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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Aug 13. 2021

미운 오리 엄마

 어느 시골 농장에 한 암컷 오리가 살고 있었다. 그 암컷 오리는 농장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강 위의 백조들을 보며 하루를 보내고는 했다. 커다란 몸집, 우아하게 늘어뜨린 긴 목, 부리 끝만 검게 물든 도도함까지 암컷 오리에게 백조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시간은 흘러 암컷 오리는 남편도 만나고 알도 낳았지만 여전히 그 눈길은 울타리 밖 백조들을 향했다.

 알을 품으며 백조들을 바라보던 어느 날 무리들과 떨어져서 알을 품고 있는 백조 한 마리를 보았다. 그 하얗고 긴 목을 늘어뜨린채 우아하게 알을 품고 있는 백조를 보면서 문뜩 본인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기품있는 흰색의 큰 몸집과 우아한 몸짓에 본인의 짜리몽땅한 몸뚱이가 비교되며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자괴감을 느꼈다. 

 ‘아, 어쩌면 똑같이 알을 품고 있는데, 저 백조와 나는 이렇게 다를까? 내가 품고 있는 알에서 태어날 아이와 저 백조가 품고 있는 알에서 태어난 아이는 나와 저 백조만큼이나 다르게 살아가겠지?’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암컷 오리는 그 백조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울타리 너머로 날아올라 알을 하나 훔쳐서 돌아왔다. 맹세컨대 암컷 오리는 날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농장 울타리 너머로 날아본 적이 없었다. 질투와 선망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을 담고 날아올라 백조의 알을 훔친 암컷 오리는 자신의 알보다 눈에 띄게 큰 백조의 알을 쓰다듬었다. 이후 암컷 오리는 더 이상 울타리 너머 백조들을 훔쳐보지 않았다.

암컷 오리는 자신의 알과 함께 백조의 알을 품었다. 시간은 다시 흘렀고, 암컷 오리가 품었던 알들이 하나씩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암컷 오리가 낳은 알들이 모두 껍질을 깨고 세상으로 나왔지만 백조의 알은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암컷 오리는 아직도 깨지 않은 알을 소중히 품었다. 한 나이 든 오리가 찾아와 암컷 오리에게 말했다. 

 “아직 새끼가 나오지 않았다는 그 알 좀 봅시다. 이런, 칠면조 알이네. 나도 예전에 속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얼마나 고생을 했다고요. 그 애들이 물을 무서워해서 아무리 뭐라 해도 물에 들어갈 생각을 않더라고요. 그 알은 확실히 칠면조 알이에요. 그 알은 내버려두고 태어난 애들한테 신경쓰세요.”

 암컷 오리는 속으로 나이 든 오리를 비웃었다. 

 ‘이 알은 백조의 알이야. 칠면조 따위의 알이 아니라고. 이 알에서는 당신이 이제까지 낳은 그 어떤 알보다 아름다운 아이가 태어날 거야. 사랑스런 내 아이지. 아이야. 빨리 나오렴.’

 암컷 오리는 속내를 감춘채 적당한 말로 나이 든 오리에게 대꾸하고는 백조알을 꼭 끌어안아 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백조알에서도 새끼 백조가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 큰 알에서 나온 아이는 백조의 새끼답게 컸지만 백조의 새끼답지 않게 우중충한 회색 깃털을 품은 못생긴 아이였다. 암컷 오리는 그 아이를 보고 생각했다.

 ‘백조의 새끼인데 어째서 이렇게 못생겼을까? 깃털 색은 왜 하얗지 않지? 혹시 정말 백조가 아니라 칠면조 새끼인걸까? 백조의 새끼인지 물에 빠뜨려 알아봐야겠어.’

 다음날 암컷 오리는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을 데리고 호수로 갔다. 아기새들은 어미새를 줄줄이 따르며 태양빛이 부서지는 우엉 잎 아래를 걸어갔다. 저 끝에서 큰 몸집을 한 회색 새끼 백조가 덩치값도 못하고 우물쭈물 쫒아오는 모습이 암컷 오리에게는 굉장히 못미더워보였다. 호수에 도착하자 암컷 오리는 솔선하여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기새들은 어미새의 뒤를 따라 호수 속으로 뛰어들었다. 새끼 백조는 다른 형제들처럼 곧잘 헤엄치며 호수 위를 기분이 좋은 듯 떠돌았다. 

