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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Dec 04. 2019

마초는 전쟁터에서도 아프지 않았다.

*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영화를 꽤 보고 있는데도 글을 쓰고 싶은 영화가 없어서 한동안 쓰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아메리칸 스나이퍼>라는 영화를 보고 생각나는 바가 있어서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스나이퍼 영화를 추천 받을 때 두 가지의 영화는 꼭 추천 받게 됩니다. 하나는 <에너미 앳 더 게이트>고 다른 하나는 <아메리칸 스나이퍼>입니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는 몇년전에 재밌게 봤었습니다. 손에 땀을 쥐게하는 스나이퍼 간의 결투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먹먹한 영화입니다.

슬로건이 담긴 포스터입니다. 하지만 이 슬로건은 그저 표상만을 보여줄 뿐 실제 이 영화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사진 출처 : 다음영화

'적은 그를 악마라 부르고, 우린 그를 영웅이라 부른다'라는 슬로건을 보면 마치 흔한 액션 영화나 히어로 영화를 생각하시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그저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말일 뿐입니다. 우리 나라 배급사들은 영화를 보지 않고 카피를 뽑아내는지 이딴 자극적이기만 한 말로 관객을 유인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주인공 '크리스 카일'은 자국 동료들로부터 영웅이라고 불렸으며, 미군 역사상 가장 많은 적을 사살한 스나이퍼입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겉으로 보이는 점일 뿐,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세계 최강의 군대, 최고의 스나이퍼라는 빛나는 이름에 가리워진 한 명의 병사의 민낯입니다.



영화는 크리스 카일의 어린 시절부터 보여줍니다. 어린 아이들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보이기만 싸움이지, 한 아이가 다른 한 아이를 일방적으로 때립니다. 이때 인파를 뚫고 한 아이가 난입하여 때리는 아이를 두들겨 패서 구해냅니다. 장면이 바뀌고 구한 아이와 구함 받은 아이가 한 테이블에 앉아서 가족끼리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구한 아이가 크리스 카일이고 구함 받은 아이가 동생입니다. 그들의 아버지가 크리스 카일에게 동생을 괴롭히는 놈이 있으면 끝장을 내놓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끝장을 내놨냐고 묻습니다. 어린 크리스 카일은 그렇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그에게 잘했다고 합니다. 장면이 바뀌고 그의 아버지가 크리스 카일에게 사냥을 가르칩니다. 

크리스 카일은 장성해서 온몸에 근육이 터질듯한 카우보이가 됩니다. 로데오 경기에 나가서 우승을 하고 상으로 받은 벨트 버클로 여자를 꼬시려는 상마초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사라가 좋아할 거라고 동생에게 말합니다. 돌아와보니 크리스 카일의 여자친구인 사라는 모르는 남자랑 뒹굴고 있습니다. 열받은 크리스 카일은 그 남자를 패려합니다. 사라는 때리지 말라면서 설명하려하지만 크리스 카일은 기어코 남자를 패고 쫒아냅니다. 사라는 크리스 카일에 대해서 뭐라뭐라 말하지만 역시나 크리스 카일에게 쫒겨납니다. 

사라가 쫒겨나면서 한 말은 크리스 카일로 하여금 카우보이를 포기하게 합니다. 다음날 흔들리는 크리스 카일은 미국에 대한 폭탄 테러 뉴스를 보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인이 되기로 합니다. 네이비실에 배정된 카일은 본인보다 열살씩 어린 훈련병들과 함께 훈련을 받습니다. 훈련을 받는 와중에도 크리스 카일은 적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로 그의 공격성을 보여줍니다. 사격 훈련 중 본인은 살아 있는 걸 더 잘쏜다는 말까지 포함하여 일련의 이런 흐름은 마초적인 그의 아버지 밑에서 크리스 카일이 얼마나 마초적으로 자랐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훈련이 끝난 크리스 카일은 주점에서 타야를 만납니다. 타야가 마음에 든 크리스 카일은 그녀에게 접근합니다. 하지만 타야는 크리스 카일이 네이비실인 것을 알고 네이비실은 싫다고 말합니다. 크리스 카일은 그 말에 돌아섭니다. 크리스 카일 이전에 타야에게 접근한 남자는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서 결혼반지까지 벗어두었습니다. 이 남자와의 비교에서 크리스 카일에게 네이비실의 의미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단 한번도 네이비실의 일원으로서 전장에 나가보지 못했지만, 크리스 카일에게 네이비실은 여자나 성욕보다 앞서며, 단 한순간도 부정할 수 없는 긍지 높은 이름입니다.


