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생존기_01
딸아이는 한국 나이로 7살이다. 국제 나이로는 6살, 그마저도 생일이 늦어서 생일로 치면 아직 5.7세 정도다.
언제 이렇게 컸지? 싶다가도 아직 아기구나 싶은 그런 나이.
한국에선 7살이면, 영어로 문장을 읽고 쓸 수 있어야만 영어유치원에 들어갈 수 있고, 곧 학교 갈 나이이므로 한글을 떼야만 하고, 셈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시기다.
딸아이는 한글을 늦게 가르치기 시작한 탓에 이제 막 더듬더듬 한글을 읽기 시작했고, 문장으로 길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 외에 더하기 빼기로 표기된 수는 이제 막 하나씩 배워가고 있었다. 7세 고시를 치르는 8학군 아이들에 비하면 턱없이 늦은 속도로 학습이란 걸 시작했지만, 초등학교 입학 후에 한글을 배우게 돼 있는 한국의 정규교과과정에 따르면 내 아이는 지극히 적당한 속도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다 돌연 이곳 캐나다로 오게 되면서, 딸아이는 갑자기 초등학생이 됐다. 이곳에선 6살 가을부터 학교에 다니기 때문이다.
7살 유치원생에서 6살 초등학생이 된 딸. 생일을 기준으로 얘기할 땐 5살이라고 말해야 하는 딸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다니.
캐나다에 도착하고 그 이튿날 아이는 국제학생 영어테스트를 봤다. 은행계좌 오픈을 위해 은행과 약속이 잡혀있던 나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현장에 있었던 남편의 말로는 ‘안부를 묻고, 캐나다에 온 소감을 묻고, 좋아하는 색을 묻고는 알파벳 쓰기를 시켰다 ‘고 한다. 남편이 보기엔 놀라울 정도로 잘 대답하고 썼다는데, 남편이 이해하고 있는 아이의 수준과 실제 이곳에서 받아들일 수준이 차이가 있을 것 같아 얼마나 잘 응시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무사히(?) 테스트를 마치고 바로 그다음 주에 학교가 시작됐다.
9월 2일이 첫 학기가 시작하는 날이었다. 이곳은 입학식이 따로 없다. 그저 ‘학교 첫날‘이라는 타이틀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아마 다른 학부모들은 선생님의 이름과 반에 관한 정보를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늦게 도착한 탓인지 그저 누락된 건지는 몰랐다. 학교에 도착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한 아이아빠가 물었다. “***에 이사 오신 분이시죠?” 나는 너무 놀라 어떻게 아냐고 물었더니, 같은 스트릿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한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고, 짧은 영어와 첫 등교라는 긴장감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한 여자가 다가와 ”***에 이사 오신 분이죠? “하고 또 물었다. 나는 또 놀라 어떻게 아시냐고 했더니, ”이사올 때 시끄러워서 알았어요. “라고 말한다. 순간 눈앞에 하얘졌다. 조용한 주택가에 우리 아이들이 목소리가 좀 크긴 했지, 하지만 이사 오는 데 트렁크 몇 개 옮기는 정도의 소리는 이해해 줄 수 있는 수준 아닌가?! 순간 당황해서 ”오, 죄송해요.‘라고 말한 뒤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내 눈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아이를 챙기느라 바쁜냥을 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와서 먼저 말을 걸었던 친절한 남자의 아내였다. 나는 더 말하지 못하고,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그 이후에 1-2번 그 여자를 마주쳤는데, 먼저 손을 흔들며 인사하길래 같이 인사를 했고, 이후엔 마주치지 못했다. 사실 마주치지 못한 건지, 내가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 비슷하게 생긴 서양인들 사이에 있다 보니, 사실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다.) 다행히 그 집은 아이가 셋이었고, 유아차를 타고 있는 아이를 제외하면, 한 명은 딸아이와 같은 1학년이었지만, 나머지 한 명은 유치원에 입학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유치원 쪽에 머물렀다. 그때 이후로 나는 아이들이 큰 소리를 낼 때마다 더 단속했고, 더 조심하라고 이른다. 첫 2-3주간 나에게 아이들이 만드는 ‘노이즈‘가 가장 큰 스트레스였을 정도로. 강박에 시달리며 단속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멋쩍게 자리를 뜬 후 놀이터 겸 운동장에 가보니, 반 별 표지판이 있었다. 어느 반에 배정됐다는 메일을 받지 못했던 나는 학교 관계자로 보이는 이에게 아이의 반이 어디인지 물었다. 알고 보니 다들 담임 선생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1반, 2반 이런 게 아니라 어느 선생님 반인 지를 묻고 대답하는 것이 생경했다.
