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때론 나빴을 인생에 좋았던 것들
소노 아야코의 '약간은 거리를 둔다'처럼 때론 투산에서 나빴을 인생에 물론 좋았던 것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한 여름에 끈나시 하나 입고 돌아다녀도 신경 쓰이지 않던 시선들, 12월의 한겨울에도 두꺼운 패딩을 입지 않을 만큼 따뜻했던 겨울 날씨, 좋아하는 과일을 마음껏 맛있게 그리고 값싸게 먹는 것, 한 입 먹고 나면 온 몸이 사르르 녹아버리는 치즈 케이크 집,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안부를 물어도 어색함이 없는 순간들, 대충 입고 마켓에 가도 절대 하지 않는 지적질 등등
그중 내가 가장 사랑했던 '크리스마스 시즌'
나는 그 수많은 순간들 중에서 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가장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어려서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올 때면 늘 설레었다. 물론 종교를 가진 천주교 신자로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일주일 전부터 온갖 캐럴송을 플레이 리스트에 추가하며 거리를 걸을 땐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랄까.
그런 나에게 미국의 크리스마스 시즌은, 마치 시골의 작은 성당에서 드리던 미사를 명동성당과 같은 거대한 곳에서 드리는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자 온 동네는 각자 자신의 집에 형형색색 크리스마스 장식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기념일을 더욱더 특별하게 생각하는 미국 사람들은 1~2주 전 (심지어 어떤 집은 한 달 전부터)부터 꾸미기 시작한다. 어떤 이들은 실제로 크리스마스 나무들을 키우는 농장에서 직접 사 오기도 하고, 앞 집주인과 심오한 논의 끝에 루돌프를 탄 산타 할아버지의 마차가 지나가듯 서로의 지붕과 지붕을 긴 전구로 연결하기도 한다.
이 시즌에는 어떤 동네를 들어가더라도 화려한 성에 놀러 온 듯 했다. 특히나 크리스마스 시즌에 유명한 행사인 'Winterhaven Festival Of Lights'에 가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집들이 경연을 펼친다. 이 날은 만석인 주차장을 두세 번은 돌아야 할 만큼 구경 오는 시민들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달콤하고 맛있는 쿠키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켓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쿠키, 케이크 등과 같은 디저트가 무슨 맛이 있겠냐 싶었지만 한 입 베어 문 순간 그 중독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특히나 둥글고 크기가 넙적한 쿠키는 늘 설탕 덩어리로 가득 찬 아이싱이 얹어 있지만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핑계로 둘러 넘기기 쉬운 날이었다.
어쩌면 크리스마스라는 존재가 이 평범하고 단조로운 곳에서는, 뜻밖에 발견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이 설렘을 안겨주는 순간이 아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