크리스 카일은 타야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혼식 날 크리스 카일과 네이비실의 파병일이 결정됩니다. 결혼하고 일주일도 안 되어서 크리스카일은 중동으로 파병을 갑니다. 그리고 첫 임무를 맡습니다. 스나이퍼로서 해병대들을 호위하는 임무였습니다. 크리스 카일이 전쟁터에서 처음으로 죽인 적은 대전차 수류탄을 들고 접근하는 열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와 그 아이에게 수류탄을 건네준 그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크리스 카일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상황에 충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크리스 카일은 계속해서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쏩니다. 어렸을 때부터 특출했던 크리스 카일은 다른 스나이퍼들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전공을 올리며 '레전드'라 불립니다. 다른 동료들은 레전드가 위에서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사실에 든든해합니다.

첫 전투에서 미군을 공격하는 모자를 사살한 크리스 카일은 충격을 받습니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전투의 나날 속에서 동생도 이라크에 파병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와중에도 크리스 카일은 손에 총을 쥐고 있었습니다. 협력자를 구하는 작전은 실패했고, 크리스 카일은 3주 뒤 귀국합니다. 귀국한 크리스 카일을 보면서 타야는 불안해합니다. 임신한 크리스 카일을 따라간 산부인과에서 크리스 카일의 혈압이 170에 110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크리스 카일은 극도의 흥분상태 혹은 극강의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말입니다. 전쟁이 없는 미국인데 크리스 카일은 전쟁터보다 더 큰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돌아가는 차에서 크리스 카일은 전우들이 죽어 가는 데 여기 사람들은 편하게 살아가며, 쇼핑센터에 가고 있지만 본인이 진짜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네이비실의 레전드는 단 한번의 파병만으로 전쟁이라는 괴물에 사로잡힌 포로가 되었습니다. 타야는 그 순간 진통을 했고, 곧 출산을 하지만 크리스 카일은 우는 아이를 옆에 두고 이라크에 있는 본인의 숙적인 무스타파란 스나이퍼의 영상을 봅니다.


2차 파병을 갑니다. 헬기를 타러 가는 길에 파병에서 돌아오는 동생을 만납니다. 동생은 형을 자랑스러워하지만 크리스 카일과는 다르게 이라크를 지옥이라고 말하면서 집에 가고 싶어합니다. 전쟁터를 지옥처럼 생각하는 동생과 엇갈려 크리스 카일은 중사로 진급하고 전쟁터로 다시 향합니다. 크리스 카일에게는 이제 현상금도 걸려 있습니다. 크리스 카일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1차 파병때 협력자를 죽였던 간부를 잡기 위해서 간부가 있을 거라 생각되는 식당 맞은편의 아파트에 잠복합니다. 집주인은 이슬람의 큰 명절이라며 미군들에게 저녁을 대접합니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술도 먹고 즐깁니다. 그러던 중 크리스 카일은 그 집에서 대량의 무기를 발견합니다. 그 순간 즐거운 식사자리는 협박의 장이 됩니다. 강제로 협력하게 된 집 주인은 식당에 잠입할 수 있는 미끼 역이 됩니다. 결국 간부는 사살됩니다. 미끼가 되었던 집 주인도 과정에서 피살됩니다. 미군과 대화하는 사람에 대한 본보기로 협력자를 죽인 간부를 사살하기 위해서 군인이 아닌 사람을 협박하여 죽게 만들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다시 귀국한 크리스 카일은 딸과 함께 간 가게에서 참전 군인을 만납니다. 그는 해병이었고, 크리스 카일에게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전쟁에서 다리를 잃었지만 크리스 카일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크리스 카일은 그에게서 전쟁에서 돌아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다른 동료들의 이야기를 처음 접하게 됩니다. 


