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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Sep 17. 2019

현대 판타지 소설 속 <인간, 탑, 신>

저는 최근 카카오페이지, 시리즈, 밀리의 서재 등 웹으로 제공해주는 출판 플랫폼과 그로 인한 출판계의 변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나름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다만, 오늘은 이러한 출판 시장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웹소설 속에서 신의 위상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흔히 양판소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양산형 판타지 소설이라는 말의 준말입니다. 일종의 비하발언이지만 '양산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슷한 구성이나 내용이 많다는 반증입니다. 이처럼 판타지 소설 장르 자체가 작품 간 혹은 작가들 간에 유사성이 많기 때문에 일종의 경향성을 가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경향성을 잘 파악하면 트렌드 및 독자의 니즈 파악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말하고자 하는 것은 탑과 신이라는 소재입니다. 최근 탑이라는 소재는 판타지 소설에 많이 나타납니다. 이 경향에 속하는 소설들의 내용은 대부분 주인공이 탑에 들어가서 탑을 오르면서 신적 존재로 거듭난다는 플롯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탑을 오른다는 구조는 생각외로 많이 쓰여 왔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네이버에서 연재되는 <신의 탑>과 <드래곤볼>의 카린탑이 있습니다. 이 두 작품 역시 탑은 성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판타지소설 속 경향은 탑이 신과 관련되어 있으며, 주인공이 최종적으로는 탑 꼭대기에 있는 신의 대적자이며, 탑 자체를 적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신의 탑>의 경우에는 <드래곤볼>보다 이 경향에 더 가깝습니다. 이는 시대적으로 동시대에 연재되고 있고, 최근의 판타지소설들이 <신의 탑>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일련의 판타지 소설들은 오히려 '바벨탑' 신화의 후계처럼 보입니다.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낱말도 같았다. 사람들은 동쪽으로 옮아 오다가 시날 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 자리를 잡고는 의논하였다. "어서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내자." 이리하여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야훼께서 땅에 내려 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 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두었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 놓아 사람들을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 창세기 11장 1-9절 (공동번역) 출처 : 위키백과


인간이 하늘에 닿는다는 오만의 결과로써 사람들의 언어가 나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즉, 이 신화에서 인간은 탑을 쌓는다는 행위로 초월을 목표로 하고 있고, 신은 탑이 닿고자 하는 하늘에서 징벌자로서 존재합니다. 이 구도가 현대 판타지 소설로 내려오면 바뀌게 됩니다. 

주인공은 본인의 목적을 위해 탑을 올라갑니다. 이 과정에서 초월성, 신격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신은 탑 안, 꼭대기층 혹은 꼭대기 바로 아래층에 존재합니다. 그들은 신이고 초월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탑 속에 있으며 탑의 규율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주인공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신들은 전체 혹은 일부가 주인공을 적대합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신의 위상입니다. 바벨탑 신화에서는 신은 탑이 목표로 하고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판타지 소설에서 신은 탑 안에 존재합니다. 탑이 초월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라는 점은 둘 다 동일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탑을 올라 신들이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된다는 신들과 같은 초월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신과 주인공 모두 탑의 규정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판타지 소설 속에서 이 규정을 '시스템', 혹은 '인과율'등으로 표현합니다. 많은 판타지 소설이 쓰는 용어는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은 게임의 규칙과 인터페이스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 '시스템'은 단순한 인터페이스나 규정만이 아니라 '시스템' 내부에서 '시스템'에 속해 있는 존재들의 서포터 혹은 업그레이더의 역할도 합니다. '시스템'은 주인공의 행동에서 많은 부분을 퀘스트로 처리하여 보상을 뿌립니다. 이렇게 주인공은 '시스템' 내부에서 성장합니다.


신의 위상 변화는 이야기 내 신의 거처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이야기 밖 작가들의 머릿속에서도 신의 위상은 바빌론 신화 때의 절대적 위치가 아닙니다. 이와 같은 계열의 현대 판타지 소설 속 신들은 개념적 성격의 유일신이 아니라 인격을 가지고 있는 다신으로 그려집니다. 다른 여러나라의 신들을 바탕으로 쓰든 작가 개인이 신의 개성을 구체화하여 창조해서 쓰든 동일합니다. 인격신은 대상에 대한 호오, 분노, 슬픔, 기쁨 등 인간적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다 인간에 가까워집니다. 신이 인간과 가까워진다는 말은 신의 위상이 인간의 위상과 가까워진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로마 신들은 인간임에도 신과 인간의 구분이 명확했고 이 구분을 넘으려는 행위를 '휘브리스'라고 칭하며 재앙의 씨앗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즉, 고대에 신은 인격신이고 다신이라도 신의 위상은 절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판타지 소설 속에서는 다릅니다. 현대 판타지 소설의 서사구조 자체가 일종의 '휘브리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의 판타지 소설을 쓰는 작가들 머릿속에서는 '휘브리스'가 용인된다는 말이므로 그들의 머릿속에서 신의 위상은 신화속 위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을 조금 다르게 바꿔보면 판타지 소설 속 신과 인간의 위상이 가까워졌다는 말은 인간의 위상이 상승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판타지 소설 속 '인간'인 주인공이 신격을 얻어서 '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고대와 달리 현대인들이 인본주의와 실존주의, 합리주의 등을 거쳐서 인간 혹은 본인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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