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현성 Mar 10. 2022

세계가 그랬어

세계는 미수보다 빨리 흘러간다. 잡을 수 없을 만큼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세계는 미수를 지나친다. 미수는 섭섭하고 미수는 벤치에 앉아 그저 그런 것들을 바라본다. 냇가의 물이 흐르고, 흐르는 것은 잡을 수 없다. 어젯밤 꿈 속에 나온 사람이 옆집에 산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자기 꿈 속에 침입할 수 없을 거라고, 미수는 믿는다. 미신적이라해도 이것은 나만의 믿음이라며 미수는 믿는다.


사람들이 조깅을 한다. 멀리도 갔다가 다시 올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몇 번 본적이 있다. 다시 돌아오더라. 집이 있다는 듯이, 집이 있다는 건 이상하지. 집이라는 게, 참 이상해. 내가 기거하는 동안만 내집이고 내가 없으면 내 집은 아니지. 내가 없으면 내 집이 아니고, 내 집이 아닌 곳에 내가 들어가는 것도 이상하지만 다행이 집은 미수를 잘 빨아들여서 미수의 집처럼 소소하게 


집은 어떤 소소한 자세를 유지한다. 집 주인이 당황하지 않도록 어떤 자세를 오래도록 유지한다. 그것이 불편한 자세일지라도, 집은 미수를 위해, 그런 자세를 잡는다. 


미수는 멍하니 세계를 본다. 세계는 아름답다. 세계는, 원래 그랬다. 잔인무도한 것. 나만 규격에 안맞는다는 듯이 나를 집에 버려둔 것. 


미수는 한 달 만에 집 밖으로 나왔고 집에서 가져온 차를 마신다. 

긴 벤치 끝에 미수는 앉고 세계를 본다. 세계는, 생각보다 빠르다. 세계가 지나치는 것은 빠르다. 


조깅하던 옆집 사람이 앉는다. 헉헉 거리면서 숨을 가삐 쉬면서, 살아 있다는 듯이 숨쉬는 걸, 미수는 멍하니 본다. 살아 있었군. 역시 꿈에 등장한 이유가 있었어. 


옆집 사람이 미수를 본다. 뭘 빤히 보고 있냐는 듯이 계속 노려본다. 미수는 그것을 본다. 옆집 사람이 아니라 옆집 사람의 눈빛을 본다. 본다는 건 이상하지. 이상하기도 하여라.


"저 아세요?"

"네 알아요."

"어떻게요?"

"그냥요. 옆집에 살아요."

"아..."


옆집 사람은 그렇구나. 하고 나지막이 얘기한다. 뭔가 말을 하려다가 말을 삼킨다. 채 하겠다. 미수는 옆집 사람의 등을 두드려주고 싶었지만 그것은 실례라는 것을 잘 안다. 툭툭 미수는 자기 허벅지를 치고. 옆집 사람이 등장한 꿈에서 옆집 사람은 미수의 서랍과 부엌을 뒤졌다. 거기엔 딱히 특별한 게 없을 걸요? 미수가 말했지만 옆집 사람은 계속 뒤진다. 뭔가 나와요? 라고 말했는데 부엌 서랍에서 작은 사람을 하나 쑥 꺼내 건냈다. 미수는 놀라서, 뭐야. 하고


꿈에서 깨고 

미수는 그 작은 사람을 데리고 왔다. 꿈 속에서 꺼내와서 그런지 흐릿한, 흐릿한 형체로. 


미수의 밑에는 다 핀 담배꽁초가 가득하다. 13개를 태웠구나. 사람들이 힐끗 보는 이유가 이건가. 담배를 끊어야 하나. 

옆집 사람은 다시 조깅하지 않는다. 그저 앉아서 미수처럼 멍하니 세계를 바라본다. 


"세계, 알아요?"

"3개요?"

"세계요. "


옆집 사람은 말이 없다. 하기에 세계를 어떻게 알겠어. 여긴 내 세계. 내가 만든, 나만의 세계인데 어떻게 알겠어. 아무리 꿈속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내 세계는 알 수 없지. 그리운 내 세계는 집의 어떤 구조물이고, 그 구조물이 무너져서


"나도 쫓겨 났어요. 집에서"


옆집 사람이 갑자기 말한다. 세계가 침범당한 느낌으로, 국경을 빌려간 느낌으로, 이상한 느낌으로 말을 거는 옆집 사람을 미수는 이해할 수 없지만


"모르겠어요. 여기 얼마나 뛴거지. 오래 뛴 것 같은데, 아주, 아주 오랫동안 뛰었어요. 계속 뛰기만 했어. 지친 것도 모르겠어요. 그냥 뛰기만 했어요. 멀리. 그저 멀리 가고자 했는데, 길은 이어져서, 여기로 여기로만 와서, 그러니까. 이 벤치는 원래 아무도 안 앉거든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남이 사는 집마냥, 함부로 앉을 수 없는 그런 벤치. 근데 그쪽이 앉았고, 이제 그쪽이 벤치 주인인가 싶어서."


"있죠.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당신 꿈에 나왔어요."

"알아요."

"뛰기만 했다면서요."

"뛰다보면 남의 꿈도 들어갈 수 있죠. 계속 뛰다보면요."


그 말을 하고 옆집 사람은 작은 사람을 들고 뛴다. 

미수는 세계를 그렇게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잊어버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