다시 3차 파병을 갑니다. 네이비실 동료가 크리스 카일에게 약혼녀에게 줄 다이아 반지를 샀다며 자랑을 합니다. 그리고 본인의 결혼식에 들러리를 부탁합니다. 그때 총격을 받습니다. 해병대의 도움을 받아 피격된 동료를 후송합니다. 네이비실 동료가 처음 피격된 상황에서 크리스 카일과 동료들은 흥분해서 복수를 다짐합니다. 1,000m 이상 거리에서 저격한 걸로 보아서 상대는 크리스 카일의 숙적 무스타파입니다. 흥분한 네이비실 대원들은 복수를 위해 다시 쳐들어가지만 오히려 다른 동료가 무스타파에게 사살됩니다.

아군에게 레전드라 불리고 수호신 취급을 받지만 사실 정작 크리스 카일 본인은 동료의 죽음 앞에서 무력감에 괴로워하며 스스로 채찍질할 뿐입니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장례식에서 추도사가 울려퍼집니다. 추도사는 죽은 동료가 죽기 전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 편지에는 전쟁에 대한 의문과 두려움이 담겨 있습니다. 타야는 크리스 카일에게 편지에 대한 생각을 묻지만 크리스 카일은 저 편지가 동료를 죽였다고 말합니다. 복수심으로 인해 덫에 결렸지만 그 이전에 싸울 의지를 잃어서 당한거라고 합니다.

크리스 카일은 피격되어 병원에 실려간 동료를 문병하러 갑니다. 동료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의 연인은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동료는 오히려 크리스 카일이 아니라 본인이 피격된 것을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크리스 카일이 미군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스나이퍼라며 자랑스러워합니다. 크리스 카일은 동료에게 복수를 다짐합니다.

크리스 카일은 다시 파병을 준비합니다. 타야는 크리스 카일을 말리지만 크리스 카일은 본인이 가지 않으면 죄책감으로 버티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타야에게 크리스 카일은 더 이상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크리스 카일은 애원하는 타야를 두고 다시 파병을 갑니다.


4차 파병에는 많은 네이비실 동료들이 빠졌습니다. 누군가는 전역했고, 누군가는 와이프가 임신을 했습니다. 와이프에 등쌀에 파병을 포기한 동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 카일은 결혼 후 사흘만에 1차 파병을 갔고, 파병 당시 와이프는 만삭이었으며, 3차 파병 때는 둘째까지 낳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애원하며 막아서는 와이프를 두고 파병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병 전날 병원에서 수술을 받던 동료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시 돌아 온 전쟁터는 1,000m거리에서 저격해대는 무스타파로 인해 아군들이 차례차례 사살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작전에 투입된 크리스 카일은 1,900m전방에서 아군을 조준하는 무스타파를 발견합니다. 대응팀을 요청하지만 20분쯤 걸린다는 대답을 받습니다. 쏘면 그 순간 위치가 탄로나고 대응팀이 오기까지는 20분이 걸리는데 적 스나이퍼는 아군을 조준하고 있습니다. 크리스 카일은 본인의 판단으로 무스타파를 저격하고 사살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위치가 발각되어 위기에 처합니다. 

포로가 될 위기에 처한 크리스 카일 일행은 본인들의 위치에 포격을 요청합니다. 포격을 기다리며 크리스 카일은 타야에게 전화를 합니다. 이제는 집에 가고 싶다는 크리스 카일의 절규는 이전까지 보여줬던 마초적인 크리스 카일의 모습과 비교됩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크리스 카일은 그때서야 마초성을 벗고 전쟁에 괴로워하는 본인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막의 모래 폭풍으로 인해 포격은 실패하고, 모래 폭풍을 틈타 크리스 카일 일행은 탈출에 성공합니다. 

크리스 카일은 분명 가장 치명적인 스나이퍼이지만 그건 크리스 카일이 조준경 너머에 있기 때문입니다. 위치를 들킨 크리스 카일은 일개 네이비실 병사입니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귀국한 크리스 카일은 집에 가지 않습니다. 술집에서 혼자 앉아 생각에 잠깁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뭔가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바비큐 파티날 크리스 카일은 아이를 위협하는 개에게 과민반응을 보이며 개를 죽이기 직전까지 갑니다. 

