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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Nov 10. 2021

도진개진 유유상종

- 스마트 소설 -

우리 친구들은 그 녀석을 부를 때 ‘불가리’라고 불렀다.

불가리는 고등학교 동창 녀석이다.

신기하게도 우린 3년 내내 같은 반 친구였다.


녀석은 떠먹는 요거트를 어찌나 좋아했던지 그것도 항상 불가리스라는 제품만 먹었으며, 10개들이 1세트를 매일 학교에 가지고 와서는 친구들이 맛 좀 보여달라 해도 들은  만체하며 쉬는 시간마다 혼자서 한두 개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곤 했다.

친구들은 장 건강 하나는 끝내주겠다 하면서 한편으론 녀석의 과다 섭취를 걱정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 녀석이 떠먹는 요거트를 먹을 때마다 늘 하는 짓이 있었다.

참 추잡스럽고 유치하기도 했지만 사실 매우 음탕한 행동이었다.


맨 처음 요거트 덮개를 걷어내고 거기에 달라붙은 소량의 요거트를 혀로 핥아먹는데 마치 뱀의 혀처럼 날름날름 핥으면서 이런 식으로 여자들 여럿 보냈다고 자랑질하였지만 아무도 그걸 믿는 친구들은 없었다.

녀석은 매우 음란한 말을 좋아했고 머릿속에 온통 야한 생각만 들어있는 것 같았다.

여자 하면 무조건 섹스가 먼저 생각난다고 했으니 말 다 했다.


그런 놈이 공부는 또 오지게 잘했다.

학급에서 항상 3등 안에 들었으니 전교석차는 알만하지 않은가?

더 얄미운 건 얼굴조차 잘생겼단 거다.

인근 여자 중고등학교에선 불가리를 보고 우리 고등학교에 아이돌스타가 다닌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어느 날은 그가 등교하는데 인근 중학교 여학생이 오빠 선물이라며 초콜릿을 수줍게 건네자 그는 얼른 가방에서 그의 피 같은 요거트를 하나 꺼내고는 버터와 마가린을 듬뿍 머금은 그 뱀 같은 혀를 느끼하게 굴리며,


“헤이, 베이비, 쌩유. 오빠 답례품이야. 이거 먹고 똥 잘 싸요~.”


라고 하자 그 여중생은 그 요거트를 지금까지도 먹지 않고 가보로 보관하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다.


인근 여중·고생들에게 그 당시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는데, 그가 정작 관심을 보이는 여자는 자기보다 연상인 대학생 누나들이었다.

우리 친구들은 매주 불가리가 여대생들과 단둘이 또는 세 명 네 명이 모텔을 다녀왔다는 말에 기겁했으며, 그가 전해주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음란한 이야기를 들으며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불가리는 무난히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공대생이 된 거다.

그가 엔지니어가 될 줄 알았지만, 우리 모두의 예상을 깨고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서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공인노무사 자격까지 취득하면서 노동법 전문변호사가 되었다.


그가 서초동의 어느 법무법인에 근무할 때 일이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모 대기업에 입사한 사회초년생인 한 여성이 불가리를 찾아왔다.

직장 상사의 성희롱 관련해서 직장 내에서 문제 제기한 이후 직장 상사의 부당한 업무지시와 직장 내 따돌림이 심해져서 그에게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이다.


그는 그녀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면서,


“저런 나쁜 자식들!"


"아니, 뭐 그딴 미친 놈이 다 있어!”


등등 혼잣말하듯 욕을 해주면서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데 이런 그 앞에서 그녀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는 거다.

자기편이 되어주는 불가리 변호사 앞에 그녀는 무방비가 되었다.

녀석의 표현에 따르면 그날 바로 강남역 인근 식당에서 저녁 겸 위로주를 사주었고 그날 밤 그녀를 그냥 자빠트렸다고 했다.


의뢰인을 그것도 만난지 하루 만에 그랬다는 것을 듣고 우리 친구들은 저 녀석이 정상인가 싶었다.

그러면서 그녀도 한편으로 그가 마음에 들어서 그랬거니 했지만, 문제는 그가 어느 여자든 진지하게 오래 만나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보여준 그의 여성 편력과 퇴폐성향은 그 끝을 모르고 계속 커지고 있었다.

지성적인 ‘뇌섹남’의 매력과 언변, 적절한 유머 감각 그리고 잘생긴 외모는 항상 여심을 흔들리게 했고, 자신이 그다지 별 노력을 안 해도 여자가 주변에 늘 넘쳐났으니 결혼적령기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한 여자만 사랑할 수 없다며 일부다처제를 혼자 주장하고 다녔다.


불가리는 자신이 가진 강점을 이용하여 유튜브에도 진출했다.

자신의 전공인 법률 지식을 공유하고 간단한 무료상담을 해가면서 제작한 영상은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였으며 수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연예인 못지않은 스타가 됐다.

그의 영상에 달린 댓글은 90%가 여성들이었다.

일부 남성들조차도 남자가 봐도 너무 잘생겼다며 칭찬 일색이었으며, 여성들은 그가 말할 때마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얼굴에만 눈이 간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의 팬을 자처한 여성들이 그의 법무법인 사무실에 각종 먹거리와 간식거리를 선물로 배달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직접 도시락을 싸 들고 찾아오는 여성도 있었다.

우리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불가리 주변에 모여드는 수많은 여자의 그러한 모습을 하도 많이 봐와서 그러려니 했다.


‘잘생긴 놈은 가만있어도 여자들이 도시락을 싸 와 줄을 서서 기다린다.’

라는 말이 그냥저냥 전해 내려오는 헛소리가 아님을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불가리가 그렇게 다가오는 여자들과 쉽게 잠자리를 가진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여자들은 ‘너밖에 없다’ ‘내 여자 하고 싶다’ ‘정말 좋아하고 사랑한다’ 등등 온갖 미사여구에 맛이 가서 그가 하자는 대로 했는데, 문제는 어느 한 여성에게서 벌어졌다.


그녀는 그의 영상의 댓글에 그와 하룻밤을 자고 난 뒤 성병에 걸렸다며 쓰레기 같은 새끼라고 욕을 한 것이다. 우리 친구들은 불가리 때문에 성병 걸린 여자가 그녀가 최초가 아닐 것이라 믿었다.

어쨌든 그녀 표현대로라면 순수한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 들고 그를 찾아간 바로 그 첫날밤에 사귀는 여자가 없다며 자기를 여자친구 삼고 싶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그 이후 온라인상에서 그를 난도질 한 그녀는 분이 식지 않았는지 그와 연락도 없이 법무법인 사무실에 불쑥 찾아가서 모두가 다 들으라는 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평생동안 성병 균을 몸에 달고 살아가야 하는 내 인생 책임지라고 그야말로 야단법석을 친 것이다.


우리 친구들은 그놈을 못 본 지 꽤 된다.

어딘가에서 요거트 덮개 안쪽을 여전히 날름날름 혀로 핥으며 재기를 노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녀에게 그의 친구로서 인간적으로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누구든 진작에 나타나서 그렇게 지랄을 좀 떨어주지. 너무 늦게 나타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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