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로 받아들이면 다 보여

이관순의 손편지[30-21]

by 이관순

팔자로 받아들이면 다 보여

서당의 훈장이셨던 외할아버지는 생전에 마을의 좌장 어른이셨어요.

인품 좋고 식견이 높다고 해 마을에 일이 생기면 외할아버지를 찾아와

상의를 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사람들에게 “팔자로 받아들이면 다 보여"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그래서 팔자가 사람이 타고난 일평생의

운수 같은 것임을 일찍이 깨쳤습니다.


젊어선 팔자란 말이 싫었습니다. “팔자타령하지 마. 세상일 다 하기 나름,

팔자 같은 소리 하네.” 친구에게 핀잔도 주었어요. 비판만 했던 팔자(운명)라는 말.

나이가 들면서 외할아버지 말씀에 대한 해석이 윤색됩니다. 팔자를 배척하면

보이는 게 없지만, 순응하고 받아들이면 팔자 너머의 것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상팔자가 좋은 것만은 아니지요. 미국 애리조나주 ‘선 밸리’라는 작은 도시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이곳은 은퇴한 미국의 억만장자, 상팔자 부자들이

만든 낙원입니다. 입촌 자격이 까다로워 웬만한 팔자로는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면서 꽃과 나무와 새소리로 가득한 그들만의 이상향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선

안전을 위해 자동차는 시속 25km로 제한됩니다. 사람들이 싸우고 다투는 소음은

물론이고, 아무렇게 옷을 걸쳐 입거나 미풍양속을 해치는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거지나 노숙자도 없어요. 모든 게 사람들이 선망하는 최적 최고의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그러한 마을이 소란에 휩싸였습니다. 치매 발병률이 일반 도시보다 높다는 연구결과

때문이었어요. 공들여 만든 지상 낙원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모든 편의시설이 완벽하고, 최신 의료시설에 최고의 의사들이 배치돼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세 가지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놀랍습니다.


첫째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일상생활, 둘째 생활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것,

셋째 생활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환상이 깨지자 사람들이 하나 둘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얘기입니다.


너무나 편안한 삶이 독이 된 경우예요 ‘아픔 없이 성장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복된 삶은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사는 데만 있지 않아요. 어려움을 겪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부딪치며 그것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행복은 내가 걱정하며 사는 바로 내 일상에 있습니다.

‘죄와 벌’을 쓴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은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하다’ 고 했습니다. 뇌 속에 행복을 만드는 물질은 엔도르핀입니다.

엔도르핀은 과거의 행복한 추억 같은 것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지금이 즐겁고

기쁠 때 생겨나 행복감에 젖게 해 준답니다.


여기가 천국이면 앤돌핀이 팡팡 돌까요? 그렇지 않다고 해요. 선 벨리는

인간사회에 필히 공존해야 하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밸런스가 깨진 걸 몰랐어요.

분노나 슬픔은 쏙 빠진 희락(喜樂) 뿐이었습니다. 사회나 삶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아요. 물이 고이면 스스로 물길을 내듯, 삶도 자연입니다.


코로나 19로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안전을 지키려고 담을 쌓아요. 성벽은

그래서 전쟁 의식의 소산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에 집착해

만리장성이란 담을 쌓았어요. ‘담 안에서 편하게 산다’는 안도(安堵)라는 한자어가

여기서 나왔답니다. ‘지혜로운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담을 쌓는다’는

아프리카 속담도, 이웃과의 소통 단절을 경계하는 경구입니다.

나이 탓인지 요즘 까먹는 게 많아졌습니다. 알긴 아는데 입에서 빙빙 도는

‘설단 현상’이 늘어납니다. 또 고쳐야겠다고 하면서도 예전 행동을 하고 말버릇도

여전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이 들며 생기는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다는 것이고, 중요한 건 이를 인지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자신이 뭘 모르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늘 부족하고 채울 것이 많은 게 인생입니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집착하면 부작용을

부릅니다. 살면서 경험한 일들입니다. 이 나이가 되니 비로소 외할아버지가 입에

올리셨던 “팔자로 받아들이면 다 보여”가 진리처럼 들립니다.


팔자로 받아들임은 곧 긍정적인 자세입니다.

바다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듯이, 그러면서 바다는 바다다워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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