 ‘역시 칠면조의 새끼가 아니었어. 저 아이는 백조가 틀림없어. 그리고 내 아들이지. 내가 잘 키울거야. 그리고 저 아이는 커서 그 누구보다 크고 아름다운 백조가 될 거야. 내가 그렇게 키우고 말거야.’

 하지만 새끼 백조는 농장의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새끼 오리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크고 못생긴 여린 아기새에게 농장내 동물들은 폭언을 일삼았다. 못생겼다는 말부터 누가 잡아갔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새끼 백조에게 내뱉었다. 그럴때마다 암컷 오리는 새끼 백조를 두둔하였다.

 “이 아이는 아주 착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헤엄도 잘 쳐요. 단지 알 속에 오래 있었을 뿐이에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보다 더 크고 생김새가 조금 다를 뿐이에요. 게다가 이 아이는 수컷이니 조금 큰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에요. 틀림없어요. 이 아이는 대단한 아이가 될 거에요.”

 암컷 오리는 새끼 백조가 커서 아름다운 백조가 될 것을 알았기에 두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끼 백조를 향한 농장의 동물들의 폭언은 점점 심해지며 결국 폭력이 되었다. 주변의 어른 동물들이 불쌍한 새끼 백조를 부리로 쪼고, 발로 걷어차는 걸 보면서 새끼 백조의 형제자매들도 어른들을 따라서 새끼 백조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암컷 오리는 처음에는 새끼 백조를 보호하려 노력하였으나 제 자식들까지 새끼 백조를 괴롭히니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저 아이는 커서 크고 아름다운 백조가 될 테고 내가 배 아파서 낳은 아이들은 나 같은 오리가 될텐데 지금 좀 괴롬힘을 당한다고 해도 상관없는 거 아닐까? 오히려 내 아이들이 저 백조에게 나중에는 어떻게 큰 소리를 치겠어. 아니, 근데 저 아이가 백조가 맞긴 한걸까? 저 못생긴 아이가 커서 아름답고 하얀 백조가 될 수 있다는게 가능한 걸까?’

 한 번 떠오른 생각은 암컷 오리의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새끼 백조에 대한 의심이 커질수록 새끼 백조를 보호하는 손길이 점차 줄어들었다. 암컷 오리는 티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아이들은 그녀의 변화를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니, 아이들뿐만 아니라 농장의 동물들이 모두 그녀의 변화를 조금씩이라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자 새끼 백조를 둘러싼 새끼 오리들과 농장 동물들의 괴롭힘이 보다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새끼 백조는 어미의 관심과 사랑을 바라며 암컷 오리에게 매달렸다. 암컷 오리는 갈수록 새끼 백조의 매달림과 다른 동물들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에 지쳐갔다. 그래서 암컷 오리는 자신도 모르게 새끼 백조에게 지친 목소리로 말해버리고 말았다.

 “이럴거면 차라리 네가 멀리 가버렸으면 좋겠어.”

 새끼 백조는 마치 땅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언제나 단단할 것만 같았던 땅이 무너져서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새끼 백조에게는 날개가 있었기 때문에 새끼 백조는 자신의 두 날개로 날아 농장 울타리를 넘어갔다.

 새끼 백조가 농장을 떠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암컷 오리는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새끼 백조를 기다렸다. 식사 시간이 다가와도 새끼 백조는 나타나지 않았다. 암컷 오리는 오지 않는 새끼 백조를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농장 울타리 밖으로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시간은 변함없이 흘렀다. 새끼 백조 없이도 농장은 아무 일 없는 듯 했다. 새끼 백조가 없어져서 생긴 변화란 암컷 오리가 울타리 너머 백조들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 동안 강 위에서 노닐던 백조가 떠나기도 하고 새로운 백조가 내려앉기도 했다. 암컷 오리는 그저 하염없이 백조 무리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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