아이의 반에 가서 줄을 서고 보니 조금 이상했다. 다른 1학년 반 학생이 20명 남짓인 것에 비해 딸아이 반의 학급수는 총 7명에 그쳤고, 여자아이는 딸아이를 포함해 3명, 한 명은 중동, 한 명은 아시안이었다. 나중에 문의해 보니 영어몰입식 반을 선택한 경우가 드물어서 인원이 적은 거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곳은 영어몰입식 반과, 불어몰입반이 있다. 영어와 불어가 반씩 사용되는 곳이다 보니 불어교육이 이른 나이부터 시작된다. 마치 우리가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것과 같달까. 그리고 현지 아이들은 우리가 한국어를 하듯, 영어는 기본으로 가정에서 학습하게 되다 보니 대부분 불어몰입반을 지원한다. 우리는 아직 영어도 서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영어몰입반으로 들어갔는데, 지금생각해 보니 불어몰입반에 들어가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영어몰입반은 대부분 국제학생들이 많아 영어가 어려운 친구도 있고, 인원도 적어 친구를 사귀는 폭이 적다. 반면에 불어몰입반은 한 반에 7명이었던 딸아이반에 비해 한 반 인원수가 최소 2.5배 정도였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시간엔 80% 정도 불어로 교육을 받는다. 한 마디로 친구들과는 영어로 이야기하고, 언어시간의 20%는 영어를 나머지 80%는 불어를 배우는 거다. 그리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불어학습량이 줄고, 졸업할 때는 1:1 비율로 영어와 불어를 사용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입학 첫날, 바로 내년 계획은 수정했다. 봄 학기가 시작될 무렵, 학교에 문의하고 내년엔 아이를 불어몰입반으로 옮겨줄 것. 그리고 그때를 대비해 내년 여름까지는 영어가 어느 정도 편해지도록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야 아이가 불어로 수업을 듣기 시작할 때 함께 불어공부를 하며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미 입학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언어시간에 80%는 영어를 20%는 불어를 배우고 있고, 벌써부터 불어 대본을 집으로 가지고 온다. 불어는 연극으로 배우기 때문인데, 나는 한 줄짜리 대본의 발음을 알려주기 위해 몇 시간이나 사전을 뒤져야만 했다. 하. 배움에는 정말 끝이 없구나.)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젊은 여자였다. 친절하고 상냥한 미소로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주어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집으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국이었다면, 입학식에 교실 구경에 온 가족에 출동해 학생이 된 아이를 축하하고 격려해 줬을 텐데, 큰 결심을 하고 시작한 것에 비해 소박하고 조용하게 첫 학교를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학부모가 돼보지 못했기에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두렵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잘할 수 있을까? 딸아이보다 내가 더 걱정이다. 숙제가 있거나 가정통신문 학부모 참관, 상담 등등 많은 역할과 책임이 주어질 텐데. 몰라서 또는 못 알아들어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실수를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불안이 치솟는다. 남편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한국에서도 주말부부로 지내던 남편이 새삼 옆에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참 나약하기도 하지. 떠날 땐 지금도 주말부부니까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간사한 마음이 변덕을 부린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첫 학교를 마친 딸을 학교가 재밌었다고 한다. 첫날부터 수업을 했는데, 교실에 가자마자 이런저런 안내사항을 들었고, 그 뒤엔 놀다가 운동장도 나가고 마지막엔 프랑스어 수업도 들었다고 했다. 프랑스어 수업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면서 짧게 앞부분을 불러줬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대견했다. 뒷부분은 기억이 안 난다며 후에 알게 되면 불러주기로 했다. 벌써부터 딸아이의 프랑스어 노래가 기대된다. 합창반을 시켜야 하나.
이후에 시간표를 받고 알게 된 놀라운 사실. 딸아이가 놀았다고 한 시간은 언어시간과 수학시간이었다. 수학은 단순히 숫자를 세는 정도였고 언어는 아마도 게임을 하면서 했나 보다. 아이는 그게 수업이 아니라 노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는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귀진 못했다. 한국에선 어딜 가나 친구를 사귀고 어느 곳에서건 붙임성 있게 굴었던 터라 조금 의외였지만, 영어로 친구를 사귀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놀이터에서 “나랑 친구 할래?”를 연발하고 다닌다. 그러다 누군가 “그래”라고 말하면, 그날 밤에 “엄마 오늘 정말 친절한 친구를 만났어.”라고 말한다. 부디 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친구들이 많이 생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