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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농낭 Nov 29. 2024

삶, 그 자체로서의 여정


우리의 인생은 무엇일까, 삶은 무엇일까


삶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의 삶을 정의해 줄 수 있을까?

누군가가 나타나서 너의 삶은 이러해야 하니 이러이러하게 살아라고 다 가르쳐줄 수 있을까?

아쉽게도 우리의 인생의 여정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태어난 것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고 그저 우리는 무의미가 가득한 세상에 내던져진 것 (투기)이라고 샤르트르는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럼에도 질문은 우리에게 남는다. 삶은 과연 무엇일까

먼저 삶의 속성들을 살펴보자, 먼저 삶은 유한하다. 그리고 삶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다 유한하다. 

삶을 살아가는 주체자인 우리도, 삶을 살아가는 이 공간도 유한하다. 


삶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태어나는 모든 것은, 삶을 살아가는 모든 것은 반드시 끝을 마주한다. 이 땅에서 삶을 걷고 있는 모든 존재 중 죽음이라는 도착지를 반드시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삶은 살아가고 있는 이 공간 또한 유한하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다. 우리는 옆에 항상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라고 쉽게 착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모든 자원들은 (미네랄, 산소, 태양빛, 바닷바람 등 ) 모두 언젠가는 없어지거나 고갈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체자들인 우리들은 유한하다. 먼저 우리의 육체가 유한하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과거보다 긴 수명을 향유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150년을 넘게 살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같은 땅 밑에서 누워있을 것이다. 아무리 건강하고 찬란하게 살아도 말이다. 


다음으로는 우리의 정신이 유한하다. 우리는 남을 한없이 용인해 줄 수 없다. 우리는 남들보다 내가 조금 더 가진 것으로 인해 우쭐해지기도 하고 남들보다 조금 더 못 가져서 열등감에 빠진다. 빠르면 80년 아무리 늦어도 150년 뒤면 다 같은 땅 밑에 묻어 있을 건데 이렇게 바보같이 우쭐해지는 것도 웃긴 일이다.  


옅은 간 우리는 남을 사랑하는 것도 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해서가 아닌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내게 기쁨이 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타인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나에게 기쁨이 되냐가 기준이다. 우리는 타자가 우리에게 기쁨이 되지 않는 순간 그 타자를 모질게 내던져버린다. 이것은 역사 속에서 수도 없이 증명된 진리 중 하나이다. 


결국 삶의 본질 중 하나는 유한함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본질이 유한하다고 내 삶의 여정의 속성마저 유한한 것은 아니다. 


삶은 그 자체의 여정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그 이유 중 3가지만 내 개인적 생각을 말해보고자 한다.  

그 이유 중 첫 번째로 우리는 유한하기에 기억하려고 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고 한다. 


무한을 살아가는 천사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다고 말할 수 없다. 천사에게는 시간은 무한하며 이 순간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 이 순간만을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매 순간순간이 값지고 소중하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순간들이기에 이 시간을 온전히 사랑하고 향유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이유 중 두 번째로 삶의 방향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삶이 유한하다고 해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한 선택지까지 유한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결혼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도, 고독에 빠질 수도, 비관하며 살 수도, 깊이 감사하며 살수도, 커피향기와 카페모카를 사랑할 수도, 일평생 커피 한 모금도 안 마실수도(어떻게 그럴 수가), 애주가가 될 수도, 술을 혐오하게 될 수도(어떻게 이럴 수가), 직업을 가질 수도, 예술가로 살 수도, 인류문화가 위대하게 쌓아 올린 흔적을 압축해 놓은 작품인 예술과 책을 자주 향유할 수도, 아니면 평생 그런 것들과 거리를 두며 살 수 도 있다. 


이처럼 삶의 방향성은 무한하다. 그리고 삶의 방향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는 각 개인의 몫이다. 그리고 각자의 선택에 따라 삶의 변화한다. 모두가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가치를 택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기에 완전히 같은 양태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한 도덕과 양심을 지킨 인생이었다면 각 인생은 그 자체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삶의 흔적이자 데이터이다. 


이유 중 마지막으로 삶은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기로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삶은 그저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가 존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존재 자체는 매우 경이롭다. 


우리는 숨을 쉬고, 카페모카를 마시고, 다채로운 것들을 감각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마주한다. 존재히지 않았다면 결코 겪을 수 없던 것들이다. 물론 존재함으로 인해서 겪어야 하는 고통과 괴로움들도 실존한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삶을 살아가고,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겪을 수 없었던 수많은 것들을 향유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가지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수십 년, 수백 년 뒤에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잊힌다 한들, 나의 존재라는 경이, 나의 존재가 지금 여기서 살아있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하는 것들을 향유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여전히 아름답기에, 그저 주어진 삶을 찬란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우리 안에 충분히 내재되어 있기에 


삶은, 그 여정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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