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0-22]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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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을 아는가 이것은 나락도 다 거두어 갈무리하고
고추도 말려서 장에 내고 참깨도 털고 겨우 한가해지기 시작하던 늦가을 어느 날
농사꾼 아우가 무심코 한 말이다 어디 버릴 것이 있겠는가
열매 살려내는 햇볕, 그걸 버린다는 말씀이 당치나 한가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은
끊임없이 무언가 자꾸 살려내고 싶다는 말이다 모든 게 쓸모가 있다 버릴 것이 없다
아 그러나 나는 버린다는 말씀을 비워낸다는 말씀을 겁도 없이 지껄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욕심을 버려야 보이지 않던 것이 비로소 보인다고 안개 걷힌다고
지껄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아니다 욕심도 쓸모가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마음으로 보면 쓸모가 있다
세상엔 지금 햇볕이 지천으로 놀고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뜻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아 사람아 젖어 있는 사람들아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라 햇볕에 말려
쓰거라 끊임없이 살려 내거라 햇볕이 스스로 제가 아깝다 아깝다 한다
산문시의 일가를 이룬 정진규 시인의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를 읽고 또
읽습니다. 입 안에 쌉쌀한 맛이 돕니다. 그리고 내다본 베란다 창밖으로 긴 장마에
짓무른 하늘이 파랗게 열리고 쏟아지는 투명한 햇살이 눈부십니다.
공기만큼 흔한 햇볕을 두고 ‘아깝다’는 표현을 거푸 한 저 시어(詩語)는?
인간의 게으름을 탓하는 것일까. 어리석음을 나무라는 것일까.
코로나 팬데믹을 놓고, 광복절 기념사를 놓고, 검찰총장을 둘러싼 싸움에 영일이
없는 여의도 사람들, 그 사람들은 햇볕에 관심조차 없을 겁니다.
물에 잠겼던 논밭을 건수 하랴, 무너진 집을 복구하랴, 가재도구 씻고
젖은 옷가지를 말리랴... 한 줌의 햇볕과 한 뺨의 시간이 아까운 때입니다.
장독도 열어놓고 이불도 널고 눅눅한 책들도 꺼내 포쇄 하는 데, 사람만 젖은
제 몸을 말릴 줄 몰라해요.
열매 살려내는 햇볕, 곰팡이를 말리는 햇볕, 그 귀한 것을 버리고 있다니
당치도 않다는 얘기입니다. 지천에 놀고 있는 것이 햇볕인데 아깝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시부렁대면서 살진 않느냐고 묻습니다.
경험한 사람만이 생명을 살리는 햇볕이 귀한 줄을 압니다. 시의 마지막
구절은 놀랍게도 죽비처럼 어깨를 때립니다.
“사람아 사람아 젖어 있는 사람들아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라 햇볕에
말려 쓰거라 끊임없이 살려 내거라 햇볕이 스스로 제가 아깝다 아깝다 한다”
정진규 시인은 ‘몸시’ ‘알시’ 같은 특유의 시 세계를 열었습니다. 시인과는
3년간 같은 직장 같은 부서에서 일한 인연이 있어요. ‘마른 수수깡의 평화’
‘들판의 빈집이로소이다’ 같은 초기 시집을 내던 때입니다.
이후로 ‘현대시학’의 주간을 25년간 맡아 시단 발전과 신인 육성에 많은
힘을 쏟았습니다. 여기서 그의 시 하나 더 ‘서서 자는 말’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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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유도를 배우고 있다
이태 동안 넘어지는 것만
배웠다고 했다
낙법만 배웠다고 했다
넘어지는 것을 배우다니!
네가 넘어지는 것을 배우는 이태 동안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았다
한 번 넘어지면 그뿐
일어설 수 없다고
세상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잠들어도 눕지 못했다
나는 서서 자는 말
아들아 아들아 부끄럽구나
흐르는 물은
벼랑에서도 뛰어내린다
밤마다 꿈을 꾸지만
아비는 서서 자는 말
2년 동안 아들은 넘어지는 연습만 하고, 아버지는 서 있는 연습만 했다는
대칭이 마음에 끌질을 합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아온
아버지는 이 세상 모든 아버지의 초상이겠지요.
잠들어도 눕지 못하고 서서 자는 말의 일생이 아버지의 회한과 닮았습니다.
그래도 잘 넘어지는 것이 잘 일어나는 이치를 터득한 아들을 두었으니
위안입니다.
사람은 떠나야 그리움이 커지는지 시인의 3주기(9.28)가 눈앞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