이 일로 크리스 카일은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됩니다. 크리스 카일은 본인의 현재 상태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될 지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전쟁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을 저격했음에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단지 전우들을 죽이려 하는 적을 제거했을 뿐이며,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전우들을 다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 뿐이라고 말합니다. 전역했기에 미국에 있는 것일  뿐, 더 많은 전우들을 구했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꺼진 텔레비젼을 앞에 두고 전쟁터를 떠올리며, 그저 안전한 곳에서 평온한 일상을 보낸다는 이유만으로 혈압이 치솟을만큼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우는 아이를 앞에 두고 전쟁 영상을 보고,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헤프닝에 제어가 안 될 정도로 공격적인 반응을 보여서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어째서 크리스 카일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요? 제 생각에 크리스 카일을 마초로 키운 그의 아버지의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 카일은 단지 그의 아버지가 가르친 사격으로 그의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그의 형제를 괴롭히는 놈들을 끝장냈을 뿐입니다. 그 증거로 크리스 카일은 피격을 당해 병상에 누워있는 동료에게 그는 자신의 형제이며, 자신의 형제를 그렇게 만든 놈을 끝장내줄 거라고 말합니다. 크리스 카일은 결국 그의 아버지의 교육과 본인의 마초성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따라서 본인이 PTSD를 겪고 있다는 사실에서 눈을 돌립니다. 하지만 스크린 밖에서 보면 그는 전쟁이라는 괴물에 먹혀버려서 괴로워하는 한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이 병원에도 구해줘야 할 군인들이 많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후 크리스 카일은 PTSD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됩니다. 사실 의사가 한 일은 전쟁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크리스 카일에게 다른 전쟁터를 제공해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크리스 카일에게 있어서 전쟁이란 전우를 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 크리스 카일은 군인이 아니라 카우보이로 돌아옵니다. 타야의 입을 빌어 이때의 크리스 카일이 얼마나 좋은 남편이고 좋은 아버지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는 여전히 PTSD로 괴로워하는 군인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 카일은 아이들과 돌아와서 비디오게임을 하자는 약속을 하고 나갑니다. 그리고 그날 크리스 카일이 됩기로 했던 PTSD를 겪는 참전군인의 손에 살해당합니다. 

영화에서 그의 죽음은 한 줄의 자막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관객은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요? 크리스 카일은 무스타파의 손에 죽은 동료 군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동료 군인이 싸울 의지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크리스 카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크리스 카일이 더이상 군인으로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카우보이로서 전쟁터에서 벗어나려 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의 아버지 손에 마초로 키워졌던 카우보이는, 동료들에게 레전드라 불렸지만 그 레전드의 칭호조차 괴로워했던 전쟁 영웅은, 지키지 못한 동료에 아파하고 전쟁터를 헤매던 한 명의 군인은 결국 그 전쟁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전쟁이라는 괴물은 그를 붙잡은 채 놓아주지 않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글을 쓰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답지 않게 내용까지 주저리주저리 쓰게 된 것도 사실 이런 부담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마치면서 보다 명확하게 말하고자 합니다. 제가 쓴 이 글은 크리스 카일이라는 실존인물에 관한 글이 아닙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라는 영화와 그 주인공인 크리스 카일이라는 캐릭터에 관한 글입니다. 실존인물인 크리스 카일을 저는 만나본 적도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어떤 단언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를 바탕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만든 <아메리칸 스나이퍼>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크리스 카일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라면 영화를 근거로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본 <아메리칸 스나이퍼>라는 영화 속에 있는 크리스 카일이라는 캐릭터는 더할 나위 없는 마초적인 사람입니다. 그의 마초성은 전쟁터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집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초성 때문에 크나큰 상처를 입어도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인물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인물들을 주변에서 가끔 발견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들었던 형제를 괴롭히는 사람은 끝장을 내줘야 한다는 말이 크리스 카일의 인생을 쥐고 흔들었듯이, 그들도 어린 시절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저희가 어린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씁쓸함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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