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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Aug 28. 2024

별거 10년째(18)

본격적인 이혼준비...

남편의 대화거부로

나의 이혼이야기는 또 속절없이 보류되었다.

그 사이 나는 대학교에서 준교수로 승진하였고

일은 더욱 바빠졌다.

하지만, 아이들이 점점 자라서 어느 정도 육아시간과 내용에 조절이 가능해졌고

일과 환경이 안정되니까 확실히 몸과 정신이 건강해져서

남편과의 관계, 이혼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성경안에서 이혼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살펴볼 힘도 생겼다.


별거 8년이 훌쩍 넘은 시점이었다.

첫째 아이가 만 19세가 되었다.

남편은 일시 귀국한 아이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것은 바로 20XX 년 일본 홀로 사는 청년의 월평균 생활비 통계자료였다.


그는 아이에게 이제 만 19세가 되었으니 네게 얼마를 줄 것다라며,

통계자료를 가지고 금액의 근거를 설명했다고 한다. 대학학비는 엄마랑 나누어서 딱 반!

아이는 아빠가 열변을 토해가며 설명하였기에 알겠다고만 대답했다고 한다.


이혼했을 경우에는 아이가 성년이 되면 양육비의무가 없어지기 때문에

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쳐도, 우리는 이혼상태가 아니고

아이는 만 19세가 되었지만 내가 데리고 살고 있는데

갑자기 만 19세가 되었으니 이 아이에 대한 생활(양육) 비를 줄인다는 것이 나는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대학생이 되었으니 사립고등학교와 학원비 등의 교육비가 줄어들고,

아이가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으니

첫째 아이에게 해당하는 생활(양육) 비를 좀 조정하겠다는 설명이었다면 납득이 될 것 같은데

그런 논리도 아니었다.

나는 당장 카톡으로 연락했지만,

너와는 할 이야기가 없다. 애가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애랑 이야기하겠다.


는 답변이 왔다.

대학생이 된 아이가 당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실은... 아이는 대학은 한 달 다니고 바로 재수학원을 등록, 재수를 시작했다.

나는 또다시 도시락을 싸고 라이딩등을 감당하며

성인이 된 아이의 뒷바라지를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별거할 때에 초등학생이었던 아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나 홀로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용쓰고 애쓰고 어르고 달래며 키웠는지 말했다.

내가 양육하고 있으니 남편이 더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아래와 같은 답변이 왔다.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아이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거 당연한 것 아닌가?
양육자가 한 고생한 부분에 대해 내가 왜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아직도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있다니,

아직도 나와의 대화를 거부하다니,

나의 양육부담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다니,

나는 아이가 성년이 된 그 달부터 변호사와 무료/유료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논리와 신념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는 것에 능숙한 사람이다.

그가 여전하다는 사실은 오랜만에 내 전투력을 높여주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제 사과도 변화도 아니다.

제발 사과하지 마라.

제발 변화하지 마라.

그대로 있어라...


나는 방학이 되자 한국으로 귀국하여 몇 군데 변호사사무실을 찾아갔다.

내 이혼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어느쪽이 나인가... 어느쪽이 그녀인가... ㅎㅎㅎ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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