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짬을 내서 <K-MOOC>(이하 '케이무크')에서 평소 관심이 있었던 문화예술경영 강의를 수강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GSEEK>(이하 '지식')에서 워드프로세서 수업을 수강했습니다. 이 둘은 같은 MOOC 시스템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MOOC란 'Massive Open Online Courses'의 약자로 문자 그대로 대규모의 무료 온라인 강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개방된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2010년즈음이었던 거 같습니다. 당시 외국에서 논란이 되던 MOOC라는 개념이 국내에 들어와서 인터넷 상에서 꽤 화제가 되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정상급의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사이트 목록' 등의 이름으로 SNS서비스 상에서 많이 퍼졌었습니다. 2012년도에는 <뉴욕타임즈>에서 MOOC의 해로 선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대학 중에서는 숙명여대가 가장 발빠르게 MOOC 서비스를 받아들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15년에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K-MOOC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GSEEK은 그보다 늦은 2016년도에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경기도에서 제공하는 MOOC 서비스의 이름은 G-MOOC로 알려졌지만 GSEEK이라는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어 서비스가 개시되었습니다.
두 가지의 MOOC 서비스는 꽤 많은 차이를 갖습니다. 먼저 '케이무크'는 국내 대학들이 참여하여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따라서 제공하는 콘텐츠의 상당수가 대학교에서 실제 가르치는 정도의 학술적 내용을 지향합니다.
또한, 커리큘럼의 구조 역시 대학교의 그것과 일치합니다. 과목 하나당 15주 정도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포함된 대학교 1학기 강의와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수업에는 담당 교수 외에 TA가 배정되어 있습니다. 제가 수강하고 있는 과목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한 차시에 1시간 정도의 수업이 배정되어 있으며 주제에 맞게 3파트로 나누어서 구분됩니다. 강의에는 자막이 제공되는데 자막은 한글과 영어 중에서 선택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는 퀴즈를 풀어야 하는데 퀴즈와 중간고사, 기말고사의 성적이 60% 이상이 되어야 이수증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평소 관심있는 분야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점과 강의의 퀄리티에서는 만족합니다. 반면 실제 수강할 수 있는 과목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진행중인 강의를 종료된 후에는 청강 가능한 과목을 제외하고는 수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시로 들어가서 강의 예정인 과목이 뭐가 있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TA가 왜 있는지 가끔 의문이 듭니다. 다른 강의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듣고 있는 과목에서는 학생관리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건 아마도 대규모의 학생을 받을 수밖에 없는 MOOC 시스템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지식'입니다.'지식'은 인재개발원, 여성능력개발센터, 경기평생교육진흥원에서 기존에 제공하던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합쳐서 경기평생교육진흥원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MOOC와는 다르게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강의가 아니라 평생교육 차원에서 여러 종류의 강의를 제공합니다. 자격증, IT, 취창업, 취미생활까지 말그대로 전반야에 걸친 강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부싸움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강의까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진짜 별별 강의가 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강의의 퀄리티는 사설 교육기관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교육 콘텐츠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강의 시간은 강의마다 다릅니다. 제가 수강한 강의를 기준으로 말씀드리자면 사설 교육기관에서 제공하는 인강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극대화한 플랫폼입니다. 무료라는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종류의 강의, 시간에 상관없이 수강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장점입니다. 하지만 단방향의 교육 구조와 수료증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성은 지식의수료증의 효력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지식에는 수강자가 해당 과목의 강의를 열심히 수강했다는 사실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적 장치가 전혀 없습니다. 단지 해당 코스의 60%의 강의를 수강만하면 자동으로 수료증이 발급됩니다. 저는 이게 정말 황당했는데 60%가 넘어가면 바로 수강중이던 과목이 수강완료한 과목이 됩니다. 심지어 해당 강의의 재생버튼을 누르지도 않고, 밑에 있는 '학습을 완료합니다'라는 버튼을 누르기만해도 수강완료 판정이 납니다. 즉,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도 80시간짜리 강의든 100시간짜리 강의든 과목 하나의 이수증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수증에는 날짜가 적혀있지만 이미 강의시간이 의미가 없습니다. 직장인 분들 중에서 승진 등의 이유로 자기계발 증명을 위한 이수증이 필요하신 분들이 악용하기 딱 좋은 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는 사교육에 미친나라입니다. 심지어 연애까지 가르치는 학원이 있다는 점에서 사교육이 얼마나 극심한지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교육은 필연적으로 엄청난 교육비 지출을 요구합니다. 어렸을 때는 이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물가가 오르고, 사교육의 필요성이 암묵적으로 두드러지면서 사교육비가 점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치솟는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된 내일배움카드 등의 국비지원 사업이 생기면서 학원과 수강자 모두 부담이 없어졌는지 현재는 1달에 50만원이 넘는 학원들도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해당 과목을 수강합니다. 이러한 미쳐버린 사교육 열풍에 MOOC는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케이무크와 지식은 가뭄의 단비처럼 감사한 플랫폼이지만 두 플랫폼 모두 일말의 아쉬움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케이무크가 운영상의 안타까운 점을 가지고 있다면 지식은 시스템 자체에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서 심각합니다. 수험생들이 서울대를 위시한 수도권 대학에 목을 매는 이유는 대학교 졸업장이 졸업생에 대한 교육 수준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졸업장의 역할은 해당 학교의 신용과 평판으로 졸업생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식은 시스템 자체가 이미 수료증에 대한 신용이 0으로 수렴하게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당신이 인사담당자라고 가정을 해봅시다. 지식에는 IT, 직무역량 관련 과목 등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과목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과목을 수강했다는 내용을 이력서에 적어서 증빙자료로 수료증을 지원자가 제출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80시간짜리 과목이든 100시간짜리 과목이든 수업하나 제대로 듣지 않고 수료증을 받을 수 있는 교육기관에서 발급한 수료증을 인정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라면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수증에 대한 신용이 없으므로 지원자가 해당 능력에 대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식의 수료증은 어디에 써야 할까요? 굉장히 넓은 분야에 많은 강의를 가지고 있지만 수료증을 받아봐야 어떻게 쓸지 알 수없는 공공서비스라니 아이러니합니다. 게다가 수료증에는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장의 직인이 찍혀서 나옵니다.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장이 이 수료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역량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지금의 시스템이라면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장이 가지고 있는 신용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사소한 문제일수도 있지만 이런 사소한 문제에서 공공 서비스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만 해도 지식을 이제는 사용하지 않고 K-MOOC를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아마 이런 부분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용도에 상관없이 K-MOOC를 사용하거나 K-MOOC에 없는 강의는 사설 교육기관을 이용할 듯 싶습니다. 그리고 경기도에 세금을 내는 사람 중 일인으로서 조금 불쾌하게 여기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