움을 위한 경기를 이어나갔다. 2부에서는 이보다 격렬한 경기가 이어졌는데, 선수들은 미끄러지듯 퍽을 향해 달려가 주저 없는 스틱질을 보여줬다. 경쾌하게 이어지는 패스 덕에 퍽과 스틱이 부딪히며 짧은 리듬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번 행사에는 안영기 대사 대리를 비롯해, 캐나다 상원위원과 아버드 장군 등 현직 주요 인사들이 참여했는데, 한국전 참전 용사 7명이 경기장으로 들어오는 순간은 관객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얼음 위에 깔린 레드카펫이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다. 특히나 4시간 거리의 노스페이스에서 왔다는 테니스 무어 참전용사는 1952년 임진하키 토너먼트의 주역 중 한 명이라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
경기장은 내부는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추웠지만, 미리 준비된 담요와 따뜻한 차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격렬한 응원과 박수를 던지느라 손바닥이 붉게 달아오른 것도 추위를 이기는 요인 중 하나가 됐다. 우리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추어 경기를 보고도 이렇게 재밌다면, 프로들의 경기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이날 경기를 마치고 아이들은 스케이트가 타고 싶다고 성화였다. 당장 스케이트 프로그램에 등록해 달라는 요구에 못 이겨 프로그램 등록 절차까지 확인하고, 등록 링크까지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첫 아이스하키의 경험은 강렬했고, 유쾌했다.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이곳 캐나다에서 이들이 찾은 즐거움이 과연 타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후에 하키에 관심이 생겨 알게 된 것인데, 하키는 ‘스틱’을 의미하는 고대 프랑스어인 ‘호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프랑스어 사용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잇는 일이라 생각하는 캐나다에서 그것도 프랑스어 사용을 기본으로 하는 퀘벡 주에 속해있는 몬트리올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퍽 어울리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